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여름날 연못가에서 물고기들을 본 적이 있나요? 하늘에서 떨어진 작은 먹이 하나에 여러 마리가 몰려듭니다. 어떤 놈은 펄떡 뛰어올라 먹이를 낚아채고, 어떤 놈은 다른 물고기들에게 밀려 아무것도 못 얻습니다. 어떤 놈은 아예 그 먹이를 외면하고 다른 곳으로 헤엄쳐 갑니다.
재미있는 건 이겁니다. 하늘이 바뀌면 떨어지는 먹이도 바뀐다는 것. 여름엔 벌레가, 가을엔 낙엽이, 겨울엔 얼음 조각이 떨어집니다. 그때마다 물고기들의 반응도 달라지죠.
문학은 언제나 인간의 욕망에서 시작한다. 사랑, 성공, 권력, 자유... 이름은 달라도 본질은 같다.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원하고, 그 욕망이 충족되지 않을 때 괴로움을 느낀다. 불교에서 말하는 첫 번째 진리, "모든 것은 괴로움(苦)이다"라는 선언은 사실 문학의 가장 오래된 서사와 다르지 않다.
나는 이 괴로움을 풀어내는 새로운 틀을 제안하고자 한다. 그 이름은 하늘–먹이–물고기.
하늘은 시대정신, 사회의 지배 질서와 가치관이다. 하늘은 늘 변한다.
먹이는 하늘이 떨어뜨리는 욕망의 대상이다. 신분, 권력, 성공, 소비... 시대마다 모양은 다르지만 언제나 매혹적이다.
물고기는 욕망을 가진 인간이다. 우리는 그 먹이를 좇으며 펄떡이고, 때로는 잡고, 때로는 놓친다.
강물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다. 물고기들이 아웅다웅 살아가는 현실 공간이다.
하늘이 바뀌면 먹이도 바뀝니다. 그리고 같은 하늘 아래에서도 물고기들의 반응은 다릅니다. 어떤 물고기는 그 먹이를 받아먹고, 어떤 물고기는 거부하고, 어떤 물고기는 다른 먹이를 찾아 헤맵니다. 그 모든 선택과 행동이 서로 다른 괴로움을 만들어내죠.
2,500년 전 부처님은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았습니다. 인간의 괴로움은 욕망과 현실이 부딪혀 깨진 곳에서 생긴다고 말이죠.
눈으로 보는 것(色), 귀로 듣는 것(聲), 코로 맡는 것(香), 혀로 맛보는 것(味), 몸으로 느끼는 것(觸),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法). 이 여섯 가지가 바로 하늘에서 떨어지는 '먹이'의 종류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신분 상승이 주된 먹이였어요. 기생의 딸 춘향이 양반 도령 몽룡과 사랑에 빠진 것, 그것도 일종의 먹이(法, 신분질서에 맞선 정의)를 쫓는 행위였죠. 하지만 조선의 하늘은 그런 사랑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부처님은 괴로움이 어떻게 생기는지도 정확히 설명했습니다.
우리 눈·귀·코·혀·몸·마음이 밖의 것들과 만나면 뭔가 느끼게 되죠. 그게 행동으로 이어지고, 그 경험이 우리 머릿속에 깊이 새겨집니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됩니다. 한 번 맛본 달콤함을 잊을 수 없어서, 우리는 그것에 계속 끌리게 됩니다. SNS에서 좋아요를 받으면 기분 좋으니까 계속 포스팅하고, 더 많은 좋아요를 원하게 되죠. 그런데 예상만큼 좋아요가 안 오면? 괴로워집니다.
이것이 바로 모든 문학 작품 속 인물들이 겪는 과정입니다. 춘향이든, 이형식이든, 영혜든, 김지영이든. 모두 뭔가에 끌렸다가, 현실의 벽에 부딪혀 괴로워합니다.
문학 작품들을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패턴이 보입니다.
춘향전은 신분질서에 맞선 정의를 쫓는 이야기고, 광장은 이념 앞에서 갈라진 인간의 내면을 그렸습니다. 82년생 김지영은 여성 정체성을 찾아가는 현대인의 고통을 다뤘고, 채식주의자는 자유를 향한 개인의 몸부림을 보여줍니다.
