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은 나의 일기> #1
툭하면 마음이 센치해지는 12월 연말, 이맘때쯤 늘 그랬듯이 이번 연말에도 나는 두둑한 마음으로 새해 다짐이란 것을 한번 해보았다.
제발 친절한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사실 새해 다짐이라고 하기엔 너무 거창한 것 같고 마음속에 항상 숙제처럼 갖고 있던 생각을 연말 기념으로 다시 되새겨본 정도다. 친절한 사람이 되게 해 달라니, 누군가에겐 참 하찮은 다짐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친절이라는 단어가 나에게는 참 무겁다. 근데 서비스업 알바를 10년 넘게 해온 사람으로서 할 말은 아니지 않나?... 어처구니.
언제부터였을까 친절을 생각하게 된 게. 누가 강요한 적도 없는데 언제부터 스스로 숙제처럼 지니고 살게 됐을까. 위에 말했듯이 나는 서비스업 아르바이트를 10년을 넘게 해 왔지만 서비스업도 체질이라는 말에 2000000% 공감한다. 친절이라는 것도 그렇다. 안 되는 사람은 뭘 어떻게 해도 끝까지 안 되는가 보다. 그럼 그냥 맘 편히 나 자신을 인정하고 살면 되는 것을 왜 굳이 친절하고 싶으냐고 묻는다면, 그건 나도 모르겠다. 그냥 친절한 사람이고 싶은데 친절하고 싶지 않다. 음. 뭐 어쩌라는 걸까?
보통은 그냥 지나칠만한 평범한 단어를 갖고 깊이 생각하기는 드문 일이다. 그런 나에게 친절이라는 단어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만든 건 <나의 아저씨> 라는 드라마 때문이었다. 그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자 주인공 이지안은 어린 나이에 겪지 말았어야 할 고통스러운 일들을 겪고 사는 데에 지쳐 사람에게 지쳐 더 이상 삶에 대한 어떤 즐거움도 기대도 없이 그저 살아지는 대로 살아간다. 그 옆에 또 다른 남자 주인공 박동훈은 좋은 직장과 안정적인 가정을 가졌지만 그저 남들이, 멀리서 보기에 그럴싸한 모습일 뿐이었다. 그런 두 주인공이 만나 겪게 되는 사건들을 통해 서로의 삶을 알게 되고 위로를 주는 드라마이다.
이 작품이 오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명작으로 손꼽히는 이유는 아마 이 드라마가 주는 확실한 메시지가 모두의 마음에 동일하게 가닿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명장면, 명대사가 참 많지만 그중에서도 내 마음에 확 꽂혔던 건 이지안에게 건넨 박동훈의 짤막한 대사 한마디였다.
사람들한테 좀 친절하게 해.
인간이 인간한테 친절한 거 기본 아니냐?
뭐 잘났다고 여러 사람 불편하게 퉁퉁거려.
여기 너한테 뭐 죽을죄지은 사람 있어?
친절하고 싶은데 친절하고 싶지 않았던 내 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박동훈은 이지안을 혼내는 척 화면 너머 내 정곡을 푹 찔렀다. 아니 그냥 내가 갖다 푹 찔려버렸다. 가끔 누군가의 스치듯 했던 한마디가 내 마음에 오래 남는다면 그 말은 그냥 지나치면 안 되는 나에게 꼭 필요한 말일 수도 있다는 걸 몸소 체험했다. 인지를 잘 못하고 있었을 뿐이지 은연중에 나는 나 자신을 잘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부족한 친절함과 상냥함을 가진 사람을 봤을 때 내 스스로가 부끄러워짐과 동시에 알게 모르게 부럽기도 했던 마음이 그랬다. 나는 무척이나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서비스업을 오래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좋고 친절하다면 골든리트리버 뭐 그런 거라는데 나는 앙칼진 말티즈쯤 되려나. 아니지 개만도 못..
됐다. 그만 비하하고 이제 내 새해 다짐에 좀 더 집중해 보자. 또 내년에도 내 후년에도 같은 다짐이어도 상관없다. 오래 걸리더라도 난 이 숙제를 꼭 풀고 말 거다. 숙제 너무 싫은데. 다들 마음속에 숙제 하나쯤은 갖고 살지 않나? 나는 그게 친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