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집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병에 걸린 걸까

<하찮은 나의 일기> #3

by 이봄



따듯한 봄기운이 스멀스멀 느껴지는 3월 중순이 지나고 있다. 나름 봄이라고 해가 제법 길어져 새벽 6시 반이면 창밖 저 멀리부터 서서히 동이 트기 시작하고 아침 7시만 되면 어느새 대낮 같이 밝아져 있다. 저녁에도 7시는 되어야 어둑어둑해지는 말 그대로 봄이 온 것이다.




해가 중천에 떠있는 오후 2시에 퇴근을 하니 더욱이나 이대로 집에 들어가기가 아쉬워지는 요즘. 점심시간이 지나 나른하고 느슨해진 대낮의 기운에 아 내일은 퇴근하고 카페 가서 노트북 펼쳐놓고 글 좀 끄적이다가 책도 읽고 일본어 공부도 좀 할까 룰루^^ 하며 상쾌한 기분으로 퇴근 버스에 터덜터덜 몸을 싣는다. 교대하는 알바가 감사하게도 일찍 와주는 날이면 나는 정시보다 조금 빨리 미리 칼퇴를 할 수 있다. 쥐새끼마냥 재빠르게 피시방을 빠져나온 후 정류장으로 쏜살같이 달려가 타이밍 좋게 바로 타면 집에 도착해도 2시 반이 채 안 되는 그야말로 아주 개꿀 같은 시간이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씻고 오후 3시 즈음 늦은 점심을 먹는다. 피시방 밥을 2년 넘게 먹었더니 질릴 대로 질려버려 아침 7시부터 오후 2시까지 굶는 건 일도 아니다. 피시방엔 밥도 있고 제육도 있고 계란도 있고 김도 있고 돈가스도 있고 3분 짜장, 카레, 참치캔도 있지만 푸릇푸릇한 야채 같은 건 하나도 없어서 더 오래 먹었다간 내 건강이 어떻게 될지 무섭다. 익숙해지면 감사할 줄 모른다더니. 먹을 게 넘쳐나는 피시방 음식도 이젠 질려서 안 먹겠단다. 짜장면집 자식이 짜장면 더 안 먹는다는 말이 납득이 간다.




나름의 루틴대로 퇴근하면 바로 집 가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창문을 열어 환기 좀 시켜준 후 청소기를 돌리고 유튜브나 드라마, 영화를 보면서 소화시킬 겸 요가매트 위에 서서 허우적대고 있다 보면 이제 슬슬 잠이 올 시간이다.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허우적거림도 점점 느려진다. 이럴 때 딱 시계를 보면 어느덧 오후 4시. 뭐라도 해보겠다 하면 나가서 충분히 하고도 남을 시간이다.




