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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을 쫓는 물고기들: 불교로 보는 문학의 풍경

제1부 새로운 렌즈 – 하늘·먹이·물고기

by 한시을

1회: 하늘 - 시대정신과 권력의 장막


하늘이 바뀌는 순간


2024년 어느 날, 한 대학생이 취업 준비를 하며 말했습니다. "요즘 스펙 쌓기가 너무 힘들어요. 토익 900점은 기본이고, 인턴십에 봉사활동에 공모전까지... 언제까지 이래야 할까요?"


그 순간 저는 생각했습니다. 만약 조선시대 양반집 자제가 이 말을 들었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토익이 뭐고 인턴십이 뭔가? 과거 시험이 인생의 전부지!"


같은 20대, 같은 취업 준비생이지만 완전히 다른 세상에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었을까요? 바로 '하늘'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하늘이란 무엇인가


문학을 이해하려면 먼저 '하늘'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서 하늘은 실제 파란 하늘이 아닙니다. 시대정신이자 지배 질서,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머리 위에 드리워진 거대한 규칙과 가치관의 집합체입니다.


하늘은 보이지 않지만 강력합니다. 마치 중력처럼 우리를 끌어당기고, 공기처럼 우리 안으로 스며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늘이 끊임없이 변한다는 사실입니다.


조선시대의 하늘은 '신분제와 유교'였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양반, 중인, 평민, 천민으로 나뉘었고, 효와 충이 최고의 덕목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의 하늘은 '식민지배와 복종'이었습니다. 일본의 우월한 통치체제를 받아들이고, 황국신민이 되라는 것이 그 시대의 질서였습니다.


분단 시대의 하늘은 '이데올로기와 대립'이었습니다. 남과 북,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았습니다. 독재 시대에는 '독재체제의 순응과 복종'이 하늘이었고, 민주화 시대에는 '자유와 인권'이 새로운 하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하늘은 '경쟁과 효율성'입니다. 모든 것이 시장의 논리로 평가되고, 개인의 성과가 곧 그 사람의 가치가 되었습니다.


하늘은 어떻게 권력이 되는가


흥미로운 것은 하늘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하늘은 적극적으로 개입합니다. 무엇을 원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이 성공이고 무엇이 실패인지를 끊임없이 속삭입니다.


하늘이 권력이 되는 이유는 우리의 6개 감각기관을 통해 직접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눈으로 보는 것(색), 귀로 듣는 것(성), 코로 맡는 것(향), 혀로 맛보는 것(미), 몸으로 느끼는 것(촉),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법). 하늘은 이 모든 경로를 통해 우리에게 스며듭니다.


이 감각들을 통해 들어온 정보가 반복되면서 사람들은 그 질서에 중독되고, 결국 하늘이 주는 먹이에 복종하게 됩니다. 이 복종 구조 자체가 하늘의 권력이 되는 것입니다.


조선시대를 보세요. 유교 경전을 암송하고(법), 궁중 음악을 듣고(성), 제사 음식을 먹고(미), 상하 관계의 예의를 몸으로 익히면서(촉) 신분제가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느껴지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그 질서가 마치 타고난 것처럼 체화됩니다.


일제강점기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일본어 교육(법), 군가와 천황 찬양가(성), 일본식 급식(미), 황국신민체조(촉)를 통해 식민지배가 마치 문명화인 것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여집니다.


하늘의 무서운 점은 폭력이 아니라 '동의'를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그 질서를 원하고, 그 먹이를 갈망하게 만듭니다.


조선시대를 살펴보겠습니다. 그 시대의 하늘은 "신분에 맞게 살라"고 말했습니다. 평민은 평민답게, 양반은 양반답게 사는 것이 미덕이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과거에 급제하면 신분 상승이 가능하다"는 희망도 던져주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늘이 떨어뜨리는 '먹이'입니다.


춘향전을 다시 읽어보세요. 기생의 딸 춘향이 양반 도령 몽룡과 사랑에 빠진 것은 단순한 로맨스가 아닙니다. 신분제라는 하늘에 정면으로 맞선 것입니다. 춘향이 변학도 앞에서 절개를 지키겠다고 한 것은 사랑을 지키겠다는 말이 아니라, 신분제가 정해놓은 규칙을 거부하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변학도가 권력을 휘둘러도 춘향이 굴복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녀에게는 신분제라는 하늘보다 더 높은 '정의'라는 또 다른 하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변화가 문학을 만든다


하늘이 바뀔 때마다 완전히 다른 문학이 탄생합니다.


