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질려버린 결혼 일기> 14화
사람은 누구나 본래 자기중심적인 기질을 갖고 태어나서 본인 생각과 다르거나 안 맞는 사람들은 먼저 이해하려고 하기보다 자신의 기준대로 판단하고 편 가르기를 좋아한다. 자연스럽게 본인과 비슷한 사람한테 마음이 더 가는 데에는 이런 이유에서 그렇다.
“(시누이)는 말이 많아서 좋은데, 저거는 무지하게 말이 없어~”
“저번에 한번 니 동생한테도 ‘니 누나 집에서도 말 안 하냐?’ 물어봤어 내가”
“봄이는 사람들 대할 때 좀 어떤가? 사교성이 좀 떨어질 것 같은데, 그렇지?”
“I들은 소심해서 말도 잘 못하고 사회생활하기 힘든 성격이야~”
(시누이에게) “말 많은 친구들한테 얘 좀 데려가~”
“(시누이)는 심심할 틈이 없겠는데, 봄이 너는 집에 있으면 한마디도 안 하고 가만히 있지?”
일부러 입을 닫아버린 나에게 시아버지는 시댁 모임 때마다 매번. 나의 태도와 모습에 대해 끊임없이 꾸준히 다양한 형태로 말씀하셨다. 아니, 입을 닫기 전에도 비교는 언제나 있었다.
‘가족끼리 편하게 이런 말도 할 수 있는 거 아니냐?’
하시며, 늘 아쉽다는 말투와 뉘앙스로. 그러나 듣는 사람은 결코 편하지 않았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는 말 누가 만든걸까? 아빠는 딸바보라는 말 만든 사람까지해서 같이 불러 앉혀놓고 얘기 좀 해보고싶다. 이런게 사랑이라면 난 거절하련다. 그리고 사랑은 일방통행이 아니다.
시누이와의 비교는 말할 것도 없고 나중엔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시며 ‘저거’라는 표현까지 쓰셨을 땐 입을 넘어 마음까지 닫아버렸다. ‘야, 너‘ 는 기본이었다.
면전에 대고 사교성이 떨어진다느니, 부족하다느니. 듣자마자 꽤나 충격적이었다. 지금 내가 뭘 들은거지 싶은 때가 많았다. 보통은 사람들 앞에서 하지 않는 막말들과 상대방을 비하하는 말들을 시아버지는 나에게 스스럼없이 자주 하셨고 볼 때마다 ‘말’을 하지 않는 나에게 ‘말’ 좀 하라는 압박을 대놓고 ‘말’로 주셨다.
어떻게든 이해해보려 입장을 바꿔 한번 상상해봤다. 만약 우리 엄마가 내 남편한테 ‘저거’라고 한다면, 내 남편을 데리고 계속 누군가와 비교하고 막말을 한다면. 아무리, 어떻게 상상해봐도 기분이 나쁜데 이 집은 달랐다. 마치 원래 이런 집인듯, 상대방한데 막말을 하든 비하를 하든. 늘 이래왔어서 이게 막말인지도 비하인지도 모르는 것처럼 모두가 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끔은 정말 궁금했다. 시아버지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시는 걸까. 사람의 말은 곧 생각에서 나온다고 하는데, 나를 도대체 어떻게 생각하시길래 저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실까. 그리고 나는 계속 이런 막말을 듣고 살아야 하는 걸까.
나는 결혼하고서 처음부터 입을 닫은 것이 아니다. 그럴 마음도 없었고 며느리는 그러면 안 되는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서툴러도 노력했었다. 잘 보이고 싶었다. 그때는 내 마음가짐이 지금과는 분명히 많이 달랐었다는 걸 나는 안다. 그럼에도 노력이 많이 부족했던 내 탓인지 그때 나의 모습은 잊으신 모양이다.
MBTI를 알게 되셨을 땐 나를 그냥 ‘소심하고 사회성 떨어지는 애’로 치부해 버리셨다. 시아버지는 나에 대해 더 알고 싶어 하신 적은 예전부터 없었고 그저 시아버지 당신 앞에서 보여진 나의 모습만으로 단정짓고 평가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일부러 입을 닫아버렸으니 어쩌면 내가 자초한 일인 것이고 ‘네~ 아버님 말씀이 다 맞습니다~’ 하며 자포자기 심정이었던 것도 있었다. 하지만 설령, 자처한 묵언수행이 아니고 정말로 말 수가 적은 사람이었을지라도 아버님의 표현 방식은 잘못 됐다.
볼 때마다 비교를 하시고 무안을 주시니. 그때 나는 그게 최선이라고 했던 선택이었다. 나에 대해 설명한다고 한들, 마치 오래 전부터 이 집은 이렇게 살아왔던 것 처럼 여기서 그 누구도 반기를 들지 않는데 며느리인 내가 시아버지를 지적해서 뭘 할까. 절이 싫으면 발 달린 중이 떠나면 된다는 말처럼 나만 벗어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괜히 내 몇 마디로 이 가족모임에서 어떠한 파장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기분 나쁘다고 티를 내는 순간 그냥 물 흐르듯 지나갈 수 있는 이 분위기에 냅다 돌을 던지는 행동이라고 생각했고 만에 하나 못 참고 결국 그 돌을 던져버린다면 옆에 있는 애꿎은 남편에게까지 튈 것이라 생각했다. 남편까지 덩달아 마음 상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지금 나만 느끼고 있는 이 불편함을 굳이 나 스스로 수면 위로 드러내 나를 중심으로 주목되게 만드는 것도 싫었다. 그냥 없는 사람처럼 있고 싶었고 그런 사람 취급해줬으면 싶었다. 그래서 그냥 나 혼자 다 삼켜버리는 게 차라리 낫겠다고 생각했다.
