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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담는자(소설)

1장: 동이족의 분화

by 한시을

1화: 황하 유역, 마지막 대집결


나는 그날 황하의 분노를 보았다.


붉은 흙탕물이 포효하며 마을을 향해 밀려오고, 강바닥에서 굴러가는 거대한 돌덩이 소리가 귓가를 찢을 듯 울렸다. 바람이 실어온 축축한 흙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것은 단순히 물의 범람이 아니었다. 인간의 무력함을 조롱하는 거대한 생명체, 파멸의 용이었다. 지난달에도 천막 백여 개가 떠내려갔고, 저장해 둔 곡식 절반이 물에 잠겼다. 이제 황하는 더 이상 생명의 젖줄이 아니었다.


나는 그때 무진이라는 이름의 스무 살 청년이었다. 동이족 중에서도 특별한 혈통으로 여겨졌다. 사람들은 내가 바람이 나뭇가지를 스치는 소리에서 선의 방향을 읽는다고 했고, 물이 돌을 굴리는 소리에서 형태의 비밀을 듣는다고 했다. 동이족은 모두 자연을 읽는 능력이 있었지만, 나는 그중에서도 특별했다. 사람들은 나를 '소리를 담는 자'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날 밤, 나는 무력했다. 황하의 분노 앞에서 내 모든 능력이 무의미했다.


젊은 족장들의 모임이 사흘째 이어지고 있었다. 밤샘 논쟁으로 움막 안은 눅눅하고 무거운 공기로 가득했다. 모두가 지쳐 있었고, 해답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마침내 무로의 입에서 절박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다!"


두 갈래 길의 선택


"조상들이 천 년을 지켜온 이 땅을 어떻게 버릴 수 있단 말인가!"


늙은 족장 타코가 주름진 손으로 거친 나무 탁자를 내리쳤다. 그의 눈은 희미했지만, 그 안에 담긴 고집은 꺾일 줄 몰랐다. 옆에 앉은 딸 루나는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스물두 살의 그녀는 동이족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불렸지만, 그보다는 지혜로운 것으로 더 유명했다. 타코는 그녀를 무로에게 시집보내려 했지만, 루나는 완강히 거부하고 있었다.


"족장님의 말씀을 이해합니다." 무로는 그릇이 깨질까 조심스럽게 물을 따르듯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모든 사람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현실을 보십시오. 지난 칠 년 동안 우리가 잃은 것이 무엇입니까? 사람 삼백 명, 가축 천여 마리, 곡식 창고 열두 개. 이번 겨울을 버틸 식량도 부족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도망치는 것이 답이란 말인가!" 타코가 벌떡 일어났다. "우리 조상들도 수많은 시련을 겪었다. 하지만 견뎌냈다. 그래서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이다!"


"조상들 시대에는 황하가 이렇지 않았습니다!" 젊은 족장 바람이 끼어들었다. "제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전 황하는 맑고 잔잔했다고. 지금처럼 미친 짐승 같지 않았다고!"


순간 움막 안이 조용해졌다. 모두가 알고 있는 진실이었다. 황하가 변했다. 점점 더 사나워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 실마가 입을 열었다. 그는 서남쪽을 바라보는 신비주의자였다. "무로는 동쪽이라 하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서남쪽, 높은 산들 너머에 신들이 사는 땅이 있다. 그곳에서 새로운 지혜를 찾아야 한다."


"신들의 땅?" 무로가 비웃었다. "실마, 당신은 꿈을 좇고 있소. 동쪽 바다 너머는 현실이오. 우리 상인들이 직접 확인한 땅이오. 기름지고 온화한 곳이라 했소."


"꿈이라고?" 실마의 눈이 번뜩였다. "그렇다면 묻겠소. 무로, 당신이 그토록 확신하는 동쪽 땅에서 우리가 정말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 믿소?"


"물론이오.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시작을..."


"아니요!" 실마가 일어서며 소리쳤다. "당신은 도망치려는 것뿐이오! 진정한 해결책을 찾으려 하지 않소!"


두 사람이 서로를 노려봤다. 움막 안의 긴장감이 극에 달했다.


그때 루나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두 분 모두 옳으시고, 모두 틀리셨어요."


모든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다.


"무로님, 당신은 현실적이시지만 너무 성급하세요. 실마님, 당신은 지혜로우시지만 너무 이상적이세요.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둘 다입니다."


"무슨 뜻인가?" 타코가 물었다.


"동이족이 하나로 남을 수는 없다면, 차라리 여러 갈래로 나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뜻이에요. 무로님은 동쪽으로, 실마님은 서남쪽으로. 그리고 아버지는 이곳에 남으셔서 조상의 터전을 지키시는 거예요."


"그럼 너는?" 무로가 간절한 눈으로 물었다.


루나가 잠시 망설였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갈등이 일고 있었다. 무로를 따라가고 싶은 마음과 아버지를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 사이에서.


