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이 싫어요.

<하찮은 나의 일기> #2

by 이봄



바로 전에 친절한 사람 어쩌구 해놓고 대뜸 노인이 싫단다.


친절한 사람이 되자는 다짐을 언제 했냐는 듯 모래성처럼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 있다. 여러가지 상황들이 참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약점이 되는 경우가 있는데 나에게는 노인을 대할 때 그렇다. 어떤 참지 못할 불의의 상황도, 억울하게 부당한 일을 겪는 경우도 아닌 노인, 사람에게서다. 정확히 말하면 할줌마에서 할머니 세대 정도랄까.


벌써부터 뭔지 알 것 같다면 아마,, 서비스업 아르바이트를 오래 했거나

대중교통을 자주 이용하는 사람들,, 아니면,,




사람이든 어떤 장소든 음식이든 그게 뭐든간에 하루 아침에 갑자기 그냥 이유없이 싫어지기는 쉽지 않다. 아마 살면서 겪었던 크고 작은 사건들로 인해 나도 모르는 새에 마음이 서서히 돌아서게 되는 것일테다.





어느날 알바를 마치고 퇴근하는 길, 버스정류장에서 어떤 할머니를 만났다. 아무도 없는 정류장에서 버스 노선표를 꼼꼼히 살피시더니 때마침 정류장에 도착한 나에게 물으셨다.



"80번 여기 와요~?"

"네."




할머니의 물음에 나는 단박에 네. 한마디 하고 바로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더이상의 소통은 거부한다는 마음이 온몸으로 표현이 됐다. 그때가 한겨울이었어서 롱패딩에 모자까지 눌러쓰고 있었더니 시야가 조금은 가려져 왠지 편안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조금도 개의치 않으셨다. 말을 계속 걸어오셨다.



"아 버스를 잘못 타서~ 이리 돌았다가 저리 돌았다가~ 어렵네그려"

"갑자기 눈이 또 이렇게 많이 온대~? 며칠 전에도 이렇게 오더니~"




할머니는 혼잣말을 조금 큰 목소리로 하시며 저쪽 끝에서 이쪽 끝 내가 있는 곳으로 점점 자리를 옮기시더니 어느새 내 귓가에까지 다가와 말씀하셨다. 나는 점점 가까이 다가오시는 할머니의 움직임에 온 신경이 쏠렸지만 패딩 모자에 가려진 시야를 의지해 할머니의 시선과 말을 최대한 못 들은 척 하려고 했다.



"..아. 예."




하지만 할머니는 강력했다. 아예 못 들은척 하기엔 너무 귓가에 대고 크게 말씀을 하셔서 할머니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최대한 짤막한 고갯짓에 짤막한 대답을 하고서 다시 망부석처럼 가만히 앉아있었다. 그 후로도 할머니의 혼잣말 아닌 혼잣말은 계속 이어졌다. 뒤집어 쓴 두툼한 패딩모자를 뚫고 들어왔다.



내가 탈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할머니는 어느새 다른 버스를 타고 가셨는지 정류장에서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없던 정류장에 서서 혼자 한참을 노선표를 보시다가 그때 마침 정류장으로 온 누군가에게 길을 물으셨던 거다. 깨알같은 크기로 쓰여진 노선표의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아서 고개를 앞으로 쭉 빼고 실눈을 뜨며 최대한 읽어보려 했지만 잘 보이지 않아서 물으셨던 거다. 그렇게 내 궁금한 것만 묻고 대화를 끝내기가 어색해 버스를 기다리는 그 잠깐 동안 말을 붙여보셨던 거다.


짧은 대답이라도 신경을 쓰는 것과 안 그런 것은 확연한 차이가 있다. 나는 의식적으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어쩌면 거부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할머니를 보는 내 눈빛과 대답은 건조하기 그지없었다. 할머니가 말을 걸어온 순간 이 대답만으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건 직감으로 알았다. 온 몸이 알아차리고는 반사적으로 건조하게 대답해버렸다.


어릴 때부터 많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노인분들의 '말'을 많이 들어왔다. 그 많은 말들 중에 내 기억에 남아있는 건 모두 본인보다 어린 사람을 무시하는 투의 말들과 대화가 끝나도 계속 이어진 궁시렁거림들이다. 이런 것들만 기억하는 나도 참 피곤하지만 짧은 한마디였건 잠깐 스친 눈빛이었건 그런 무시를 겪었던 순간들은 누구에게나 참 오래 남는 것 같다.


아르바이트 때문이 아니라 살다보면 그냥. 이렇게 사람한테 질리는 때가 언젠가는 오는 듯하다. 내가 이렇게까지 사람을 싫어할 수 있구나 싶은 그런 순간들 말이다. 언제 어디서든 누구에게나 가리지않고 찾아온다. 나에게는 유독 할줌마에서 할머니 세대가 그랬다. 물론 대놓고 짜증을 내는 내 또래 손님들과 다짜고짜 쌍욕을 갈기던 아저씨들도 간혹 있었지만 할줌마, 할머니들은 언제 어디서나 디폴트값으로 존재했다. 그리고 대부분이 짤막한 소통이었지만 그들의 존재감은.. 강력했다.


그렇게 나는 서서히 노인들의 말이, 목소리가 질리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그들을 마주치는 것조차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왔었다. 정신적으로 너무 지쳐버려서 그들에게만은 친절하기를 온 몸으로 거부했고 어떤 상황에서든 조금의 자비도 없었다. 전철 문이 열리자마자 내리지도 않았는데 막 밀고 들어오는 태도에, 앉아있는 내 앞에 본인은 서있는게 마음에 안 들었는지 내 발을 퍽 차서 옆으로 옮기는 말도 안 되는 행동에,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고는 노인이라 잘 모른다며 '노인'이라는 것을 무기로 쓰는 태도들에. 그들이 몸소 보여준 안하무인한 모습들에 질릴 대로 질려버린 나는 마치 심각한 노인 알레르기를 앓고 있는 사람처럼 거부 반응을 보였다. 그날 버스 정류장에서 마주친 할머니도 예외는 없었다. 사람은 다 다른데 내 눈에 노인은 그냥 다 똑같은 사람들이었다. 그 짧은 대답에도 나는 반감을 꾹꾹 담아 대답했고 뒤돌아 후회했다.






하얀 눈이 펑펑 내리던 날이었다. 할머니 말마따나 며칠 전에도 그런 눈이 왔었다. 꽁꽁 여민 패딩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넣고 앉아 한참을 미동도 안 하고 가만히 내리는 눈만 바라보고 있었다. 할머니가 남긴 어떤 여운을 곱씹으면서. 그날 그 할머니는 나를 기억하지 않을 수 있지만 나는 못 잊겠다. 마치 나에게 온 기회 같았다. 친절할 수 있는 기회. 이렇게 기억에 남아 줄줄이 말이 길어졌다는 건 아마도 내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는 후회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친절이 이렇게나 힘든거였나. 눈도 제대로 안 마주쳐 얼굴도 생각 안 나는 그 할머니를 나는 그날 하루종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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