조선시대 신분제라는 하늘 아래에서는 춘향전이 나왔습니다. 기생의 딸이 양반과 사랑에 빠져 신분제에 맞서는 이야기. 그 시대 하늘의 모순을 정면으로 다룬 것입니다.


일제강점기가 되자 하늘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황국신민이 되라", "우월한 일본의 통치체제를 받아들이라"는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식민신교육을 받으라"라고 강요했습니다.


염상섭의《만세전》을 보세요. 주인공 이인화는 아내의 죽음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향하면서 식민지 현실을 목격합니다. 일본인들은 1등 칸에 타고, 조선인들은 3등 칸에서 짐짝처럼 실려갑니다. 근대화는 식민통치를 위한 일본이 던지는 먹이였습니다. 이 먹이를 받아먹는 자도 있었고, 거부하는 자도 있었습니다.


분단의 하늘이 들어서자 최인훈의《광장》이 나왔습니다. 남과 북 어느 쪽도 선택할 수 없는 명호의 고뇌는 분단 체제라는 새로운 하늘이 만든 괴로움이었습니다.


박정희 개발독재 시대에는 조세희의《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나왔습니다. 경제성장과 도시개발이라는 먹이 앞에서 밀려나는 도시 빈민들의 이야기를 통해 개발독재의 그늘을 그렸습니다.


전두환 독재 시대에는 윤흥길의《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같은 작품이 등장했습니다. 통금해제와 3S 정책이라는 해제와 유흥 먹이가 넘쳐나는 가운데에서도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는 개인의 몸부림을 그린 것입니다.


민주화 이후에도 독재를 되돌아보는 작품들이 계속 나왔습니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5.18 광주를 통해 독재체제의 순응과 복종을 강요하는 하늘에 맞선 이들의 괴로움을 기록했습니다. 하늘이 바뀌어도 그 시대의 괴로움은 문학을 통해 계속 증언되는 것입니다.


신자유주의 하늘 아래에서는 조남주의《82년생 김지영》과 한강의《채식주의자》가 나왔습니다. 경쟁과 효율성을 강요하는 하늘이 개인에게 가하는 압박과 그에 맞서는 개인의 몸부림을 그린 것입니다.


같은 하늘 아래에서도 어떤 먹이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운명이 갈렸습니다. 각 시대마다 지배질서가 6개 감각을 통해 던지는 먹이들을 받아먹은 사람들과 거부한 사람들은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았고, 문학은 그 모든 선택과 갈등을 기록했습니다.


하늘이 바뀌는 메커니즘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늘이 어떻게 바뀌는가입니다.


물고기들은 6개 먹이(색성향미촉법)를 욕망의 실현장치인 6개 기관(안이비설신의)을 통해 느낍니다. 욕망에 따라 행동하고, 이를 통해 먹이와 욕망 간의 관계를 인식합니다. 6개 기관은 '의(뜻, 생각, 신념 등)'를 중심으로 하나의 거대한 욕망체계를 구축하고, 이것이 뇌와 마음의 골을 만듭니다. 결국 이 체계로 인해 집착이 지속되고, 행위는 반복되며 이것을 '나'라고 알게 됩니다.


각 개인이 가지는 먹이와 욕망 시스템이 상호 충돌하기도 하고, 때로는 같이 뭉치기도 합니다. 이렇게 강물이 변하고, 이것이 어떤 형태로 운동이나 혁명이 되면 하늘이 바뀝니다.


조선 말기를 보세요. 신분제에 불만을 가진 물고기들이 점점 늘어났습니다. 동학농민운동, 갑신정변 같은 움직임들이 일어났지만, 한편으로는 일본이 주는 새로운 먹이를 쫓는 친일파들도 있었습니다. 먹이를 쫓는 자들과 거부하는 자들 사이의 강물 싸움에서 일제강점이라는 새로운 하늘이 들어섰습니다.


해방 후에는 사회주의 먹이를 쫓는 좌익과 자본주의 먹이를 쫓는 우익 사이의 강물 싸움이 벌어졌고, 그 결과 분단이라는 하늘이 만들어졌습니다.


