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욕망을 쫓는 물고기들: 불교로 보는 문학의 풍경

제2부 한국문학 – 하늘과 먹이의 교차

by 한시을

5회: 봉건의 하늘 – 《춘향전》


부당한 권력 앞에서 참아본 적 있나요? '을'의 위치에서 '갑'의 횡포를 견뎌본 적은요?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인사고과에 불이익을 받거나, 부당한 지시를 거부했다가 왕따를 당한 경험 말입니다.


1800년대 조선, 남원. 기생의 딸 춘향이 신임 사또 변학도 앞에 끌려갑니다. "수청을 들어라." 거부하면 죽음입니다.


우리는 춘향이 '사랑' 때문에 거부했다고 배웠습니다. 몽룡을 사랑했기에 다른 남자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요. 하지만 텍스트를 자세히 보면... 춘향이 진짜 쫓은 먹이는 따로 있었습니다.


봉건의 하늘이 던진 먹이


조선시대, 하늘은 명확했습니다. 신분제라는 철저한 질서. 양반-중인-상민-천민으로 나뉜 피라미드 구조 속에서, 하늘은 각자에게 정해진 먹이를 던져주었습니다.


"네 신분을 알고, 네 자리를 지켜라."


양반에게는 과거 급제와 벼슬이라는 먹이가, 평민에게는 땅을 경작하며 조용히 살라는 먹이가, 천민에게는 그저 상전을 섬기라는 먹이가 주어졌습니다. 기생의 딸 춘향에게 주어진 먹이는 "권력자의 수청"이었습니다.


이 하늘 아래서 순응하는 물고기들은 평화로웠습니다. 신분에 맞게 살면 되니까요. 하지만 이 먹이를 거부한 물고기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늘이 던져준 먹이 대신, 다른 먹이를 쫓기 시작했습니다.


춘향이 진짜 쫓은 먹이


하늘 (시대정신, 질서) 조선시대 신분제 - 기생의 딸은 권력자에게 순응해야 함


먹이 (욕망의 대상)

Primary: 법(法) - 정의와 의리

Secondary: 촉(觸) - 몽룡과의 신체적 관계


변학도가 수청을 요구하자 춘향은 이렇게 답합니다.


"일개 수청이 무삼 영광이리오? 천하에 허다한 여자 중 첩의 몸만 아니라 천하 백성이 다 수청을 든다 할지라도 첩은 아니하리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몽룡'이 아닙니다. "천하 백성이 다 수청을 든다 할지라도"라는 표현을 보세요. 춘향은 개인적 관계가 아니라 보편적 원칙을 말하고 있습니다.


옥중에서 춘향은 더 명확하게 말합니다.


"죽기는 쉬워도 개가는 어렵다."


이것은 '정절(貞節)'입니다. 하지만 단순한 남편에 대한 정절이 아닙니다. 텍스트를 보면 춘향이 강조하는 것은 '의(義)'와 '절(節)'입니다. 부당한 권력에 굴복하지 않는 원칙, 신분이 낮아도 지켜야 할 인간의 도리. 이것이 춘향이 쫓은 Primary 먹이, 법(法)입니다.


그렇다면 몽룡과의 관계는? 이것이 Secondary 먹이, 촉(觸)입니다. 봉건시대에 기생의 딸이 양반 자제와 평생을 약속하는 관계가 현실적으로 가능했을까요?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춘향은 그 관계를 지키려 했습니다. 단순히 사랑의 감정 때문이 아니라, 이미 몸을 허락한 관계에 대한 책임과 의리 때문입니다.


변학도의 수청 요구는 춘향에게 이중적 위협이었습니다. 첫째, 부당한 권력에 굴복해야 하는 법(法)의 위협. 둘째, 원치 않는 신체적 접촉을 강요당하는 촉(觸)의 위협. 춘향은 둘 다 거부했습니다.


물고기 (인간)

춘향: 기생의 딸이지만 정의를 추구하고 관계를 지키려는 존재

몽룡: 양반이지만 신분을 뛰어넘는 의리를 지키려는 존재


괴로움의 구조


춘향의 괴로움은 명확합니다. 욕망(정의와 관계)과 현실(신분제)이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변학도의 수청 요구를 받아들이면? 신분제라는 하늘의 먹이를 먹는 것입니다. 살 수 있습니다. 평화롭게 지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춘향이 쫓는 두 가지 먹이(법과 촉)를 모두 포기해야 합니다.


거부하면? 자신이 쫓는 먹이를 지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가는 죽음입니다. 옥에 갇히고, 곤장을 맞고, 결국 죽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구부득고(求不得苦),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입니다. 동시에 원증회고(怨憎會苦), 미워하는 것(변학도)을 만나야 하는 괴로움입니다.


춘향은 선택합니다. 죽음을 무릅쓰고 법과 촉을 지키기로. 그 괴로움의 과정에서 춘향은 기생의 딸에서 정의의 상징으로 변합니다.


불교적 통찰: 무상과 집착


춘향전을 불교의 눈으로 보면 더욱 깊은 통찰이 보입니다.


무상(無常): 모든 것은 변한다

몽룡은 한양으로 떠났습니다. 돌아올지 안 올지 모릅니다.

