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끼고 싶은 내 물건
오픈 전 커피 머신 등 카페 집기를 세팅하고, 쿠폰 도장과 우드 보관함, 오픈 현수막까지 모든 준비가 마무리 단계였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수아는 아직 오픈 전인 우리 카페를 자주 찾아왔다. 우리 집이라고 해야 할까? 메뉴 테스트를 해보겠다는 수아의 말, 임신한 수아를 위해 원하는 대로 내어 주었다. 사실 절친이지만 결혼 준비에 신경 쓰지 못했던 마음이 미안해서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수아의 서운한 마음을 달래준다고 해야 할까. 절친이지만 수아의 성질머리를 누구보다 잘 안다. 한 번 삐치면 오래가니 최대한 맞춰줬다.
수아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소파의 가죽이 된 양 늘어졌다. 갑자기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심각해 보였다. 수아에게 차를 건네며 물었다.
“무슨 일인데?”
“우리 오빠 본가가 부산이잖아? 나는 죽어도 내려가기 싫다고 하고, 시어머님은 내려오면 아파트 한 채 해주신다고 하고. 오빠만 가운데 껴서 힘들어하니까 답답하더라고. 그래서 싸웠어. 나만 오케이 하면 바로 갈 수 있다면서, 그 말만 나오면 싸우는 것 같아.” 수아의 말에 결혼은 현실이란 말이 와닿았다. 멀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에 말을 하기가 조심스러웠다.
“아파트 한 채? 좋지~! 그런데 시댁이랑 가까운 건 싫거든. 우리 시어머님이 보통 분이 아니신 건 너도 결혼식 때 봐서 알잖아? 상견례 때도 얼마나 힘들었는데. 으..”
“미정이랑 똑같네. 너마저 이렇게 얘기하면, 난 결혼은 진짜 안 하고 싶다.” 나는 시댁 뜻을 따라 지방으로 내려간 미정이라는 친구를 떠올렸다. 수아와 함께 우리 셋은 고등학교 때부터 절친이었다. 물론 지금은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그래서 임신했어, 작정하고. 난 절대 안 내려가. 여기 신축 들어갈 거야.”
수아답다. 원하는 건 어떻게든 가졌다. 수아의 계산이 놀랍도록 치밀했지만, 나는 친구로서 응원했다.
주말, 다시 찾아온 수아는 내게 뜻밖의 제안을 해왔다. 곧 육아 휴직을 쓸 거라며, 자신이 만든 케이크를 진열하고 싶다고 했다. 적극적으로 카페 홍보까지 맡아서 해주겠다고 하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당장은 재료 값만 받겠다고 했고.
“아! 혜선아, 너도 여기 동네 맘 카페 가입해!”
동네 이웃 엄마들의 일상을 염탐하기 시작하면서 육아와 가사, 식사 메뉴, 맛집 등 도움 된다며 설명했다. 하도 닦달해 바로 회원 가입을 해두었다. 지역 맘 카페를 활용해 홍보하자는 수아의 말, 탄탄대로라면 이보다 좋을 게 또 뭐가 있을까. 나보다 더 계획적인 수아의 말에 입꼬리는 내려오지 않았다. 물론, 부산으로 내려가지 않겠다는 하나의 의지이자 명분이었을 테니, 절친 찬스는 수아에게도 나에게도 이득이었다.
수아의 선물로 밋밋한 통창은 커튼을 달며 분위기가 더욱 깊어졌다. 가까이 사는 절친의 도움이 이리 완벽하게 든든할 줄이야. 오픈 전까지 카페를 구경하러 나온 사람들도 많았다. 그중에 여섯 살쯤 보이는 아이와 다정해 보이는 부부가 카페 앞을 한참 서성거렸다. 슬리퍼부터 등산화까지, 다양한 차림새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보니 오픈 전부터 성공한 것 같았다. 나는 저 건너편, 이미 지어진 신축 아파트를 올려다보며 나도 곧 들어갈 거라고, 수아 앞에서 감히 확신하듯 말했다.
“워워, 아직 오픈 전이야 혜선아, 너무 기대는 하지 말자.” 수아는 천장을 뚫고 위로 솟구치려는 나의 들뜸을 가라앉히려는 듯, 내 손목을 잡아챘다.
“나, 너무 들떴니? 하하.”
카페 거리 만들겠다고 먼저 들어와 독점할 생각에 욕심이었을까? 아직 다른 카페는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좋아, 혜선아. 까짓것, 내가 이 카페를 우리 동네 랜드마크로 만들어 줄게!” 아주 당당한 목소리로 나보다 더 들뜬 수아를 보니 웃음소리는 이미 대박을 맞닥뜨렸다.
CCTV에 화장실 향기까지, 수아의 관심은 내 지갑을 열기 바빴다.
“3월 중순쯤 오픈할까? 평일이 좋을까, 주말이 좋을까?” 나는 어느새 수아에게 의존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 오픈 이벤트부터 준비해야지!” 한 잔을 더 줄지, 할인을 해줄지. 수아의 말에 우리는 마치 동업을 한 것만 같았다.
마침 간판을 시공해 주실 기사님과 관계자분이 오셨다. 벽에 조명처럼 비추어질 한 글자 [시], 시간이 머물고 사람이 머물며, 마음이 머물기를 바랐다. 곧장 수아와 밖으로 향했다. 기사님의 전문가 포스는 조금의 간섭도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툴툴대는 수아의 성격이 기사님과 미묘한 신경전을 일으키려는 게 보였다. 나는 다시 수아를 데리고 카페 안으로 향했다.
“임산부는 앉아서 쉬시오~!” 정식으로 오픈하기도 전에 사람 대 사람으로 마찰은 없었으면 싶었다. 이미 지정석이 생긴 듯 익숙한 소파에 앉혔다. 커피 머신의 소리는 언제 들어도 안정감이 들고, 나는 감사의 의미로 커피 한 잔씩 기사님들께 건넸다.
기사님 차량이 힘겹게 후진하며 빠지고, 다시 카페 안으로 들어가려던 찰나였다. 밖에서 요란한 카트 소리가 들렸다.
“설마!!!”
“오오!!!”
우리는 동시에 택배 기사님을 반겼다. 크기도 제각각, 택배 상자는 순식간에 문을 지키며 쌓였다. 듬직해 보였다. 큰 상자부터 열어가며 분리수거를 동시에 하려는 내 성격과는 달리, 수아는 손에 닿는 작은 상자부터 대충대충 열었다.
“우리가 동업했으면 여기서부터 마찰이 있었을 거야.”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푸합!! 맞네, 맞아. 이런 데서 성격이 나온다니까?!”
애초에 눈에 띄던 로고, 기다리던 상자는 수아 손이 안 닿는 곳에 슬쩍 두었다. 무슨 본능이었을까? 솔직히 욕심 많은 수아가 탐낼 것 같았다. 제일 마지막에 내가 직접 뜯기를 바라는 마음, 수아는 손에 닿는 대로 뜯어가며 바닥은 이미 아수라장이 되었다. 어수선한 틈을 타 조용히 카운터로 향했다. 서랍에 넣었다. 아무리 절친이어도 내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끼고 또 아끼고 싶은 티스푼은 나 혼자 열어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