독재 시대를 보세요. 박정희는 경제성장과 도농개발이라는 먹이를 던졌고, 전두환은 3S(영화, 스포츠, 섹스)라는 먹이를 던졌습니다. 이 먹이를 재빨리 받아먹는 물고기들도 있었고, 이것을 비판적으로 보고 거부하는 물고기들도 있었습니다. 4.19와 5.18, 6월 항쟁에서는 독재 체제를 거부하는 물고기들의 강물이 거침없이 넘쳐나서 독재의 하늘이 무너지고 민주화의 하늘이 열렸습니다.


현재의 하늘, 신자유주의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하늘은 어떨까요? 신자유주의라는 하늘은 우리에게 무엇을 속삭이고 있을까요?


"경쟁하라", "효율성을 추구하라", "자기계발을 하라", "성공하라". 이것이 현재 하늘이 던져주는 메시지입니다. 그리고 그에 맞는 먹이들도 떨어뜨립니다. 명품, 부동산, 주식, 자격증, 영어 점수, 스펙 쌓기...


조남주의《82년생 김지영》을 보세요. 김지영은 신자유주의가 주는 먹이를 거부하는 괴로움의 희생자입니다. "경력도 쌓고 육아도 완벽하게 하라"는 모순적 요구를 거부하고 자기만의 먹이를 추구합니다.


한강의《채식주의자》의 영혜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 결합된 하늘이 주는 "순종적인 아내이자 완벽한 며느리"라는 먹이를 거부하고 "나만의 정체성"이라는 다른 먹이를 선택합니다.


이처럼 신자유주의를 거부하는 물고기들은 새로운 대안의 하늘을 찾고 있습니다. 그런 무리들이 점차 많아지면 신자유주의 반대 강물이 거세질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직 수적으로 그런 무리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다수 물고기들은 여전히 이 하늘을 쳐다보고 주는 먹이를 먹기 위해 터져라 경쟁하고 있습니다. 강물을 바꾸고 하늘을 바꾸면 될 일인데, 그것은 또 다른 거대한 먹이와 욕망 시스템이 출현되어야 하므로 단기적으로는 어려운 일입니다.


하늘을 읽는 눈


문학을 제대로 읽으려면 먼저 그 작품이 어떤 하늘 아래에서 쓰였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작가도, 등장인물도, 독자도 모두 특정한 하늘의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을 읽는 눈이 생기면 문학이 완전히 다르게 보입니다. 춘향전이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신분제에 맞선 저항 서사로 읽히고, 광장이 단순한 이념 소설이 아니라 분단 체제의 모순을 파헤친 작품으로 이해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늘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조선의 하늘도 무너졌고, 일제의 하늘도 사라졌습니다. 분단의 하늘, 독재의 하늘도 모두 변했습니다. 지금의 신자유주의 하늘도 언젠가는 바뀔 것입니다.


하지만 하늘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인간의 욕망입니다. 그 욕망이 바로 하늘에서 떨어지는 '먹이'를 쫓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괴로움이 문학의 원료가 됩니다.


다음은 먹이다


하늘을 이해했다면 이제 '먹이'를 알아야 합니다. 하늘이 떨어뜨리는 욕망의 대상들, 우리를 끊임없이 유혹하고 괴롭히는 그것들 말입니다.


부처님은 2,500년 전에 이미 이 먹이들을 정확히 분류해 놓았습니다. 색성향미촉법, 여섯 가지 욕망의 카테고리. 이것만 알면 모든 문학 작품의 구조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신자유주의'라는 하늘이 던져주는 먹이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우리는 그 먹이를 받아먹고 있나요, 아니면 거부하고 있나요?


[다음 회 예고] 제1부 2회: "먹이: 색·성·향·미·촉·법, 여섯 가지 욕망" - 부처님이 발견한 인간 욕망의 여섯 가지 분류가 어떻게 문학 속 인물들을 움직이는지, 그리고 왜 이 여섯 가지만 알면 모든 문학 작품을 꿰뚫어 볼 수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용어 해설]

하늘: 시대정신과 지배 질서의 총체. 그 시대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을 규정하는 거대한 틀

신자유주의: 시장 중심의 경제 체제로, 경쟁과 효율성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현재의 지배적 이데올로기

먹이: 하늘이 떨어뜨리는 욕망의 대상들. 다음 회에서 자세히 다룰 색성향미촉법의 구체적 형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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