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내 존재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이불 속
나는 남들보다 피부가 한 겹 얇게 태어난 사람 같다.
세상에는 '말'이라는 이름의 무수한 입자가 떠다닌다. 남들에게 그것은 옷깃을 스쳐 지나가는 무색무취의 바람일 뿐이지만, 나에게는 매 순간 날카로운 파편이 되어 살갗 깊숙이 박힌다. 타인의 무심한 표정, 정제되지 않은 말투, 공기 중에 섞인 미묘한 냉소는 유독 나의 얇은 경계를 손쉽게 파고들어 지우기 힘든 얼룩을 남기곤 했다. 사람들은 흔히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라"라고 말하지만, 나에게는 그 흘려보낼 공간조차 허락되지 않은 것만 같았다. 내 마음은 모든 자극을 흡수하고 머금어버리는 투명한 스펀지였다.
누군가 툭 던진 말의 모서리에 긁혀 마음이 진물처럼 짓무르는 날이면, 나는 세상의 전원을 끄고 나의 유일한 요새인 침대 속으로 침잠했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쓴 채 어둠 속으로 숨어드는 것만이 내가 아는 유일한 생존 방식이었다.
어떤 이들은 이를 의지 박약이라거나 회피라고 부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에게 그 시간은 비겁한 도망이 아니었다. 그것은 과부하가 걸린 영혼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선택한 '저전력 모드'였고, 부서진 마음의 조각들을 제자리에 다시 가져다 놓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나만의 응급처치였다. 텅 빈 방 안에서 펑펑 울어내고 긴 잠에 빠져드는 행위는, 뜨겁게 달아오른 상처의 온도를 낮추는 가장 본능적이고도 고독한 회복의 의례였다. 그렇게 한참을 어둠 속에 머물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내일을 마주할 작은 숨구멍을 찾아낼 수 있었다.
오랫동안 나는 나의 이 예민함을 지독한 콤플렉스로 여겨왔다. 왜 나는 남들처럼 덤덤하게 털어내지 못할까. 왜 나는 이토록 투명해서 세상의 모든 빛과 그림자를 온몸으로 받아낼까. 나 자신을 미워하는 일은 타인에게 상처받는 일보다 더 쉬웠고, 그럴수록 나의 자존감은 썰물처럼 빠져나가 바닥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나의 예민함은 결함이 아니라, 남들보다 조금 더 세밀하게 세상을 감각하도록 설계된 고성능 안테나였다는 것을. 그리고 이 안테나가 이토록 낮고 민감하게 벼려진 데에는, 아주 오래전 가장 안전해야 할 울타리 안에서 겪었던 시린 기억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나의 얇고 투명한 피부의 기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그 끝에는 늘 차갑고 무거운 공기를 두르고 있던 아버지의 뒷모습이 서 있다. 아버지는 나를 사랑했을지 모르나, 그 사랑을 꺼내놓는 방식은 늘 날이 서 있었고 거칠었다. 나를 가장 따뜻하게 안아줘야 할 존재가 던진 말들은 예고 없이 찾아오는 재난과 같았다.
"낳을 때는 참 예뻤는데……."
아버지가 습관처럼 내뱉던 그 문장은 내 영혼에 새겨진 가장 시린 문신이었다. '예뻤는데'라는 과거형의 조사는 잔인했다. 그 말은 지금의 나는 더 이상 예쁘지 않으며, 기대했던 모습에서 멀어졌다는 선고처럼 들렸다. 존재의 가치를 '과거'에 저당 잡힌 아이는, 그때부터 타인의 모든 반응에 '나를 부정하는 신호'가 있는지 살피는 병든 안테나를 갖게 되었다. 타인에게 사랑을 갈구하고, 상대의 작은 변화에도 안절부절못하며 투정을 부렸던 것은 어쩌면 아빠에게 듣지 못했던 "너는 지금도 충분히 예쁘다"라는 말을 확인받고 싶었던 어린 날의 결핍이었을 것이다.
그 결핍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독이 되어 돌아왔다. 관계의 무게를 나 혼자 100% 짊어지려 했고, 상대가 페달을 밟지 않는 2인용 자전거를 필사적으로 젓다가 결국 스스로 무너져 내렸다. 나를 사랑해달라는 애원 섞인 투정은 상대에게 부담이 되었고, 그들이 질려 떠나갈 때마다 나는 다시 한번 "역시 나는 예쁘지 않은 존재인가 봐"라며 나를 계속해서 깎아내리며 학대했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 문장을 완전히 다르게 읽기로 했다. "낳을 때는 예뻤는데"라는 말은 나의 결함이 아니라, 아버지가 가진 표현의 가난함이었을 뿐이다. 그는 사랑을 다정하게 건네는 법을 배우지 못한 서툰 인간이었을 뿐이며, 그의 시력이 나의 진실을 다 담지 못했다고 해서 내가 가치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가, 혹은 그 누군가가 내뱉은 무례한 단어들이 나라는 사람의 본질을 정의하게 내버려 두지 않기로 했다. 그들의 평가는 그들의 인격일 뿐, 나를 정의할 수 없다.
상처는 살아가면서 예기치 않게 계속해서 찾아올 것이다. 내가 상처를 받지 않도록 세상을 통제할 수는 없지만, 그 상처가 나를 무너뜨리지 못하도록 예방주사를 놓을 수는 있다. 내 피부가 남들보다 얇아 상처가 잘 난다면, 이제는 내가 나에게 가장 먼저 연고를 발라주려 한다. 타인이 휘두르는 무례한 말들이 내 안의 소중한 집을 허물지 못하도록, 나는 오늘 나를 위한 백신을 주입한다.
"그 사람의 무례함은 결코 나를 정의할 수 없다. 나는 여전히 나로서 충분하며, 상처받은 자리에는 반드시 더 단단한 새살이 돋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나에게 놓아주는 첫 번째 예방주사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을 살아가야 할 가장 분명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