깎아라, 빛날 뿐이다.
본 소설은 수많은 현실 속 갈등 사례를 통해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창작된 100% 허구임을 밝힙니다. 현실 속 어딘가에 있을 법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을 뿐, 특정 인물이나 단체, 사건과는 무관하며, 인간의 보편적인 심리와 갈등을 다루고자 합니다. 만일 실제와 같은 경우가 있더라도 이는 우연에 의한 것임을 다시 한번 강조드리며, 시작하겠습니다.
불어날 재산을 꿈꾸고 미래의 가정도 꿈꾸었다. 신축 아파트로 시선이 향한 채, 나는 내 결혼 자금을 모두 카페에 쏟아부었다. 욕심이 과했을까. 재개발이 확정될 때까지, 얼마 걸리지 않을 거라 믿었다. 보상금을 받고 신축 아파트로 이사 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여전한 헛된 꿈일까?’
선망의 대상이 시기의 대상이 되는 건 자명했다. 가까워질 수 없는 거리에서 오는 괴리감, 나는 보고 싶은 대로 보았을까? 나는 왜 확신했을까. 사라진 건 티스푼이 아닌 희망이었고, 나야말로 어둠 속에 사라지고 싶었다. 나는 그녀들의 그림자를 밟고 또 밟았다. 그러나, 밟을수록 오히려 내가 갇힐 뿐이었다.
공사 현장의 소음과 모래바람만이 카페 문을 두드렸다. 미세하게 흔들리며 내는 종소리는, 내 마음을 대신해 앓는 소리 같았다. 날이 밝을 땐 바쁘고 싶은 마음만이 꿈이 되어버렸다. 공사 현장 속 포클레인이 척박한 땅을 뒤집어 놓을 때마다, 내 마음도 수시로 뒤집어지며 부서졌다. 불어나는 건 지독한 근심과 자격지심, 그리고..
장사가 되지 않아 커피값을 깎아보기도 했다. 그날 밤은 유독 비가 많이 내렸다. 마음 같았다. 차분히 커피 한 잔 마셨다. 깊이 들이마신 향미에 놀라 커피잔을 한 번 더 들여다보았다. 갓 로스팅한 원두로 내린 핸드드립 같았다. 커피값을 깎는 게 내 자존감을 깎는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커피의 맛은 여전히도 훌륭했다. 이때라도, 내 마음까지 들여다봐야 했다.
개의치 않으려 했다. 방법을 찾으려 했다. 먹고살기는 더욱 치열해지고, 그만큼 바빠졌다. 수아는 부산으로 향했다. 하지만 서운하지 않았다. 개운하지도 않았다. 그저, 인연이 다했다고 믿었다.
봄이 되고 여기저기 공사는 다시 시작됐다. 여전히도 우리 카페를 둘러싼 공터들은 개발이 되지 않았다. 자기 땅을 알리는 알박기 경계 펜스만이 나의 한계를 알리듯, 더욱 높고 견고하게 설치될 뿐이었다.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날만큼은, 바람에 흩날리는 모래 냄새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렇게 믿고 싶은 걸까? 한두 시간이면 사라질 봄의 향기만이 내 코를 간지럽혔다. 시선을 떼려야 뗄 수 없으니, 스스로 내 속을 갉아먹는 일을 자처하며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마음먹었다. 내 공간, 내 카페만큼은 지키기로. 아파트 현장에 말뚝을 박듯이, 내 마음에도 기초 지반 공사는 이미 끝났다.
‘나를 아무리 깎아내려도, 나는 더 빛날 뿐이야. 악착같이 살아남을 거니까.’
시기, 다 때가 있다는 말이 떠올랐다. 시기, 떠날 사람은 떠났다.
시간이 머물고 사람이 머물며, 마음이 머물기를 바랐다.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결국 지나가고 또 지나간다. 시간이 머물고, 사람이 머물며, 마음까지 머무는 터가 될 때까지. 나도 내 자리를 지키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