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장소에서 회복의 장소로
뇌동맥류 수술을 하기 전 내가 살고 있던 곳은 당시 아버지 목회지였던 포천 송우리였다. 내가 그렇게 된 이후로 아버지는 거기서 목회를 정리하고 다시 예전에 살던 집으로 이사를 갔었다.
송우리에서 마지막은 절뚝거리는 다리와 몸도 마음도 상처받은 채로 떠났었고 이사 간 집에서는
재활치료를 받으러 아버지와 함께 일산병원에 통원치료를 다녔었다.
나는 대학교 학비도 내가 아르바이트해서 번돈으로 해결을 했을 정도로 독립적인 편이었는데 한순간에 부모님께 신세를 지게 된 게 마음이 아팠고 최대한 열심히 운동과 재활치료를 받아서 6 개원만에 병원에서 이제 치료 안 받아도 된다고 할 정도로 회복을 했다.
이유는 단 하나.
부모님께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방송작가일을 하면서
지내다가 더 공부를 하고 싶단 생각에 대학원을
준비했는데 운 좋게 붙어서
과외알바를 하면서 신나게 학교를 다니던 26살의 봄.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었다.
"송우리에 있는 국어학원인데 토요일 오전에 나와서 아이들 내신 수업을 맡아줬으면 좋겠다."라는 전화를 받고 나는 거리가 너무 먼 것 같아서 머뭇거리다 실패하듯 패배자처럼 떠났던 송우리에 당당하고 멋있게 다시 가게 되는 것도 좋은 것 같아 제안을 받아들이고 토요일마다 새벽에 일어나서 중고등학생들 내신 수업 강의를 진행했다.
출산휴가를 떠났던 기존 선생님을 대체하는 자리리서 몇 달 동안이었지만 나는 최선을 다해서 수업을 준비하고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대했고,
내 마지막 수업엔 호환마마보다 무섭다는 중2아이들이 선생님 가지 말라고 너무 아쉽다고 눈물까지 흘려주었다..ㅠㅠ
기존 선생님은 너무 무서웠는데 나는 기 선생님과는 거리가 멀어서 아이들을 크게 혼낸 적도 없고 늘 얘들아 왜 공부 안 해~~ 이거 해야지~~ 하면서 잘 비위 맞춰주고 타이르던 착한 선생님이란 게 아쉽단 이유였지만...
실패했던 자리에 당당하게 다시 서게 되건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게 된 귀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