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만큼은 구름 위
2022년 가을, 10년간 연애했던 남자 친구와 헤어졌다. 남자 친구는 결혼을 원했고, 예비 시어머님은 차디찬 얼음 같았다. 분명, 탐탁지 않아 하셨다.
“혜선아, 걱정하지 마. 우리 엄마는 내가 설득할 수 있어.”
남자 친구와 결혼 준비를 하며 반지를 보러 갔다. 반지들은 서로가 자신을 데려가라고 빛을 내고 있었다. 유독 눈에 담긴 반지는 며칠이고 생각났다. 그러나 남자 친구는 점차, 행동이 더디고 더뎠다. 설득한다더니, 설득을 당하고 있는 눈치였다. 그 모습에, 나야말로 자신이 없었다. 어영부영, 시간만 흘렀다.
“오빠, 우리 그만하자. 결혼까지의 인연은 아닌 것 같아.”
익숙했던 내 편이 없으니, 마음은 텅 빈 게 아무 쓸모도 없는 공터 같았다. 거친 모래바람만이 마음에 소용돌이를 일으켜 상처를 내듯이, 꾸역꾸역 올라오려는 모난 마음은 마른침만 꼴깍 삼켜댔다.
첫 직장이자 15년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쉬고 싶었다. 대학 친구에게서 소개팅 주선이 들어왔다. 당당히 거절하며 절친 수아에게 넘겼다. 수아는 결혼이 간절했거든. 만날 인연은 만나진다더니, 수아는 소개팅 이후 곧장 결혼을 전제로 만나며 결혼 준비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수아 대신 내가 소개를 받았다면, 결혼 준비는 내가 하고 있었을까?
2023년 가을, 절친 수아는 내게 청첩장을 건넸다. 우리는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수아의 결혼 소식이 반가워서만이 아니었다. 갑작스러운 결혼 소식은 물론, 수아가 여태 부모님과 함께 살아온 집이 재개발이 확정되는 겹경사였다. 주변은 계획 신도시로 이미 공사가 진행 중인 상황이고, 나는 곧 오픈할 카페에 들떠 있었다.
수아를 만나기 한 달 전쯤, 나는 이미 부동산 임장을 마쳤다.
“여기는 보시다시피 계획 신도시로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이고요~ 저 옆은 친구분이 사신다고 하셨으니 아실 거예요. 재개발 확정입니다. 양쪽으로 호재가 있으니 여기는 카페 거리로 젊은 투자자분들이 수시로 오시면서 골목마다 훑고 가세요. 누가 먼저 선점할까요~? 호호.” 부동산 중개인마저 호재를 누리듯 표정과 말투에서 여유가 흘렀다.
“참, 경리단길, 망리단길, 성수동 등 낡은 주택을 개조해서 카페 만들었잖아요? 여기도 재개발 진행되면 평당 감정평가액은 올라가요~ 나중에 아파트 입주권까지 챙기면 대박인 셈이죠~! 임대료 걱정도 없고, 지금 아니면 이 가격은 안 되는 거 아시죠? 호호.”
막힘없이 술술 내뱉는 부동산 중개인에게, 나는 무슨 신뢰였을까? 전문가다운 포스와 자신감, 그새 내게로 전달되어 새로운 희망이 동기 부여가 되었다.
“그런데, 여기 골목이 좁아서 차 한 대만 겨우 들어오는 게 아쉽네요.” 나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좁은 골목, 한 대만 허용하는 주차 공간이 이내 아쉬웠다.
“에이, 나무만 보고 숲은 안 보시네요~! 순차적으로 공사가 진행 중이니, 여기 앞이 트이면 아무래도 넓어질 수밖에 없어요. 건물 가치는 더욱 상승할 거고요. 일단 뼈대는 남기고 1층은 카페로, 2층은 주거 공간으로 리모델링하세요. 임대료 걱정도 없거니와, 이게 바로 직주근접 아니겠어요? 호호.”