내향인은 무조건 집순이? 놉. 예외도 있다. 주말을 집에서만 보내는 건 좀 아깝다 생각하는 편인 데다가 어차피 밖에 돌아다니는 게 더 좋은데 집이 꼭 있어야 되나(?)하는 다소 특이한 마인드를 가진 나는 98% 내향인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집순이는 절대 아니다. 때문에 우리 집엔 항시 대기 중인 노트북 가방이 있다. 맥북과 빈 노트, 읽고 있는 책, 일본어 책, 이어폰, 에어팟, 충전기, 펜, 안경, 휴지, 면봉, 거울 등등 이 가방 하나만 있으면 어느 카페든 갈 수 있는 짐보따리가 항상 묵묵히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집에 들어오면 끝이다. 내 몸은 어느새 방방 뛰던 요가매트 위에 고이 뉘어져 있다. 집은 날 방해하는 요소가 너무나 많다. 항시 대기 중인 내 배낭 역시 카페 말고는 잘 열리지 않는다. 내일은 카페 가서 뭐라도 해야지 하며 누구보다 자기계발에 앞장서는 사람인 양 퇴근 때 가졌던 positive한 마인드와 산뜻함은 온 데 간데없다. 새벽마다 우렁차게 울려대는 알람 소리에 눈이라도 겨우 뜨면 오늘은 기필코 퇴근하고 곧장 집으로 튀어 와서 밥도 안 먹고 바로 잔다. 며 이 악물고 다짐을 한다. 그래놓고 또 퇴근하면 맑은 햇살에 홀딱 넘어가 내일은 카페 가서 뭐라도 해야겠다^^ 의 무한 반복이다. 한 입으로 두 말하는 나란 인간. 어쨌든. 오후 2시 화사한 대낮을 한번 맛보면 집에서만 보내기가 참 아쉽다.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올리고 뭘 쓰는 데에 재미를 붙일 수 있었던 것도 내가 98%나 내향인이지만 밖순이어서, 카페 가서 뭐라도 해서 뭐라도 쓸 수 있었다. 그냥 하고 싶은 거 막 했더니 이렇게 됐다. 집에만 있었다면 절대 쓸 수 없었다. 나는 집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병에 걸렸기 때문에.. 도대체가 나는 왜 카페에서만 집중이 잘 되는 걸까? 차암 까탈스럽게도 아무 카페에서나 집중이 잘 되는 건 또 아니다. 너무 좁지 않은 규모에 어느 정도 탁 트여있으면서도 또 너무 개방적이지 않은 곳이면 좋다. 의자는 등받이가 있어야 되고 테이블은 많이 작지만 않으면 된다. 그리고 너무 구석진 카페는 선호하지 않는다. 적당히 사람들이 드나들고 멍하니 창 밖을 봤을 때 바깥도 좀 번화했으면 좋겠다. 그런 곳이라면 한번 자리 잡고 앉아 노트북을 펼친 순간 6시간 이상도 있을 수 있다. 카페를 이용하는 다양한 군중들 속에서 이어폰을 꽂고 나만의 세계에 빠져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는 그 순간이 너무 좋다. 크..



그리고 이렇게 오래 머무를 생각이라면 맘 편히 있을 수 있게 디저트도 주문하고 가끔은 중간에 커피도 한 잔 더 주문해야 돼서 돈도 많이 들고 다이어트도 망한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카페 절대 못 잃는다. 안 그럼 나는 집에서 잠만 자는 인간으로 살다 갈 것이다. 푸학~




예전엔 좀 예쁜 핫한 개인카페를 많이 찾았다면 요즘은 스벅을 제일 자주 가는 것 같다. 근데 이젠 스벅도 어딜 가나 노트북 펼쳐놓고 작업하는 카공족이 많아져 자리 경쟁이 치열하다. 벽을 등지고 앉는 안쪽 자리는 대부분 카공족이 차지하고 있다. 그런 자리가 있는 카페는 어딜 가나 좀만 늦으면 못 앉는다. 우리 카공족들 네맘 내 맘 다 똑같나 보다.




근데 나는 집에서도 가만히 있질 않는다. (왜 저래) 오히려 집에서는 또 가만히 앉아서 노트북만 하고 있는 걸 못 한다. 돌돌이라도 들고 돌아다니면서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떼든 옷정리를 하든 청소기를 돌리든 그것마저 다 해서 더 이상 건드릴 게 없다면 요가 매트 위에 서서 오두방정을 떤다던지 갑자기 가구 위치를 바꿔버린다. 이상하게 집에서는 가만히 앉아만 있으면 좀이 쑤신다. 요가 매트에 누워있는다고 해봤자 최대가 30분이다. 집에서는 또 나름대로 바쁘다. 그래서 우리 집엔 그 흔한 소파도 없다. 어쩐지 집에 있을 때 다리가 더 아프다. 이제 날도 풀렸으니 나가서 뛰기라도 해야겠다. 더 빨빨거리고 돌아다녀야겠다. 배낭 메고 룰루랄라 작업하기 좋은 카페를 찾아다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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