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은 나의 일기> #10

by 이봄


나는 언제부턴가 말이 참 어려워졌다. 그래서 한참 말과 대화, 관계에 관련된 책을 읽어보기도 하고 상대방이 무슨 의도로 하는 말인지, 듣고 나서 곰곰이 생각하는 게 습관이 됐다.


그 습관이 재밌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좀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든다. 말을 있는 그대로 듣고 흘려버릴 건 흘리면 되는데 그러질 못하고 계속 곱씹다가 왜곡해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예민하게 듣기 시작하니까 문득 '말'이라는 게, '대화'라는 게 만만하게 볼 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가졌거나 똑똑한 사람, 능력 있는 사람, 착한 일을 많이 한 사람, 배울만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 등 아무리 말주변이 뛰어나다 해도 평소 그 사람의 몸에 배어있는 말할 때의 태도나 말투, 자신보다 어린 사람 또는 타인을 대할 때의 모습에서 말에 조심성이 없거나 겸손하지 못한 뉘앙스를 보인다면 말짱 도루묵이더라.


맞는 말을 하더라도 어떤 사람의 말은 와닿지 않다거나 받아들여지지 않는 게 이런 데서 오는 것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도 고쳐야 할 것 투성이지만 이런 부분들을 예민하게 생각하기 전 과거의 나도 알게 모르게 참 많이 무례했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관계의 물리학> 중에서.






겉으로 보여지는 것보다 먼저 챙겨야 할 것은 어쩌면 내가 하는 '말'들이 아닐까 한다. 나는 어떤 말들을 자주 하는지, 어떤 의도로 이런 말을 하고 지금 내가 쓰는 단어들이 상대방으로 하여금 무례하게 들리진 않을지. 가끔은 이렇게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들지만 그만큼 장점도 많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상대방에게 이 말을 무슨 의도로, 왜 하는지 조금은 생각하면서 말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면서 '아 저런 말은 불쾌하게 들릴 수도 있겠구나' 하고 그냥 지나칠 수 있었던 말들을 다시 한번 되짚어보게 되는 좋은 습관이 생겼다.





말을 많이 하면 할수록 나를 드러내다 못해 과하게 벗겨질 때도 있다. 굳이 말할 필요 없는 부분까지 상대방한테 말함으로써 내 의도와는 다르게 오지랖이 되는 경우도 있고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너무 표출하고 싶은 마음에 다 안다는 듯이 말해버리는 경우도 더러 있다. 슬프지만 꼰대 소리 듣기 가장 좋은 방법이다.

소위 ‘제 무덤을 판다’고 하듯 결국 말이 많으면 말실수를 하게 된다. 대개 말이 많은 사람을 신뢰하기 어려운 이유도 이런 부분에 있다. 내가 하는 말들이 저 말 많은 사람의 입을 통해 실수로라도 분명 어디론가 새어 나갈 것 같기 때문에.


갑자기 이런 말이 생각난다.


내공 있는 사람은 말이 없다.






‘말’이라는 게 참 신기하다. 대화를 하다 보면 상대방의 말하는 투, 태도, 목소리 톤, 사용하는 단어들, 뉘앙스 등 몇 마디를 하더라도 말에 따라붙는 다양한 것들이 작용해 이 사람이 어떤 의도로 말하는 것인지 어떤 사람인지 조금은 알게 해준다. 그렇다고 조금 나눠본 대화로 ‘그 사람은 이렇더라’ 하는 파악을 넘어서 판단해 버리는 실수를 해서는 안되지만 말은 곧 본성과도 연결되는 부분일 뿐만 아니라 사람이 지닌 화법이란 게 쉽게 고치기 힘든 오래 굳어진 습관과 같아서 결국 그 사람을 어느 정도 알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은 분명하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속담처럼 같은 말을 하더라도 말하기에 따라 사뭇 다르게 들린다. 관계에 있어 대부분의 다툼은 ’말‘때문에 일어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나 역시 오래전 나의 말실수로 인해 좋은 친구를 잃은 경험이 있다. 상대방의 기분은 고려하지 않고 무심코 내뱉은 말은 순식간에 그 관계를 어긋나게 만들었다. 여전히 후회 중이고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때 내가 했던 말들을 다시 주워 담고 싶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생각했다. 섣불리 말을 해서 상처를 주는 것보다 침묵하는 편이 낫겠다고.


친구니까, 가족이니까. 편한 사이라고 해서 말까지 편하게 막 해도 된다고 생각하면 아주 큰 착각이다. 좋게 해결될 수 있는 부분도 말투가 조금이라도 뒤틀려 전달된다면 나도 모르게 상대방을 불쾌하게 만들 수 있다. 내가 하는 말들을 되돌아보지 못하고 고치지 못한다면 관계 또한 결국 뒤틀려버리고 만다.




내가 좋아하는 어떤 그림 작가님의 어머니께서 쓰신 책에 이런 글이 있다.


우애령 <희망의 선택>





칼에 찔려 죽는 사람보다 혀에 찔려 죽는 사람이 더 많다는데 이처럼 사람과 사람이 만나 관계를 맺는 데에는 예민하게 신경 써야 할 정말 많은 부분들이 존재한다. 나도 모르는 새에 내가 한 말이 누군가에게는 몇 년을 잊지 못할 상처가 될 수도 있고 위로가 될 수도 있고 인생 자체를 바꿀 수도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닌 것이다.


살면서 신경 써야 할 일들이 얼마나 많은데 내 말까지 하나하나 신경 쓰면서 산다는 건 정말이지 너무 피곤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신경을 써보는 건 어떨까? ‘나의 말’들을 한번 돌아봤으면 좋겠다. 대단한 변화는 아니더라도 내가 먼저 나의 말을 바꿈으로써 나 자신이 바뀌고 뒤늦게 후회할 일도 없을 것이다.



말 때문에 내가 버려지기도 하고 또 상대방이 버려지기도 하며 잘 될 일도 그르치게 되고 되돌릴 수 없는 실수를 낳기도 한다. 말에 관련된 속담이 많은 이유가 무엇이겠나. 사소해 보이지만 내가 뱉은 말은 나에게 남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남기 때문에 늘 조심해야 한다.




<관계의 물리학>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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