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싼 인생

<하찮은 나의 일기> #4

by 이봄


값싼 물건만 쫓으면 가난해진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비싸다고 다 좋은 물건인 것도 아니고 비싼 물건만 사들인다고 삶이 괜찮아지는 것도 아니며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럼에도 반은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는 건 너무 저렴한 것에만 집착하다 보면 적은 금액대만큼 덩달아 마음의 폭까지 좁아지기 쉽다는 비유적인 말이 아닐까 한다.





예전에 지인 중에 카페를 운영하는 친구가 있었다. 회사를 다니는 일반 직장인들보다 할 일도 많고 신경 쓸 일이 훨씬 더 많은 듯했지만 바쁜 생활과는 다르게 그 친구는 어딘가 늘 여유로워 보였다. 얼굴이 폈다는 말을 이런 얼굴을 보고 하는 말인가. 그 친구의 말에는 왠지 모르게 느긋함이 있었고 입가엔 항상 옅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출퇴근이 일정한 직장인들과는 달리 워라밸 같은 건 꿈도 꿀 수 없고 이른 오전부터 카페 문을 닫는 저녁 늦은 시간까지 언제나 일에 대한 생각을 놓을 수가 없는 삶이었지만 그 친구는 말했다.



"직장 다닐 때보다 훨씬 버니까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다 먹고 마트에서 장 볼 때나 뭐 살 때 금액 신경 안 쓰고 살 수 있어서 좋아."






간지다. 저 말을 하는 와중에도 그 친구 얼굴은 평온했고 옅은 미소 역시 잃지 않았다. 그때 그 순간만큼은 나에게 워렌버핏이었고 만수르였다. 도대체 얼만큼을 벌길래 금액을 신경 안 쓰고 살 수 있다는 걸까? 얼마인지 신경을 안 쓴다니. 친구의 저 한마디는 어쩐지 나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말들이었다.


살아가는 데 있어서 그게 무엇이든 금액은 매우 중요하다. 이 물건이 과연 이만한 값어치를 하는지, 이건 왜 이렇게 비싼지, 얘는 또 왜 이렇게 싼 지 등등 이것저것 비교해 가면서 좀 더 저렴한 금액에 가성비 좋은 괜찮은 물건을 찾으려고 인터넷을 종일 뒤적거리거나 따져보는 일은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소비하는 사람의 입장에선 그렇게 사는 게 보편적일 것이다.




결혼하고 신혼 초반 마트에서 장을 볼 때 남편과 나는 그 물건의 가격과 성분, 과연 양이 충분한가, 이 품질에 걸맞은 적당한 금액인가를 꼼꼼히 비교해 본 후 가성비 제일 좋은 것들을 선정해 카트에 담곤 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카페 사장인 친구처럼 가격 신경 안 쓰고 냅다 사버리는 경우는 드물 것이고 친구 역시 돈을 아주 펑펑 쓴다는 의미로 했던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랬으면 부럽고.ㅠ



가끔 가격 앞에 주춤하게 될 때 친구의 저 말이 생각난다. 0이 하나 더 붙는지 안 붙는지, 당장 이걸 사버리면 다음 달 내 지갑 사정이 어떻게 될지, 이게 지금 나한테 정말 필요한가? 하며 갑자기 진지한 고민을 하기 시작할 때. 가격을 신경 쓰는 그런 모습에서 나 자신이 점점 돈 앞에 작아지는 느낌이랄까. 천 원이라도 더 싼 걸 찾아 이리저리 헤매다 가끔은 현타가 올 때도 있다. 그럴수록 돈이 더 많았다면, 더 벌 수 있으면 하는 욕심이 따라붙는다. 그리고 그렇게 서서히 마음의 폭이 좁아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나 자신한테도 이것저것 따져가면서 써야 되는 팔자인데 다른 사람한테 쓰는 건 퍽이나. 재고 따지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10원 한 장도 쓰기 아까워지는 게 사람 마음이다.



엄격한 건 자신한테 하고 남들한테는 관대하게 살아야 하는데 돈 앞에서는 쉽게 작아지는 것 같다. 돈에 따라 내가 가진 능력에 따라 나의 에티튜드가 달라진다면 이미 나는 돈에 진 것이다. 축의금을 낼 때도 잠시 그들과의 관계성을 천천히 따져본 후 그만큼의 상응하는 금액을 봉투에 담는다. 그런 거 하나도 생각 안 하고 턱턱 괜찮은(?) 금액을 내기란 참 쉽지 않다. 매달 같은 월급을 버는 직장인들 모두가 갑자기 사업을 해서 그리고 모두가 대박이 나서 이게 얼만지 저게 얼만지 신경 안 쓰고 살 정도의 벌이가 된다면 모를까 가끔은 관계에 따라 돈을 환산하고 있는 내 머릿속이 좀 부끄럽고 싫을 때가 있다.





이래서 돈을 대할 때는 굉장한 지혜가 필요하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가 보다. 아직 긴 인생은 아니지만 짧고 굵게 겪었던 나의 경험들을 토대로 깨달은 것이 있다면 '돈과 술' 이 두 가지는 사람의 본성을 아주 쉽게 드러내게 하는 도구라고 생각한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박동훈의 대사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내가 유혹에 강한 인간이라
여태 사고 안 친 것 같아?
유혹이 없었던 거야. 그러니까 모르는 거야.
내가 유혹에 강한 인간인지 아닌지.




정말 좋아하는 드라마여서 그런지 계속 이 드라마 대사를 가져오는데, 같은 상황에서 한 말은 아니지만 이 대사처럼 역시나 돈도 똑같은 게 아닐까 한다. 아직 큰돈을 맞닥뜨려본 적이 없어서 '나는 이거 이상은 욕심도 없고 이 정도로 만족한다'며 스스로 착각하고 있는 걸 수도 있다. 비록 찰나이지만 돈에 욕심이 생기는 순간들이 분명 있다. 해외여행을 더 자주 가고 싶고, 좀 더 좋은 차를 끌고 싶고, 손목에 더 비싼 걸 두르고 싶고, 괜찮은 가방을 들고 싶고, 더 좋은 집, 더 맛있는 음식 등 갖고 싶은 거 다 사고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싶은 그런 마음들 말이다. 아껴서 쓸 줄 알고 있는 것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더 길러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은 잊은 채 어떻게 하면 더 벌 수 있을까만 궁리하면서 산다면 끝이 없는 욕심만 생겨나고 결국 돈을 좇으며 살게 된다.


그렇다.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비싸고 좋은 물건을 사들인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더 많이 벌어서 더 좋은 것들로 나를 치장한다고 저절로 내 내면이 바뀌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값싼 물건을 산다고 괜찮은 사람인 것도 아니다. 눈앞에 보이는 금액 너머에 있는 것들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좋은 마음을 갖는 것이 좋은 곳에 데려다주는 것이고 나보다 남을 더 위하는 마음이 나를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다. 값으로 매길 수 없는 좋은 마음을 기르는 것이야말로 돈을 잘 버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다.


비루한 삶, 즉 값싼 인생은 그저 그런 집에 살면서 그저 그런 차를 끌고 배달 음식을 내가 원하는 대로 못 먹는 삶이 아니라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에만 몰두해 욕심을 내고 더 좋은 것을 바라고 베풀 줄 모르고 나눌 줄 모르는 이기적인 내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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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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