수아를 만나기 세 시간 전, 나는 결심한 듯 부동산 중개인을 다시 만났다. 그리고, 부동산 중개인이 건넨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모아둔 결혼 자금을 모두 올인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머릿속에는 온통 리모델링한 1층 카페와 2층 주거 공간이 그려져 마음도 머리도 새로운 희망으로 가득 채워졌다.
수아는 만나자마자 청첩장을 건넸고, 나는 계약서를 꺼내 보였다. 카페 안, 경쾌한 팝송과 함께 우리의 컨디션도 제법 경쾌했다. 각자 앉은 1인 소파는 하늘 위 구름 소파에 앉은 듯 리듬을 타며 둥둥 떠 있는 것 같았다. 유독 환한 얼굴의 수아가 행복해 보였다. 절친답게 붙어 다녔던 친구가 원래 이렇게 예뻤나 싶도록. 사랑을 하는 게 부러웠지만, 나는 내 카페와 사랑하기로 했으니, 수아 못지않게 설렜다.
눈치챘을까? 수아는 내 모습을 빤히 바라보며 기다려주는 듯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혜선아~ 실은~ 나 서프라이즈! 말해줄 게 또 있어.” 부끄러움을 머금은 듯 주스 한 모금 삼킨 수아는 눈빛이 반짝였고, 입은 열고 싶어 안달 나 보였다.
“할 말이 뭔데? 빨리 말해. 혹시, 프러포즈라도 받았어?!” 채근하듯 수아의 눈빛보다 더욱 빛을 내며 물었다. 누가 보면 취업을 앞두고 면접 결과를 기다리는 듯이, 몰입에 가깝도록 귀를 기울이며 시선은 수아의 스피커, 바로 입으로 향했다.
“여기~” 수아는 남자 친구에게 받은 명품 가방을 만지작거리더니 수줍게 무언갈 꺼내 보였다.
“뭐야, 임신?!” 그 순간만큼은 도무지 낯설어 눈만 커질 뿐, 나는 수아에게 환히 웃어 보이질 못했다. 순식간에 거리감이 느껴졌다. 그러나 나와 수아에게 좋은 일만 가득한 듯 앞으로의 미래가 탄탄대로일 거라고, 아직은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머쓱하게 웃어 보였다. 수아는 원했던 대답이 아니었는지, 아니면 나와 같은 느낌이었는지 모르게 낯설어하는 듯했다.
수아는 배가 나오기 전 드레스를 입고 싶어 했다. 그러나 드레스 피팅할 때 같이 가자던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낡은 주택을 카페 겸 주거 공간으로 리모델링하기란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건축사 사무소와 시공 전문 업체의 미팅으로 한창 바빴다. 기초 공사부터 단순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변수가 많았다. 결국 엄마에게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꾹 참고 결혼이나 하지, 뭔 일을 벌여~!” 엄마의 참으라는 말은 듣기 싫었다.
“조선시대 아니야. 난 시집살이 못 해.”
엄마는 결혼할 때 주려던 목돈을 내게 건넸다. 그래서 더욱이 예산을 아껴야 했다. 나는 각 공정별로 기술자와 직접 소통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바빴으면, 추워지는 줄도 몰랐다. 아니, 겨울이 지나가는 줄도 몰랐다. 2024년, 해가 바뀌고 겨울의 끝자락, 수아는 결혼식을 올렸다. 나는 의도치 않게 빈티지한 콘셉트의 카페를 완성했다. 다행히도 조명과 가구에 포인트를 주어 제법 카페 분위기는 낼 수 있었다. 물론, 2층 주거 환경은 열악했지만 벌어서 채우면 되었다. 나는 어렵게 꾸려놓은 카페를 보고 또 바라보았다. 앞으로 잘 될 일만 남았다는 희망과 기대감의 향미를 머금었다. 좋아하는 팝송으로 마음을 대변하듯 쩌렁쩌렁, 자랑하고 또 자랑했다. 몸도 마음도 구름 위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