달에 한 번씩 생일 때 모이는 시댁 모임에서, 거기다 남편과 시누이, 시어머니 옆에서 시아버님께 그런 말을 한다는 건 나로서는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아니, 그 누구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냥 기분 나쁘면 흘려듣자. 무시하자. 말하지 말자. 나도 내 성격이 있듯 이게 아버님 스타일이고 성격이고 아버님이 나를 싫어하시는 건 아니니까 좋게 좋게 생각하자. 그냥 그렇게 혼자 듣고 거기서 말아버리려 했다. 그리고 결국 그게 나 스스로를 갉아먹었다.
어느 날은 유독 스트레스가 심한 날이었는지 가족모임 때 한 번은 공황장애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갑자기 심장이 빨리 뛰면서 손발이 떨렸고 식은 땀이 나고 눈앞이 빙빙 돌아 화장실로 도망치듯 달려갔다. 매번 ‘함께, 같이’를 강조하는 것도, ‘가족끼린데 뭐 어때?’ 하시며 모든 걸 아버님 기준으로 생각해 괜찮다는 듯 말씀하시는 것도, 그놈의 가족회사도, 시아버님의 비전이라는 것도. 그냥 모든 게 너무 숨이 막혔고 정신이 좀 먹는 듯했다. 귀가 웅웅 거리고 얼굴이 달아 오르고 식은땀이 나는 날은 자주 있었다.
’함께, 같이‘가 너무 싫다. 결혼한 지 몇 년이 지나도 전혀 독립된 것 같지가 않았다. 오히려 더 붙어 사는 듯 했다. 뭔 짓을 해도 떨어지지 않을 것 같은 족쇄를 달고 사는 느낌에 남편한테 다짜고짜 해외 나가서 살자고 울면서 애걸복걸하기도 했다. 그게 어려우면 내가 공장이라도 들어가서 무슨 일이든 할 테니 남편은 하고 있는 일들 전부 그만두길 바랐다.
심지어는 차라리 나를 미워하는 거였으면, 아버님이 나를 싫어하는 거였으면 하고 마음 속으로 얼마나 바랐는지 모르겠다. 말만 그럴 뿐이지 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건 듣는 사람 입장은 나몰라라 하는 무책임한 말에 불과하다. 나에겐 조금도 위로가 되지 않았고 그게 듣는 사람을 더 돌아버리게 만들뿐이었다. 비교와 막말을 몇 년째 듣는 나로서는 그랬다. 그럼에도 최대한 긍정 회로를 돌리려 할 수 있는 대로 정말 많이 노력했다. 그래. 나를 미워하시는 건 아니니까. 마음만은 좋게 좋게 먹으려 나에게 최면을 걸듯 부단히 애을 썼지만 관계는 혼자만 애쓴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모임 때마다 변함없이 나오는 아버님의 말들에 내 속에 쌓여가는 스트레스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컸고 좋게 좋게 먹으려는 그 마음이 나에게는 결코 좋은 결과를 가져다 주지 않았다.
어쩌면 몇 배로 더 속상한 마음이 들었었던 이유는 옆에서 항상 같이 듣고도 미동도 안 하던 남편 때문인지도 모른다. 비교하는 말들과 사람들 앞에서 무안 주는 말들을 모조리 같이 듣고도 그 자리에서 별 다른 말을 하지 않던 남편까지도 미웠다. 그리고는 나에겐 긍정적이게 좀 생각하면 안되냐 강요하듯 말하곤 했다. 그래서 나는 가족모임 때 더 말할 수 없었고 따로 남편에게는 더 얘기하고 티를 냈다. 제발 내 마음 좀 알아달라고.
나도 더 이상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도저히 없던 일처럼 묻어두고 지나갈 수가 없었다. 나 이러이러해서 기분 나빴다고 나 대신 남편이 아버님께 가서 곧이곧대로 전해줬으면 하고 바랬었던 마음들이 화근이었다. 나도 모르게 몇 날 며칠을 애꿎은 남편만 쿡쿡 찌르고 들들 볶아대는 꼴이 되어버렸고 그런 내 덕에 늘 같은 레퍼토리로 남편과도 정말 수도 없이 싸웠다. 결국 나중엔 갈 데까지 가 이혼까지 입에 올리게 됐다.
시아버님의 ‘말’들 때문에 내가 괴로웠던 만큼이나 남편도 똑같이 내가 끝도 모르고 내뱉는 ‘말’들 때문에 괴로운 날들을 보냈었다. 무엇보다 조심해야 하는 것은 '말'이라는 걸 시아버님의 막말 덕에 배웠으면서 머리로는 알면서도 싸울 땐 그저 왜 남편이 되려 나한테 화를 내는 것인지 그땐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삐딱해질 대로 삐딱해져 있었기 때문에 누굴 이해할 수 있는 그릇은 이미 바닥난 지 오래였다.
위에 말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누구나 그렇다고 지금에서야 고개가 좀 끄덕여지지만 그땐 오로지 대체 왜 나를 아쉬워하시는지, 왜 있는 그대로 받아주지 않는 것인지 그저 시아버님이 원망스럽다는 생각뿐이었고 점점 틀어지는 남편과의 관계를 비롯해 이 모든 사달은 시아버지 때문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