시대는 다르고 배경도 다르지만, 모든 작품 속 인물들은 뭔가에 끌렸다가 현실의 벽에 부딪혀 괴로워합니다. 바로 이것이 문학이 그려내는 물고기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문학은 무엇인가? 문학은 이 모든 펄떡임의 기록입니다. 하늘에서 떨어진 먹이를 쫓아 오르내리고, 부딪히고, 좌절하는 물고기들의 이야기입니다.
작품마다 다른 얼굴을 하고 있어도, 그 밑바탕에는 늘 동일한 구조가 흐릅니다. 욕망과 괴로움, 그리고 그 괴로움을 어떻게 살아냈는가의 기록이죠.
춘향전이 500년 동안 사랑받는 이유, 채식주의자가 전 세계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시대와 문화가 달라도, 인간은 끝없이 펄떡이는 물고기이기 때문입니다.
하늘은 계속 변합니다. 조선시대, 일제강점기, 분단시대, 독재시대, 민주화시대, 신자유주의시대... 그때마다 새로운 먹이가 떨어지고, 물고기들은 새로운 방식으로 펄떡입니다. 하지만 욕망의 구조는 변하지 않아요. 여전히 색성향미촉법이고, 여전히 괴로움으로 귀결됩니다.
하지만 여기서 놀라운 순환이 일어납니다. 하늘이 변하면 먹이가 변하고, 먹이가 변하면 물고기들의 펄떡임도 변합니다. 이는 강물을 변하게 하고, 물은 다시 구름이 되어 결국 하늘도 변하게 만듭니다.
모든 것이 무상(無常)합니다. 하늘도, 먹이도, 강물도 끊임없이 변하고 흘러갑니다. 하지만 오직 하나, 물고기 안의 욕망만은 끝이 없습니다. 그래서 문학은 영원합니다.
나는 이 해제를 통해 두 가지를 증명하려 한다.
첫째, 먹이는 시대마다 변하지만 인간의 욕망은 변하지 않는다. 바로 그 불일치가 괴로움을 낳는다. 춘향이 쫓던 '정의'와 영혜가 쫓던 '자유'는 다른 먹이지만, 욕망과 현실의 간극에서 오는 괴로움의 구조는 동일하다.
둘째, 괴로움은 사라지지 않기에 문학은 영원하다. 물고기는 계속 펄떡이고, 그 펄떡임을 기록하는 문학도 계속 쓰여질 것이다.
이제 우리는 묻는다. 왜 어떤 시대에는 신분이 먹이가 되고, 어떤 시대에는 소비와 쾌락이 먹이가 되는가? 왜 물고기들은 늘 같은 괴로움 속에서 다른 노래를 불러야 하는가?
이 연재는 그 질문에 답하려는 시도다. 나는 불교의 통찰을 빌려 한국 문학을 해제하고, 나아가 세계 문학과 예술까지 새롭게 읽어내려 한다.
앞으로 우리는 춘향전부터 채식주의자까지, 홍길동전부터 82년생 김지영까지, 500년에 걸친 한국 문학사를 새로운 눈으로 읽어볼 것입니다. 각 작품 속 인물들이 어떤 하늘 아래에서 어떤 먹이를 쫓아 어떻게 괴로워했는지, 그리고 그 괴로움이 어떤 아름다운 서사로 승화되었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하늘을 바꾸는 힘은 없지만, 적어도 우리는 어떤 하늘 아래에서 어떤 먹이를 좇아 괴로워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것이 문학을 읽는 또 다른 길이자, 우리 삶을 비추는 거울일 것이다.
이 해제는 독자만이 아니라, 동료 작가들에게도 또 다른 길잡이가 되기를 바란다.
프롤로그는 물 위에 던진 첫 돌멩이다. 이제 파문이 번져갈 차례다.
[다음 회 예고] 제1부 1회: "하늘: 시대정신과 권력의 장막" - 봉건에서 신자유주의까지, 여섯 개의 하늘이 어떻게 바뀌어왔는지, 그리고 각 하늘이 떨어뜨린 먹이들의 스펙트럼을 살펴보겠습니다.
[용어 해설]
하늘–먹이–물고기: 문학 해석을 위한 새로운 틀. 시대정신(하늘)이 욕망의 대상(먹이)을 만들고, 인간(물고기)이 그를 쫓아 펄떡이는 구조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불교에서 말하는 여섯 가지 감각적 욕망의 대상. 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의식의 욕망으로 모든 인간의 욕망을 설명
무상(無常): 모든 것은 변한다는 불교의 근본 진리. 하늘, 먹이, 강물은 끊임없이 변하지만 물고기의 욕망만은 영원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