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욕망을 쫓는 물고기들: 불교로 보는 문학의 풍경

제1부 새로운 렌즈 – 하늘·먹이·물고기

by 한시을

3회: 물고기 - 끝없이 펄떡이는 인간


연못가의 관찰


연못가에 앉아 물고기들을 한 시간 정도 지켜본 적이 있나요? 처음에는 모두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놀라운 차이가 있습니다.


같은 먹이가 떨어져도 반응이 완전히 다릅니다. 어떤 물고기는 번개처럼 빠르게 달려들고, 어떤 물고기는 주변을 맴돌다가 조심스럽게 접근합니다. 어떤 물고기는 아예 관심을 보이지 않고 다른 곳으로 헤엄쳐 갑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같은 물고기라도 상황에 따라 다르게 행동한다는 점입니다. 배가 고플 때와 배부를 때, 혼자 있을 때와 다른 물고기들과 함께 있을 때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문학 속 인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 인간이지만 하늘에서 떨어진 먹이에 대한 반응이 천차만별입니다. 그 차이가 바로 각자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죠.


물고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물고기, 즉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완성된 존재가 아닙니다. 6개의 감각기관(안이비설신의)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어떤 물고기가 될지는 어떤 먹이를 경험하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부처님이 통찰한 과정은 이렇습니다. 6개 감각기관이 6개 먹이(색성향미촉법)와 접촉하면 '상(相)'이 생깁니다. 즉, 뭔가를 인식하게 되죠. 그 인식이 행동으로 이어지고(행), 그 경험이 우리 뇌와 마음에 깊이 각인됩니다(식).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아이가 처음으로 초콜릿을 맛봅니다. 혀(설)가 단맛(미)과 접촉해서 '달콤하다'는 상을 형성합니다. 그래서 더 달라고 하는 행동을 하게 되고, '초콜릿은 좋은 것'이라는 인식이 뇌에 각인됩니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됩니다. 한 번 맛본 달콤함을 잊을 수 없어서, 계속 초콜릿을 찾게 됩니다. 그리고 점점 더 달고, 더 자극적인 것을 원하게 되죠. 이것이 바로 욕망의 순환 구조입니다.


'의(意)'를 중심으로 한 욕망 체계


6개 감각기관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의(意)', 즉 마음입니다. '의'는 나머지 5개 기관을 조종하는 중심축 역할을 합니다.


어떤 가치관과 신념을 가지느냐에 따라 같은 자극도 다르게 받아들입니다. 유교적 가치관을 가진 조선시대 사람과 자유주의적 가치관을 가진 현대인이 같은 상황을 완전히 다르게 해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춘향을 다시 보세요. 그녀의 '의'에는 신분제에 맞선 의지가 깊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변학도의 유혹(색, 미, 촉)을 봐도 '부당한 것'으로 인식했고, 몸(신)으로 거부 행동을 했습니다. 만약 춘향의 '의'에 다른 가치가 들어있었다면? 완전히 다른 선택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광수의 《무정》에서 이형식의 '의'는 어땠을까요? '계몽'과 '근대화'라는 가치가 들어있었습니다. 그래서 영채의 아름다움(색)을 보면서도 '신여성'이라는 틀로 해석했고, 신교육(법)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그의 '의'에 들어있던 가치들은 사실 일제가 허용한 범위 내의 것이었죠.


물고기들 사이의 경쟁과 모방


물고기는 혼자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다른 물고기들과 함께 강물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자신의 욕망 체계를 형성해 갑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경쟁입니다. 같은 먹이를 놓고 여러 마리가 달려들 때 가장 빠르고 강한 물고기가 차지합니다. 이 과정에서 승자는 더 자신감을 갖게 되고, 패자는 좌절감을 느낍니다.


조선시대 과거 시험을 생각해 보세요. 수많은 선비들이 같은 먹이(관직, 명예)를 놓고 경쟁했습니다. 합격한 소수는 기득권 물고기가 되었고, 낙방한 다수는 좌절한 물고기가 되었습니다. 《춘향전》에서 몽룡이 과거에 급제하고 돌아와 춘향을 구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경쟁에서 승리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경쟁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모방도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다른 물고기가 특정 먹이를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자신도 그 먹이를 원하게 됩니다.


