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새로운 렌즈 – 하늘·먹이·물고기
길을 걸으면서 스마트폰 화면을 보세요. 애플 로고, 나이키 로고, 샤넬 로고... 그 작은 그림들만 봐도 뭔가 갖고 싶어 집니다. 왜 그럴까요? 단순한 형태와 색깔일 뿐인데 말이죠.
또 다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유튜브에서 ASMR 영상을 보면서 잠이 듭니다. 바삭바삭 소리, 속삭이는 목소리에 왜 그렇게 빨려 들어갈까요?
커피숍에 들어가면 원두 향기에 이끌려 주문하고, 맛집 유튜버가 먹방을 하면 같은 음식이 먹고 싶어 집니다. 마사지샵 광고의 부드러운 손길 이미지를 보면 피로가 풀릴 것 같고, 성공한 사람의 강연을 들으면 나도 그렇게 되고 싶어 집니다.
이 모든 것들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바로 부처님이 2,500년 전에 분류해 놓은 여섯 가지 '먹이'입니다.
부처님은 인간의 모든 욕망이 여섯 가지로 분류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이것은 단순한 분류가 아닙니다. 인간 욕망의 완전한 지도입니다.
색(色): 눈으로 보는 모든 것. 형태, 색깔, 이미지, 영상 성(聲): 귀로 듣는 모든 것. 소리, 음악, 언어, 목소리
향(香): 코로 맡는 모든 것. 냄새, 향기 미(味): 혀로 맛보는 모든 것. 맛, 음식 촉(觸): 몸으로 느끼는 모든 것. 감촉, 접촉, 성적 욕망 법(法):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것. 이념, 이상, 정의, 명예
놀라운 것은 이 분류가 현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끌리는 모든 것들이 이 여섯 카테고리 안에 들어갑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색'의 시대입니다. 인스타그램, 유튜브, 틱톡... 모든 것이 시각적 자극으로 가득합니다.
브랜드들이 로고 디자인에 수십억을 투자하는 이유가 뭘까요? 그 작은 이미지 하나가 사람들의 '색' 욕망을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애플의 깔끔한 흰색, 코카콜라의 빨간색, 티파니의 민트색... 각각이 특정한 감정과 욕망을 불러일으킵니다.
SNS에서 '좋아요'를 받기 위해 사진을 보정하고, 필터를 씌우고, 각도를 연구하는 것도 모두 '색' 욕망과 관련이 있습니다. 보여지고 싶은 욕망, 아름답게 인식되고 싶은 욕망 말이죠.
웹툰이나 드라마에 빠져드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각적 서사를 통해 대리만족을 얻는 것, 그것이 현대인의 '색' 욕망입니다.
음성 욕망도 갈수록 정교해지고 있습니다. K-팝이 전 세계를 사로잡는 이유를 생각해 보세요. 단순히 좋은 음악이어서가 아닙니다. 각 그룹마다 특별히 설계된 '소리'가 있습니다.
BTS의 메시지가 담긴 가사, 블랙핑크의 강렬한 비트, 아이유의 감성적인 목소리... 각각이 서로 다른 '성' 욕망을 자극합니다. 위로받고 싶은 욕망, 에너지를 얻고 싶은 욕망, 소속감을 느끼고 싶은 욕망.
팟캐스트나 오디오북이 인기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누군가의 목소리를 통해 지식을 얻고, 위로를 받고, 동행하는 느낌을 얻고 싶어 하는 것이죠.
ASMR은 이런 '성' 욕망을 극단적으로 활용한 경우입니다. 특정한 소리를 통해 뇌를 자극하고, 안정감을 주고, 심지어 잠까지 유도합니다.
후각은 가장 원시적이면서도 강력한 욕망입니다. 향수 시장이 수조원 규모인 이유가 뭘까요? 냄새가 단순히 좋아서가 아닙니다. 특정한 이미지와 정체성을 표현하고 싶은 욕망 때문입니다.
카페에서 원두 향기를 맡으면 자동으로 주문하게 되고, 베이커리 앞을 지나갈 때 빵 냄새에 이끌려 들어가게 됩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매장들이 의도적으로 '향' 욕망을 자극하는 것입니다.
집에서 향초를 피우거나 디퓨저를 사용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특정한 분위기를 만들고 싶은 욕망, 일상을 더 특별하게 만들고 싶은 욕망을 향기를 통해 충족시키려는 것이죠.
먹방이 이렇게 인기인 이유가 뭘까요? 배가 고파서 보는 게 아닙니다. 대리만족을 통해 '미'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것입니다.
배달음식이 급성장한 것도 단순히 편의성 때문만은 아닙니다. 힘든 하루를 맛있는 음식으로 보상받고 싶은 욕망, 특별한 맛을 통해 일상의 스트레스를 잊고 싶은 욕망이 작동하는 것입니다.
미슐랭 레스토랑에 가거나 비싼 와인을 마시는 것은 어떨까요? 맛 자체보다는 '고급스러움을 경험하고 싶은 욕망',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이 더 클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촉' 욕망에 대한 갈망이 더욱 강해졌습니다. 마사지, 네일 케어, 피부 관리... 모두 몸의 접촉을 통해 위로받고 싶은 욕망입니다.