그때 움막 밖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물이 온다! 큰 물이 온다!"


모두가 뛰쳐나갔다. 황하가 또다시 둑을 넘나서고 있었다. 이번에는 더 거셨다. 물결이 마을 중심가까지 밀려오고 있었다. 달빛 아래서 물거품이 하얗게 부서지며 무서운 소리를 내고 있었다.


"메이!"


무로가 절규했다. 그의 연인 메이가 무너지는 집 잔해에 깔려 있었다. 그녀는 무로의 소꿉친구이자 첫사랑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란 사이였지만, 두 사람의 꿈은 달랐다. 무로는 새로운 세상을 꿈꿨고, 메이는 고향을 지키고 싶어 했다.


"메이야!" 무로가 물속으로 뛰어들려 했지만, 급류가 너무 거셌다.


그때 루나가 메이를 구하려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그녀 혼자서는 역부족이었다.


바람의 소리로 선을 읽고 물의 흐름으로 형상을 보던 나의 재능은, 거대한 재앙 앞에서 한낱 유희에 불과했다. 그때, 또다시 무너지는 집 잔해에 깔린 메이의 절규가 들렸다. 그 소리는 단순한 비명이 아니었다. 나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물속으로 뛰어들어 두 여인을 끌어냈다. 메이는 다리에 상처를 입었지만 목숨은 건졌다. 루나는 흠뻑 젖은 채로 무로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아셨겠지요? 이곳에 머물면 우리 모두 죽습니다."


무로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메이의 손을 잡으며 그가 말했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함께 떠나자. 메이야, 너와 함께라면 어디든 갈 수 있다."


하지만 메이가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깊은 슬픔과 함께 확고한 의지가 서려 있었다.


"무로 오빠... 안 돼요. 누군가는 이곳에 남아야 해요. 조상들의 무덤을, 우리의 뿌리를 지켜야 해요."


"그럼 나도 남겠다!" 무로가 외쳤다. "너 없는 새로운 땅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


"안 돼요." 메이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오빠는 떠나야 해요. 새로운 땅에서 우리 동이족의 씨앗을 심어야 해요. 그게 오빠의 운명이에요."


"운명?" 무로가 쓰게 웃었다. "운명이 이렇게 잔인할 수 있단 말인가?"


메이가 무로의 뺨에 손을 댔다. "오빠, 사랑한다는 것은 때로 보내주는 것이에요. 제가 오빠를 진정 사랑하기 때문에 보내드리는 거예요."


"메이야..." 무로의 목소리가 떨렸다.


"약속해 주세요. 새로운 땅에서 행복하겠다고. 그리고..." 메이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때때로 저를 기억해 주세요. 이곳에서 오빠를 기다리고 있을 제가 있다는 것을."


"기다리다니!" 무로가 절규했다.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기다릴 거예요." 메이가 미소를 지었다. "우리 동이족은 약속을 지키는 민족이잖아요."


루나가 두 사람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저도... 저도 아버지와 함께 남겠어요."


무로가 놀란 눈으로 루나를 바라봤다. "루나양, 당신은..."


"제 마음을 정했어요." 루나가 씁쓸하게 웃었다. "메이가 맞아요. 누군가는 남아서 뿌리를 지켜야 해요. 그리고..." 그녀가 잠시 망설였다. "그리고 저는 무로님을 사랑하지 않아요. 존경하지만, 사랑하지는 않아요."


무로가 당황했다. "그럼 왜 지금까지..."


"아버지의 뜻이었어요. 하지만 진정한 사랑 없이는 결혼할 수 없어요.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불행이 될 테니까요."


텐트 안이 조용해졌다. 물소리만이 멀리서 들려왔다.


주인공의 첫 번째 개입


그날 밤, 대족장 한울이 마지막 결정을 내렸다.


그는 동이족 전체를 아우르는 유일한 지도자였다.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신은 맑았고, 말 한마디 한 마디에는 천 년의 지혜가 담겨 있었다.


"하늘이 우리에게 시험을 주고 있다." 한울의 목소리는 낮지만 힘이 있었다. "황하의 분노는 우리에게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제 동이족은 갈라져야 한다. 씨앗을 여러 곳에 뿌려야 한다."


그가 화로에서 나무 조각 두 개를 꺼냈다. 밤새 정성스럽게 깎은 것들이었다. 하나에는 용의 무늬를, 다른 하나에는 봉황의 무늬를 새겼다.


"용을 택하는 자는 동쪽으로, 봉황을 택하는 자는 서남쪽으로 가라. 그리고 이 표식을 후손들에게 전하라. 언젠가 이 두 표식이 다시 만날 때까지."


무로가 앞으로 나서서 용의 표식을 집어 들었다. 그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메이와의 이별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실마가 한 걸음 늦게 나서서 봉황의 표식을 가져갔다.


"그럼 이곳에 남는 우리는?" 타코가 물었다.


