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은 나의 일기> #12
2. 나가버린 카톡방
중학생 때 친했던 친구들을 20살 때 다시 만났었다. 아직도 기억난다. 어디서 만날지, 뭐 할지 약속을 잡고 안산 중앙동 ABC마트 앞에서 오랜만에 딱 마주친 그 순간. 보자마자 서로 빵 터진 그 순간. 바로 어제도 만났던 것처럼 다시 뭉치자마자 거의 매 주말마다 만나 옛날 얘기를 나누면서 부어라 마셔라 술을 마셨다. 그때 유행했던 라인댄스며 뭐며 놓치지 않고 죄다 따라 하면서 핫하다는 술집들을 찾아 다녔고 카톡방에서도 쉬지 않고 매일같이 수다를 떨었다.
넷이서 서울도 가보고 쇼핑도 하고 여름엔 바다도 놀러 가고. 가족보다도 자주 보고 연락하고 거의 붙어사는 수준이었다.
나는 25살에 결혼을 했고 그해 겨울, 남편과 함께 쇼핑몰 사업을 시작했다. 결혼하고부터는 예전처럼 친구들과 연락은 물론 자주 볼 수가 없었다. 혼자일 때처럼 주어진 시간을 전부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쓴다면 그만큼 돈도 많이 드는 일일뿐만 아니라 남편은 집에 두고 혼자 돈 펑펑 쓰면서 놀러 다니는 정신 못 차리는 아내가 되는 꼴이었기 때문에, 결혼했으면 줄이고 자제해야 하는 게 당연했으니 자연스레 친구들과 만나는 횟수가 줄었었다. 그런 와중에 쇼핑몰 사업까지 남편과 같이 하게 됐었고 그 시기에 친구들의 서운함은 점점 더 쌓여만 갔다. 사업을 시작하면서 남편과 나는 생활비를 더 아껴야 했고 친구들을 만나기는 커녕 일 때문에 개인적으로 가질 수 있는 시간이 전보다 더 없었다.
그때 친구들과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다. 만나면 항상 술을 먹는 친구들이었어서 한번 만나면 거의 인당 5만 원씩은 깨졌었고 나는 심지어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도 똑같이 부담하곤 했다. 가끔씩 친구들이 나를 배려해 주긴 했지만 사실 그때 나는 시간을 내서 만나는 것 자체가 부담이었다. 쇼핑몰 사업으로 나가는 돈도 많고 할 일도 많은 와중에 친구들 약속을 하나하나 전부 챙겨야 한다는 게 남편에게 미안했고 내 마음도 썩 편하지 않았다. 그래서 카톡방에서 약속을 정할 때마다 이번만 나 빼고 보면 안 되겠냐며 초치는 소리를 자주 하게 됐고 친구들도 듣다 듣다 그동안 참아왔던 서운함이 폭발해 결국 크게 싸우고 말았다.
26살. 나는 너무 일찍 결혼을 해버렸고 아직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던 것일까. 20살 때 다시 만난 중학교 친구들과 6년 뒤, 나는 다시 멀어지고 말았다.
그날 카톡방에서는 서로 쌓였던 서운함이 폭발해 정신없이 다투다가 확 짜증이 나서 내 마음대로 카톡방을 나와버렸다. 심지어는 친구들 인스타 팔로우까지 내가 먼저 다 끊어버렸다. 그땐 그랬다. 이대로 멀어져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금주를 선언하고도 만나기만 하면 나도 술을 마시네 마네로 불편하게 하고 얼굴 붉히던 것도, 결혼한 뒤로 자주 못 보는 걸로 눈치 보는 것도, 아쉬운 소리 해야 하는 것도, 돈을 너무 많이 쓰게 되는 것도 그땐 그냥 다 질려버렸다. 홧김에 저질러버린 일이지만 솔직히 카톡방을 나갔을 땐 정말 편했다. 밤낮없이 새벽까지 일하던 때, 카톡방에서는 맨날 언제 만나냐는 마음 불편한 연락들 안 봐도 되고 난 어떻게 빠지나 고민 안 해도 되고. 몇 달간은 정—말 편했다. 너무 홧김에 나만 생각했나 싶기도 했지만 그땐 그냥 친구들이 미웠고 한심하다는 생각까지도 했었다.
교만했다. 충분히 친구들에게 좀 더 차분하게, 지혜롭게 얘기할 수도 있었는데 그땐 그저 친구들이 답답했고 맨날 놀 생각만 하는 한심한 친구들로 여겼으니, 나는 이미 지혜롭기는 커녕 글러먹은 상태였다. 매일같이 연락하고 넷이서 죽고 못 살 정도로 가깝게 지냈었는데. 나는 그 관계를 그날로 한순간에 끝내버렸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었는데 왜 그랬을까. 친구들과의 관계를 내 중심적으로만 생각했기 때문에 그랬다.
그땐 오로지 나만 옳았고 나만 괜찮은 사람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카톡방을 그렇게 매몰차게 나갈 수 없다. 진짜 한심한 건 친구들이 아니라 나였다.
몇 년이 지나도 잘 지내나 문득문득 궁금하다. 세어보니 거의 10년이 다 되어간다. 그중에 한 친구랑만 연락을 꾸준히 하고 있다. 그 친구를 통해 한 친구는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시 연락해볼까 했었지만 선뜻 손이 거기까지 뻗지는 않는 듯하다.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고 ‘이제 와서 굳이..’ 라는 마음과 동시에 나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을 것도 같고. 이래서 후회할 짓은 하는 게 아니다. 관계의 소중함을 몰랐다. 역시 너무 뜨거울 땐 아무 결정도 하지 않는 게 좋다. 감정따라 우발적으로 저지른 행동은 결코 좋은 결과를 가져다 주지 않는다. 그때 카톡방을 확 나가버리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