패션도 '촉' 욕망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부드러운 캐시미어, 시원한 리넨, 따뜻한 패딩... 각각의 소재가 주는 촉감이 우리의 감정 상태를 좌우합니다.
반려동물에 대한 사랑도 '촉' 욕망의 한 형태입니다. 털을 쓰다듬고, 안고, 함께 잠을 자면서 얻는 신체적 위로가 정서적 안정감으로 이어지는 것이죠.
여섯 가지 먹이 중에서 가장 복잡하고 강력한 것이 '법' 욕망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법률을 뜻하는 게 아닙니다. 이념, 이상, 정의, 의미, 정체성에 대한 욕망입니다.
환경 보호, 페미니즘, 정치적 신념... 이런 것들에 강하게 끌리는 이유는 뭘까요? 그 자체가 옳아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은 욕망', '정체성을 확립하고 싶은 욕망'이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자기계발서가 베스트셀러가 되는 이유, 명상이나 요가가 인기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 인생의 의미를 찾고 싶은 욕망을 '법' 욕망을 통해 충족시키려는 것이죠.
이제 문학 작품들을 다시 보겠습니다. 모든 문학 속 인물들은 이 여섯 가지 먹이 중 하나 이상을 쫓고 있습니다.
춘향은 몽룡과의 사랑(성, 촉)을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신분제에 맞서는 정의(법)를 쫓았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춘향에게 '법' 욕망이 더 강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변학도의 위협에도 굴복하지 않았던 것이죠.
《무정》의 이형식은 신여성 영채의 아름다움(색)과 신교육이라는 이념(법)에 끌렸습니다. 하지만 그의 '법' 욕망은 진정한 독립 의지가 아니라 일제가 허용한 범위 내의 계몽이었습니다.
《채식주의자》의 영혜는 무엇을 쫓았을까요? 표면적으로는 채식(미)을 선택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자신만의 정체성(법)과 육체적 자유(촉)를 추구했습니다. 가부장제가 강요하는 모든 먹이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먹이를 찾으려 한 것이죠.
흥미로운 점은 여섯 가지 먹이가 동등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상황에 따라 어떤 먹이가 우선순위가 되느냐에 따라 인물의 운명이 갈립니다.
춘향에게 만약 '성'이나 '촉' 욕망이 더 강했다면? 변학도의 유혹에 넘어갔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법'(정의)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끝까지 버틸 수 있었습니다.
《광장》의 명호는 어떨까요? 남한의 자본주의 체제(미, 촉)와 북한의 사회주의 이념(법)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결국 둘 다 선택하지 못하고 제3국행 배를 타는 것은 어떤 먹이도 진정으로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같은 먹이라도 하늘이 바뀌면 그 모양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조선시대의 '색' 욕망은 어땠을까요? 궁중 회화나 민화에 나타난 미적 기준, 한복의 색깔과 문양에서 신분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이 '색'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어떨까요? 일본식 건축양식, 기모노, 일본 문화에 대한 동경이 새로운 '색' 욕망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전통 한복이나 한글 서예에 대한 그리움도 또 다른 '색' 욕망으로 작동했죠.
현재 신자유주의 시대의 '색' 욕망은 브랜드, 소셜미디어, 개인의 이미지 메이킹으로 나타납니다. 같은 '색' 욕망이지만 그 내용과 형태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부처님이 통찰한 것은 이 여섯 가지 먹이에 한번 맛을 들이면 중독된다는 점입니다. 더 많이, 더 강하게, 더 새롭게 원하게 됩니다.
SNS 좋아요 중독을 생각해 보세요. 처음에는 몇 개만 받아도 만족했는데, 점점 더 많은 좋아요를 원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예상만큼 받지 못하면 괴로워하죠. 이것이 바로 '색' 욕망 중독의 전형적인 패턴입니다.
음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맛에 만족했는데, 점점 더 자극적이고 복잡한 맛을 찾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음식에 길들여지면 담백한 음식은 맛없게 느껴지죠.
여섯 가지 먹이를 알았다면 이제 '물고기'를 이해할 차례입니다. 하늘에서 떨어진 먹이를 쫓아 끝없이 펄떡이는 존재, 바로 우리 자신 말입니다.
물고기는 단순히 욕망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선택하는 존재입니다. 어떤 먹이를 쫓을 것인가, 어떤 먹이를 거부할 것인가. 그 선택이 바로 그 물고기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춘향은 변학도가 주는 먹이를 거부하고 정의라는 다른 먹이를 선택했습니다. 영혜는 가부장제가 주는 모든 먹이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정체성이라는 먹이를 선택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고 있을까요? 지금 이 순간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먹이는 무엇일까요?
[다음 회 예고] 제1부 3회: "물고기: 끝없이 펄떡이는 인간" - 하늘에서 떨어진 먹이를 쫓아 펄떡이는 물고기들의 이야기. 왜 어떤 물고기는 같은 먹이에 다르게 반응하는지, 그리고 물고기들 사이의 경쟁과 연대가 어떻게 강물을 변화시키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용어 해설]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불교에서 말하는 여섯 가지 감각적 욕망의 대상. 인간의 모든 욕망은 이 여섯 가지로 분류됨 먹이 중독: 특정한 감각적 자극에 반복 노출되면서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원하게 되는 현상
Primary/Secondary 먹이: 문학 작품 속 인물이 추구하는 주된 욕망과 부차적 욕망의 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