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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 Feb 22. 2022

다사다난한 남미 여행

페루 여행 6편

쿠스코 생활의 시작.

 

 지금부터는 여행이 아니라 페루에 사는 주민이 되었다. 


 "쿠스 퀘냐" 


 쿠스 퀘냐는 쿠스코에 사는 주민들을 이렇게 부른다. 나는 하루아침에 쿠스 퀘냐가 되었다. 쿠스 퀘냐가 된 이후로 쿠스코에 삶은 더욱더 여유로워 졌다. 이젠 나랑 같이 다니던 동행들은 모두 볼리비아를 향해 떠났다. 과외를 하는 동안은 오전엔 과외를 하고 오후에 출근을 했다. 이주만 하기로 했지만 어쩌다 보니 두 달이나 있게 되었다. 여행사는 나 파비앙  파비앙 동생 파비앙 부인 파비앙 부인 사촌 여동생 여섯 명이서 운영을 한다. 가족기업이다. 파비앙 동생은 가끔씩 나오고 파비앙 부인은 애기를 데리고 일을 하는 건 아니고 그냥 놀러 온다. 


 실질적으로 일하는 사람은 나 파비앙 사촌 여동생 루스 셋이 일을 한다. 나랑 파비앙은 손님이 오면 상담을 해주고 루스는 서류 작업을 주로 한다. 그리고 원래 있던 숙소에서 좀 더 저렴한 곳으로 옮겼다. 전 숙소에서 꽤나 장기 숙박객이었던 나는 직원들과 친해졌었는데 바이바이하고 조금 더 저렴한 곳으로 이사를 했다. 숙소 컨디션은 나쁘지 않았고 사람도 많이 없어서 장기로 있기에 꽤나 괜찮은 곳이었다. 

 

 숙소에는 일본인 여행객 두 명이 있었고 며칠 뒤 필리핀 여행객 한 명 유럽 여행객 3명 정도가 들어왔다. 일본인 여행객 두 명은 둘이 친구였고 며칠 뒤에 우유니로 갈 거라고 했다. 우유니 쪽 날씨 때문에  쿠스코에서 대기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필리핀 친구 인상이 아주 강했다. 필리핀에 사는 건지 모르겠지만 6개월째 여행 중이었고 체격도 좋고 머리는 레게머리를 땋고 해서 나는 히피인 줄 알았다. 나를 처음 보자마자 마리화나 있냐고 그래서 얜 히피구나 했다. 큰 착각이었다. 


 남미에서 마리화나는 불법이지만 굉장히 구하기가 쉽다. 중미 쪽은 정말 더 구하기가 쉽고 쿠스코에서도 길 가다 지나가다 보면 마리화나 살 거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수두룩 하다. 한국에서는 꽤나 마리화나에 관해 엄격 한 편이지만 해외에 나가보면 사실 어딜 가나 마리화나 정도는 쉽게 구할 수 있다. 이게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보통 그렇다. 나는 술은 하지만 담배는 하지 않는다. 왜 안 하면 해야 되는 이유를 아직 찾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마리화나도 크게 관심이 없었다. 알고 보니 히피는 아니었고 가방에 고프로 아이폰 DSLR 거기다 촬영용 드론까지 가지고 다니면서 여행 다니는 그냥 프로 여행꾼이었다. 


 히피는 걔가 아니라 내가 히피였다. 돈도 천불이나 날렸으니... 그리고 그 드론은 나중에 비니쿤카에서 촬영하다가 뭐 가 잘못 됐는지 비니쿤카 저 뒤로 날아가 버렸다고 했다. 비니쿤카는 쿠스코 근처에 있는 해발 5,000M의 무지개산이다. 필리핀 친구는 매일 밤마다 클럽을 갔다. 나한테 같이 가자고 했는 데 클럽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맨날 이런저런 핑계로 가지 않았다.  


 처음엔 오후에만 여행사에 출근을 했다.  수업이 끝나고부터는 오전에도 심심해서 조금씩 일찍 나가게 됐는데 이젠 매일 10시쯤에 출근하게 되었다. 10시부터 보통 7시에서 늦으면 8시까지 일을 했는데 처음에는 관광객이 많지는 않았다. 그래서 맨날 그냥 앉아서 파비앙이랑 이야기만 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다가 한국인 여행사를 하게 됐냐고 물어보니 자기도 처음에는 마추픽추 관광가이드였는데 가이드를 하면서 한국인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매일 한국인들이랑 농담하고 하다 보니 자기랑 한국인이랑 잘 맞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고 내가 여행사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처음 한 2년은 너무 손님이 없어서 망하는 거 아닌가 하면서 정말 근근이 버텼다 고 한다. 그러다 조금씩 알려지고 유명해져서 지금은 쿠스코에서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여행객들 뿐만 아니라 주변 여행사에서도 한국사람들이 파비앙 어딨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아서 파비앙을 사칭하는 사람들도 생겼다고 했다. 무튼 여행사에 오는 사람들의 90퍼센트는 한국사람들이고 10퍼센트 정도가 외국 사람이다. 


처음 오는 여행객들의 반응은 첫 번째 한국인 직원이 있다는 거에 놀라고 두 번째 라면이랑 소주를 판다는 것에  놀란다. 그리고 처음으로 나에게 하는 질문은 여기서 어떻게 일하게 됐냐고가 첫 번째고 두 번째는 급여는 어떻게 하냐고가 두 번째다. 나도 한국인이지만 정말 한국인 다운 질문이다.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많이 온다. 대부분이 20대 초 중반에 대학생들이 많지만 퇴직을 하시고 여행 다니시는 분들, 군대에서 전역하자마자 본인의 인생을 찾고자 계획 없이 온 친구들, 아이 둘을 데리고 다니면서 1년째 여행 다니는 가족까지 정말 이지 다채롭다. 


사실 인생은 나는 다채롭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삶이 지루하다고들 하지만 생각보다 다채롭다. 이런 사람들의 삶을 제삼자로서 지켜본 다는 것은 되게 재밌는 일이다. 동기부여되는 일이기도 하고 아무튼 나는 이상주의자이긴 한데 모두들의 인생이 다채롭고 재밌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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