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하니까

[제3부] 서로의 숨을 방해하지 않는 우정 : 우리 사이, 기분 좋은 온

by 잼민아씨

어릴 적 우리는 '영원한 우정'이라는 신화를 믿으며 자란다. 친구라면 모든 것을 공유해야 하고, 어떤 순간에도 내 편이 되어야 하며, 그 관계는 평생 변치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깨닫게 되는 서글프지만 명확한 진실이 있다. 모든 사람과 끝까지 친구로 남을 수는 없으며, 친구 관계에도 각자의 계절이 있다는 사실이다.


불교에서는 이를 '시절인연(時節因緣)'이라 부른다. 모든 인연에는 오고 가는 때가 있으며, 억지로 붙잡는다고 해서 머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한때는 서로의 우주였으나 이제는 자연스럽게 멀어진 인연들을 보며 나는 한때 자책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들은 내 인생의 특정 구간을 함께 걷기 위해 나타난 고마운 동행자였음을. 시절인연을 인정할 때 우리는 비로소 관계의 무게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진정한 우정은 무조건적인 밀착이 아니라, 서로의 호흡을 방해하지 않는 '정중한 거리'에서 완성된다. 너무 가까우면 서로의 가시에 찔리고, 너무 멀면 온기를 잃는 고슴도치들처럼 우리에게도 '무해한 거리'가 필요하다. 그 거리를 유지해 주는 힘이 바로 배려와 존중이다. 상대가 침범받고 싶지 않은 영역을 알아봐 주는 것, 나의 호의가 상대에게 당연한 권리가 되지 않도록 경계하는 것. 이 당연한 기본이 생략된 관계는 결코 오래 지속될 수 없다.


무엇보다 건강한 친구 관계란 결국 서로에게 '득'이 되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득이란 세속적인 이익이 아니라 '정서적 상생'이다. 함께 있을 때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 대화 후에 마음이 맑아지는 충만함, 그리고 서로의 성장을 진심으로 응원해 줄 수 있는 넉넉함이다. 만약 어떤 관계가 나를 자꾸만 갉아먹고,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온몸이 진흙탕에 구른 듯 무겁다면 그것은 더 이상 우정이 아니다. 정을 핑계로 서로를 방치하는 게으른 습관일 뿐이다.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서로의 인생이라는 텃밭에 좋은 씨앗을 심어주는 행위여야 한다. 내가 준 배려가 상대의 존중으로 돌아오고, 그 선순환 속에서 서로가 함께 나아갈 때 그 우정은 비로소 삶의 동력이 된다. 억지로 비위를 맞추며 나를 지우는 다정함은 이제 그만두기로 했다. 대신, 나는 나의 선을 존중하고 서로에게 건강한 에너지를 줄 수 있는 이들에게만 내 마음의 자리를 내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우정을 쌓아야 한다. 비록 그 끝이 언젠가 또 다른 시절인연으로 기록될지라도,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성장이 되어주었던 그 시간만큼은 우리를 살게 하는 힘이 되었으니까. 서로의 존재가 서로에게 축복이 되는 인연, 그런 담백하고도 단단한 관계들이 내 삶의 면역력을 높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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