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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만식 Oct 30. 2023

낙엽과 인생

   나뭇잎을 흔드는 가을바람이 불어오 가을의 서정이 깊어간다. 한층 옅어진 가을 햇살이 거실 안으로 깊숙이 들어오고, 울긋불긋한 단풍이 대모산에서 아파트 정원까지 내려왔다. 북창으로 정원을 내려다보니 형형색색의  단풍잎이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소슬바람에 날리면서 떨어지고 있다. 

나무는 이른  봄, 연둣빛의 여린 새싹이 돋아나고, 늦가을에는 고운 깔의 단풍이 나무에서 떨어진다.


   길거리에 떨어진 낙엽을 밟으면 청춘 시절에 누구나 좋아했던 <낙엽>이란 시가 떠오른다.


"이리저리 발길에 밝힐 때면

낙엽은 외로운 영혼처럼 흐느끼고

날개소리, 여자의 옷자락 스치는 소리를 낸다


시몬, 너는 좋으냐 가만히 낙엽 밟는 소리가


가까이 오라, 언젠가는 우리도 저처럼 가련한 낙엽이 되리니 가까이 오라,"


   프랑스 시인, 레미 드 구르몽이 가을 낙엽을 제재로 인생을 노래한 낭만적인 서정시다. 여름철,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생명력이 왕성했던 푸른 잎이 늦가을에는 단풍으로 곱게 물들고 하나둘씩 나무에서 떨어진다. 낙엽을 밝으면 낙엽의 영혼이 부서지는 소리를 내고 아름답던 나뭇잎도 이 세상과 작별하게 된다.

                                                            

   해 질 무렵, 가을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양재천을 향해 집을 나섰다. 산책로 옆 잔디 위에 낙엽이 가련하게 누워 있고 아직도 나무에 매달린 나뭇잎은 초조한 눈빛으로 먼저 떠나간 낙엽을 쳐다본다. 웬일인지 올해는 유난히 단풍이 선명하고 쓸쓸하게 보였다. 아마도 고희를 앞둔 내 처지가 낙엽과 비슷하여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다.


   오늘도 무심히 흐르는 양재천은 계절을 모르는 듯하다. 가을에 단풍이 드는 나무와는 다르게, 사계절 내내 변함없이 고요히 흐른다. 하지만 양재천은 오직 바다를 향해 온갖 시련과 고난참고 견디며 조용히 흘러갈 뿐이다.


   양재천 벤치에 앉아 가을색이 짙어가는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 문득 옛 시절 슬픈 추억이 떠오르고 어느덧 한 해가 또 저물어간다는 생각에 허전한 마음이 엄습했다.

   옛적,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단풍이 아름다운  설악산으로 갔었다. 친구들과 함께 즐거운 담소를 나누며 육담폭포를 지나 십여 분 정도 올라갔는데 비룡폭포의 힘찬 물줄기 소리가 골짜기를 울리고 주변의 단풍 경치와 한데 어우러져 무상무념의 경지에 이르는 것 같았다. 바로 그때 인부 두 명이 지게에 남녀 시신을 각각 지고 내려오는 모습을 보았다. 인부들에게 "무슨 일입니까?"라고 물어보니 젊은 남녀 한 쌍이 비룡폭포 부근에서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다고 대답했다. 소설 같은 충격적인 일이라 믿을  없었다. 들이 떨어진 곳으로 다가가자 비릿한 피냄새가 났고 붉은 단풍 빛깔의 핏자국이 그들이 남기고 떠난 마지막 흔적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낙엽 따라 저세상으로 간 처참한 청춘 남녀의 모습은 지금까지 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땅거미가 지는 양재천을 천천히 걸으며 하늘에 떠 있는 초저녁 별을 쳐다보았다. 인간도 나이가 들면 사람들이 짐작은 하되 정확히 알 수 없는 곳으가야만 하는 자연의 섭리를 새삼 생각한다. 때가 되면 나뭇잎도 인간도 모든 것이 사그라지는 것이다. 소멸하지 않는 것이 세상 어디에 존재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자연으로 돌아가는 순간까지 어느 시인의 말처럼 죽어가는 모든 것들을 사랑하며 나에게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걸어갈 수밖에 ᆢ.


   양재천의 밤하늘에 뜬 둥근 보름달이 오늘도 무심히 흐르는 양재천을 밝게 비추며 빙그레 웃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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