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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만식 May 15. 2023

잘 살다 가는 것도 실력이다


오늘도 봄비가 줄기차게 내린다. 비 오는 양재천을 산책한 친구가 자신의 소감을 이렇게 보내왔다.

"그토록 아름답고 화사하던 벚꽃이 꽃비를 맞고  길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을 바라보니 쓸쓸함 마저 드는 세상사, 인간도 음양의 조화 속에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또 한 친구는 "벚꽃이 만개하면 언제나 비바람이 치고 새봄을 시샘하지요. 그래도 비 오는 양재천, 상상만 해도 멋집니다."라고 댓글을 달았다.


거실에서 아파트 정원을 내려다보니 백목련꽃은 이미 시들어 떨어졌고, 산수유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자목련꽃은 만개한 채, 아직도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비 오는 양재천이 궁금하여 길을 나섰다. 우산을 썼지만 내리치는 봄비로 옷과 신발이 젖었다. 벚꽃이 산책길에 꽃가루를 뿌린 것 같이 예쁘게 떨어졌다. 개나리는 이미 깔끔하게 졌고 대신 파란 새싹이 귀엽게 돋아났다. 눈앞에 바라보이는 대모산과 구룡산이 겨울잠에서 깨어난 듯 연초록색으로 바꿨다.


하늘은 잿빛이고 검은 구름이 군데군데 모여서 서서히 떠간다. 봄비로 불어난 양재천은 빠르게 흐르고, 천변에는 이름 모를 새들이 새봄을 예찬하듯 흥겹게 지저귄다. 그러나 청둥오리 부부는 어디에 숨었는지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길옆에 있는 영산홍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는데, 신기하게 작은 꽃망울이 수도 없이 맺혀 있다. 비를 흠뻑 맞아 곧 피어날 것 같았다. 아마도 벚꽃과 목련꽃이 떠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이렇듯 일찍 핀 꽃은 일찍 떠나지만 늦게 피는 꽃은 어김없이 천천히 찾아온다. 우리의 인생도 그러한 세상 이치 속에서 살아가는 듯하다. 한 인간이 저세상으로 떠나면, 대신 갓난아이가 울음을 터뜨리고 이 세상에 태어난다.


며칠 전, 한 친구가 보낸 글을 읽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의 제목은 '잘 살다 가는 것도 실력이다.'라는 작자 미상의 글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요즘 들어 장례식장에 갈 일이 많아졌다. 친구 또는 일가친척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기 시작한 것이다. 새삼스레 숙명적인 우리들의 숙제를 꺼내 들었다. 끝까지 존엄하게 살다 가려면 과연 무엇이 필요한가. 그 답을 찾은 곳은 또 다른 장례식장이었다. 친구 아버님을 추모하는 자리에서 친구가 말했다. "친구야, 너 그거 아니? 사람이 죽는 것도 실력이 있어야 해. 그런 면에서 우리 아버지는 정말 대단한 실력으로 끝까지 스승 노릇 하셨어."


고인은 반년 전 암으로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으셨다고 한다. 갑자기 닥친 죽음 앞에서 당황할 법도 하지만 그분은 차분히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했다. 혼자 살 아내를 위해 자그마한 집으로 이사를 하고, 재산을 정리해 자식들에게 선물처럼 조금씩 나눠주셨다. 그리고 이런 말씀을 남기셨다.


"사람은 마지막까지 잘 아파야 하고, 잘 죽어야 한다. 그래서 아버지가 아플 비용, 죽을 비용을 다 마련해 놨다. 너희들 사는 것도 힘들 텐데 부모 아플 비용까지 감당하려면 얼마나 힘들겠냐? 아버지가 오랫동안 준비해 놓았으니 돈은 걱정하지 말고, 나 가기 전까지 얼굴만 자주 보여줘라."


그리고 그분은 스스로 정한 병원에 입원하셨다. 임종을 앞두고 의사에게 심정지가 오면 연명치료를 하지 말라는 약속을 받고 문서에 사인까지 직접 하셨다. 자식들에게 아버지 연명치료 여부를 결정하는 아픔을 절대 주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임종이 가까워서는 1인실로 옮기기로 미리 얘기해 두셨다. 자신이 고통에 힘겨워하는 모습을 보고 누군가 겁먹을 수 있으니 가족들과 조용히 있고 싶다는 뜻이었다.


친구의 아버님이 마지막으로 하신 일이 있다. 가족들 모두에게 각각의 영상편지를 남긴 것이다. 아들, 딸, 며느리, 사위, 그리고 손자들에게 가슴 뭉클한 작별 인사를 하며 영상 끝에 이런 당부를 남기셨다고 한다.


"사랑하는 아들, 딸아, 아버지가 부탁이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하늘을 봐라. 아버지가 거기 있다. 너희들 잘 되라고 하늘에서 기도할 테니 꼭 한 달에 한 번씩은 하늘을 보면서 살아라. 힘들 때는 하늘을 보면서 다시 힘을 내라."


그분은 자식들에게 마지막까지 존경스러운 스승의 모습으로 살다 가셨다. 어떻게 아파야 하는지, 죽는 모습이 어때야 하는지, 존엄성을 지키면서 인생을 마무리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몸소 보여주신 것이다. 우리는 주로 뭔가를 '시작'할 때 준비라는 단어를 붙인다. 출산 준비, 결혼 준비, 취업 준비…. 그러나 마무리에는 준비라는 단어를 붙이지 않는다. 은퇴 준비가 그토록 허술하고 임종 준비라는 단어는 금기시 돼버린 이유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60대 이후를 남은 힘, 남은 돈으로 살려고 한다. 그러나 자식들 공부시키고 먹고살기 바쁜 현실을 버티다 보면 어느새, 거짓말처럼 노후가 눈앞에 다가와 있다. 그때부터라도 정말 '잘 죽을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자식들 형편에 따라서 아프고, 자식들 돈에 맞춰서 병원에 끌려다녀야 한다. 부모 입장에서는 존엄성이 사라지는 데다 자식들에게 너무나 미안한 상황이 벌어진다. 그 때문에 있는 대로 자식들에게 주지 말고, 내 자존감을 지키고 마지막을 잘 정리할 수 있는 비용을 반드시 남겨둬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자녀에게 후회와 원망 대신 아름다운 추억과 스승다운 모습을 남길 수 있도록, 돌아가신 부모를 생각하면 미소 지을 수 있도록 마지막 실력을 쌓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어디 보통 실력인가. 나이 들수록 부지런히 공부하지 않으면 그런 내공은 갑자기 안 생긴다.


육십이 넘으면 고집이 세져서 남의 말은 안 들으니 스스로라도 배우고 깨달아야 한다.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이 담긴 공부를 해야만 하는 이유다. 그렇게 애써야 마지막에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죽을 것인지 결정할 수 있다. 잘 죽는 것이야말로 한 사람의 인생이 담긴 진짜 실력이다. 잘 살다 가는 것도 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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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나 생로병사의 길을 걷는다. 잘 태어나는 것이 중요하듯, 잘 죽는 것도 마찬가지다. 인생의 아름다운 마무리는 사람들 모두의 바람이다. 하지만 그것은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셰익스피어의 말처럼 지혜를 갖고 노력할 때에 얻어지는 결과라고 느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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