한울이 세 번째 조각을 꺼냈다. 거북 모양이었다. "거북은 천 년을 산다. 인내와 지혜의 상징이다. 이곳에 남는 자들은 이것을 가져라."


타코가 거북 표식을 받았다. 그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나는 그때 알았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족장님," 내가 앞으로 나섰다. "이 순간을 기록해야 합니다. 후손들이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할 수 있도록."


한울이 나를 바라봤다. 그의 눈에는 깊은 이해가 담겨 있었다. "그렇다, 무진이야. 너의 능력이 필요한 때다."


나는 품에서 거북 등껍질을 꺼냈다. 이것은 내가 어린 시절부터 간직해 온 것으로, 특별히 매끄럽고 단단했다. 그리고 작은 돌칼로 조심스럽게 선을 그었다.


먼저 황하의 물줄기를 그렸다. 구불구불하면서도 사나운 모습으로. 칼끝이 껍질을 파고들 때마다 실제 강물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물의 분노, 물의 슬픔, 물의 희망이 모두 그 선 안에 담겨 있었다.


그 옆에 사람들을 그렸다. 동쪽을 가리키는 사람, 서남쪽을 향하는 사람, 그리고 중앙에 남아 있는 사람. 각각의 사람 모양 옆에는 용과 봉황, 거북의 형상을 새겼다. 선 하나하나가 마치 숨을 쉬며 생명을 얻어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가장 중심에는 무로와 메이의 모습을 그렸다. 손을 맞잡고 있지만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두 사람. 사랑하지만 헤어져야 하는 운명을 상징했다.


마지막에 나는 갈래길을 그렸다.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셋으로 뻗어나가는 길들. 그 안에는 동이족 전체의 운명이 담겨 있었다. 글자들이 완성되어 가자 마치 껍질 위에서 작은 세상이 펼쳐지는 것 같았다.


"이것이... 우리의 이야기인가?" 타코가 놀란 눈으로 물었다.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는 기억을 바람에 날려 보내지 않고 붙잡아 둘 수 있습니다. 천 년이 지나도, 만 년이 지나도 오늘 밤의 결정을 후손들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계속해서 다른 그림들을 새겼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헤어지는 모습, 새로운 땅을 향해 떠나는 무리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이라는 희망. 각각의 그림마다 그 순간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때 나는 시선을 느꼈다. 멀리 떨어진 언덕 위, 어둠 속에 서 있는 누군가였다. 그는 그림자처럼 흐릿했지만, 그 시선은 나를 꿰뚫어 보는 듯했다. 내가 거북 등껍질에 선을 새길 때마다, 그 시선이 더욱 강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마치 나의 손에서 미래의 역사가 펼쳐지는 것을 목격하는 자의 시선이었다.


'누구일까? 설마... 나처럼 소리를 담는 능력을 가진 자일까?'


나는 잠시 손을 멈추고 어둠을 응시했다. 하지만 그 시선은 이미 사라진 후였다. 다만 가슴속에 묘한 떨림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마치 어딘가에서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예감 같은 것이.


"언젠가는 더 정교한 방법을 찾을 것입니다." 내가 다시 작업을 하며 중얼거렸다. "소리 자체를 모양으로 만드는 방법을. 마음 자체를 형태로 담는 방법을."


그 순간 내 머릿속에서 환상이 떠올랐다. 훨씬 먼 미래, 동쪽 바다 너머에서는 이 그림들이 복잡한 글자로 발전하는 모습이. 서남쪽 산 너머에서는 전혀 다른 형태의 아름다운 문자가 태어나는 모습이. 소리를 신성시하는 문자, 천상의 음성을 담는 글자들.


그리고 마침내 두 전통이 하나로 합쳐져 완벽한 문자를 만드는 모습이. 뜻도 담고 소리도 담는,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기적 같은 문자.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지금 이 순간, 이별의 아픔에서 시작되었다.


메이가 무로의 손에서 용의 표식을 받았다. "이것을 가져가세요. 그리고 새로운 땅에서 행복하세요. 저는... 저는 여기서 오빠를 기다리고 있을게요."


무로가 울먹였다. "메이야... 정말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만날 수 있어요." 메이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아니라면 우리 후손들이라도. 이 표식들이 다시 하나가 되는 날이 올 거예요."


동이족의 마지막 밤이 깊어갔다. 황하는 여전히 울부짖고 있었지만, 그 소리는 이제 이별의 노래 같았다. 새로운 시작의 찬가 같기도 했다.


내일이면 정말로 모든 것이 바뀔 것이다. 오천 년에 걸친 문자의 여행이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모든 여행을 함께할 것이다. 기억하는 자로서, 기록하는 자로서, 소리를 담는 자로서.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 신비로운 시선의 주인을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다른 시대, 다른 모습으로. 그리고 그때는 단순한 관찰자가 아닌, 더 특별한 관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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