현재 SNS 시대를 보세요. 인플루언서가 특정 제품이나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면, 수많은 사람들이 따라 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물고기들 사이의 모방 현상입니다.


물고기 무리의 형성


더 흥미로운 것은 비슷한 욕망을 가진 물고기들끼리 무리를 이룬다는 점입니다. 같은 먹이를 선호하고, 같은 가치관을 공유하는 물고기들이 모여서 집단을 형성합니다.


일제강점기를 보세요. 친일협력이라는 먹이를 받아먹는 물고기들끼리 무리를 이뤘고, 독립이라는 먹이를 추구하는 물고기들끼리도 무리를 이뤘습니다. 각각의 무리 안에서는 서로 비슷한 가치관을 공유하고 강화했습니다.


분단 시대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남한체제(자본주의+민주주의)를 선호하는 물고기들과 북한체제(사회주의+공산주의)를 추구하는 물고기들이 각각 다른 무리를 형성했고, 서로 대립했습니다.


현재는 어떨까요? 환경주의자들, 페미니스트들, 보수주의자들... 각각 다른 '법' 욕망을 추구하는 무리들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SNS를 통해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더욱 쉽게 모이고, 서로의 신념을 강화하고 있죠.


물고기의 변신 가능성


그런데 물고기는 한 번 정해지면 절대 변하지 않는 존재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새로운 먹이를 경험하거나, 강력한 충격을 받으면 완전히 다른 물고기로 변할 수 있습니다.


《채식주의자》의 영혜를 보세요. 처음에는 순종적인 아내 물고기였습니다. 남편이 주는 먹이(가부장적 질서)를 별 저항 없이 받아먹었죠. 하지만 어떤 계기를 통해(작품에서는 꿈) 자신 안에 다른 욕망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순간부터 완전히 다른 물고기가 되었습니다.


이런 변신은 개인적 차원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집단적으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4.19 혁명을 보세요. 평소에는 독재 체제에 순응하던 물고기들이 이승만의 부정선거라는 사건을 계기로 완전히 다른 물고기로 변했습니다. 순응하는 물고기에서 저항하는 물고기로 대규모 변신이 일어난 것이죠.


물고기가 강물을 바꾼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물고기가 단순히 먹이를 받아먹기만 하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물고기들의 행동이 모여서 강물을 바꾸고, 궁극적으로는 하늘까지 바꿀 수 있습니다.


개인 차원에서 보면, 각자가 가진 먹이-욕망 시스템들이 서로 충돌합니다. 때로는 같은 욕망을 가진 물고기들끼리 뭉치기도 하고, 때로는 서로 다른 욕망을 가진 물고기들끼리 갈등하기도 합니다.


이런 개별적 충돌과 연대가 모여서 사회 차원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강물이 변하는 것이죠. 그리고 강물의 변화가 충분히 크고 지속적이면, 운동이나 혁명의 형태로 발전해서 아예 하늘 자체를 바꿔버립니다.


조선 말기를 다시 보세요. 신분제에 불만을 가진 물고기들이 점점 늘어났습니다. 동학농민운동 같은 움직임이 일어났지만, 동시에 일본이 주는 새로운 먹이에 끌리는 친일파 물고기들도 있었습니다. 결국 친일파 물고기들의 강물이 더 거세서 일제강점이라는 새로운 하늘이 들어선 것입니다.


현대 물고기들의 특징


그렇다면 현재 신자유주의 하늘 아래에서 살고 있는 물고기들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요?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개인화'입니다. 과거에는 신분이나 계급에 따라 비슷한 욕망을 가진 물고기들이 집단으로 뭉쳐있었다면, 지금은 각자 다른 욕망 조합을 가진 물고기들이 흩어져 있습니다.


어떤 물고기는 성공(법)과 소비(미, 색)를 동시에 추구하고, 어떤 물고기는 힐링(촉)과 자아실현(법)을 함께 원합니다. 개인별로 욕망의 칵테일이 다 다른 것이죠.


두 번째 특징은 '속도'입니다. 과거보다 훨씬 빠르게 새로운 먹이가 나타나고 사라집니다. 유튜브 트렌드, SNS 챌린지, 새로운 앱... 물고기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먹이에 적응해야 합니다.


세 번째는 '가상성'입니다. 실제 경험보다는 이미지나 영상을 통한 대리만족이 늘어났습니다. 직접 여행을 가기보다는 여행 유튜브를 보고, 직접 요리하기보다는 먹방을 봅니다. 가상의 먹이로 실제 욕망을 채우려 하는 것이죠.


물고기의 괴로움


그런데 왜 물고기는 괴로워할까요? 먹이를 쫓아 펄떡이는 것 자체가 괴로운 것일까요?


부처님의 통찰에 따르면, 괴로움은 욕망과 현실의 불일치에서 나옵니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거나, 얻어도 기대와 다르거나, 얻었는데 또 다른 것을 원하게 되거나... 이런 상황들이 반복되면서 괴로움이 생깁니다.


《82년생 김지영》을 보세요. 김지영이 괴로운 이유는 신자유주의 하늘이 여성에게 강요하는 이중적 먹이 때문입니다. '경력도 쌓고 육아도 완벽하게 하라'는 모순적 요구. 둘 다 충족시킬 수 없으니 계속 괴로운 것이죠.


조선시대 춘향의 괴로움은 어떨까요? 사랑과 정의라는 두 가지 먹이를 동시에 추구했는데, 신분제라는 하늘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욕망과 현실의 충돌에서 오는 괴로움이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괴로움 자체가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괴로움이 있어야 변화의 동력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만약 모든 물고기가 현재 상태에 만족한다면, 강물도 하늘도 절대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물고기의 선택


결국 물고기에게 중요한 것은 선택입니다. 어떤 먹이를 쫓을 것인가, 어떤 먹이를 거부할 것인가. 그 선택이 그 물고기의 운명을 결정하고, 나아가 다른 물고기들에게도 영향을 미칩니다.


춘향은 변학도의 먹이를 거부하고 신분제에 맞선 의지를 선택했습니다. 영혜는 가부장제의 모든 먹이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정체성이라는 먹이를 선택했습니다. 김지영은... 아직 선택 과정에 있습니다. 사회가 강요하는 먹이와 자신이 원하는 먹이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죠.


현재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자유주의 하늘이 던져주는 수많은 먹이들 앞에서 끊임없이 선택해야 합니다. 그 선택들이 모여서 우리 개인의 운명을 결정하고, 궁극적으로는 사회 전체의 방향도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다음은 괴로움이다


하늘을 알고, 먹이를 알고, 물고기를 알았다면 이제 '괴로움'을 이해할 차례입니다. 왜 모든 문학이 괴로움으로 귀결되는지, 그리고 그 괴로움이 어떻게 아름다운 서사로 승화되는지 말입니다.


괴로움은 문학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변화와 성장의 씨앗이기도 합니다. 괴로움을 이해하면, 문학이 왜 영원한 지도 알게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떤 종류의 물고기인가요? 하늘이 던져주는 먹이를 순순히 받아먹는 물고기인가요, 아니면 그 먹이를 의심하고 다른 가능성을 찾는 물고기인가요? 그리고 우리는 주변의 물고기들과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나요?


[다음 회 예고] 제1부 4회: "괴로움: 욕망과 먹이의 불일치" - 왜 모든 문학은 괴로움으로 귀결되는가? 부처님이 말한 일체개고(一切皆苦)의 진리가 어떻게 문학의 근본 원리가 되는지, 그리고 괴로움이 어떻게 아름다운 서사로 승화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용어 해설]


상행식(相行識): 불교에서 말하는 인식과 행동의 과정. 감각기관이 대상과 접촉해서 상(인식)을 형성하고, 행(행동)으로 이어져 식(기억)에 저장되는 과정


keyword
수, 금 연재
이전 03화욕망을 쫓는 물고기들: 불교로 보는 문학의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