춘향이 믿었던 관계도, 백년가약도, 모두 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춘향은 변하지 않는 것에 집착했습니다. 바로 '의리'입니다.


집착: 괴로움을 키우는 것

춘향의 집착은 '정절'입니다. 이 집착이 괴로움을 증폭시킵니다.

만약 춘향이 "세상이 다 그런 거지"라며 포기했다면? 괴로움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집착했기에 괴로웠고, 그 괴로움이 오히려 아름다웠습니다.


역설적입니다. 불교는 집착을 버리라 하지만, 문학은 집착이 있어야 존재합니다. 춘향의 집착이 없었다면 춘향전도 없었을 것입니다. 괴로움이 문학을 만드는 것입니다.


색성향미촉법의 관점

춘향이 처음 몽룡을 만난 것은 색(色), 광한루에서 그네 뛰는 모습을 본 시각적 매력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둘의 관계는 촉(觸), 신체적 접촉으로 발전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춘향이 지키려 한 것은 법(法), 의리와 정의였습니다.

감각적 욕망(색/촉)에서 시작해 의식적 욕망(법)으로 승화된 것입니다.


몽룡의 선택: 또 다른 물고기


흥미로운 건 몽룡입니다. 양반 집안의 도련님인 그는 하늘이 던져준 먹이(신분에 맞는 혼인)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도 춘향과 같은 먹이를 쫓았습니다.


암행어사가 되어 돌아온 몽룡이 변학도를 징치하는 장면은 통쾌합니다. 하지만 불교적으로 보면 이것도 집착입니다. 정의에 대한 집착, 춘향과의 관계에 대한 집착.


결말이 해피엔딩이라 우리는 기뻐합니다. 하지만 이것도 무상합니다. 몽룡이 암행어사가 되지 못했다면? 다른 사또가 춘향을 살려줬을까요? 운(運)이었습니다. 무상한 세계에서 우연히 얻은 행복이었던 것입니다.


봉건 하늘 아래 다른 물고기들


춘향만이 아니었습니다. 봉건의 하늘 아래, 같은 법(法) 욕망을 쫓은 물고기들이 더 있었습니다.


홍길동전 - 법 단일형 "적서의 차별이 어찌 천리에 합당하리오?" 홍길동이 쫓은 먹이는 오직 하나, 신분 평등이라는 정의였습니다. 적자 홍인형은 집안을 물려받고, 서자 홍길동은 아버지조차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습니다. 같은 피를 나눴지만 하늘은 전혀 다른 먹이를 던졌습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괴로움. 활빈당을 만들어 탐관오리를 징치하고, 율도국을 건설해 평등 사회를 꿈꿨습니다. 춘향보다 더 순수하게 법(法) 하나만 쫓은 물고기였습니다.


심청전 - 법(효)+미(味)형 "공양미 삼백 석"에 몸을 판 심청. 우리는 효녀라고 배웠지만, 텍스트를 보면 법(孝라는 유교 질서)과 미(공양미라는 먹을거리) 두 욕망이 얽혀 있습니다. "공양미 삼백 석을 부처님께 시주하면 눈을 뜨게 될 것"이라는 스님의 말에 심봉사는 헛된 약속을 했고, 심청은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집니다. 아버지 눈을 뜨게 하려는 효도라는 명분이지만, 그 대가로 요구된 것은 쌀, 즉 아버지의 식욕을 채우는 미각의 대상이었습니다. 봉건 하늘은 효도마저 먹을거리와 거래하게 만들었습니다.


배비장전 - 법(도덕)+촉(욕망)형 제주도에 부임한 배비장이 기생 애랑에게 반하는 풍자극. "여색을 가까이하지 않겠다"며 도덕군자 행세하던 배비장이 애랑의 유혹에 넘어가 옷을 벗고 웃음거리가 됩니다. 법(유교 도덕)을 강조하던 위선자가 촉(신체적 욕망) 앞에서 무너지는 순간입니다. 이 작품은 봉건 하늘이 강요하는 도덕이 얼마나 허약한지 보여줍니다. 괴로움보다는 해학으로 풀어냈지만, 역시 법과 촉의 충돌 구조입니다.


봉건의 하늘 아래 공통점이 보입니까? 모든 작품의 Primary 욕망이 '법(法)'입니다. 유교 질서, 신분 제도, 도덕 규범... 봉건 시대는 법(法) 욕망이 지배하던 시대였습니다. 다른 욕망들(촉/미 등)은 모두 억압되거나 Secondary로 밀려났습니다. 춘향은 법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고, 홍길동은 법의 부당함에 맞서 싸웠으며, 심청은 법(효)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고, 배비장은 법(도덕)을 지키지 못해 조롱당했습니다. 형태는 달랐지만, 모두 법(法)이라는 하늘의 먹이와 씨름한 물고기들이었습니다.


춘향전이 말하는 것


《춘향전》은 신분제라는 하늘이 던진 순응의 먹이를 거부하고, 정의라는 금지된 먹이를 쫓은 기생의 딸이 죽음 앞에서도 펄떡인 이야기입니다. 몽룡과의 관계는 Secondary, 진짜 먹이는 부당한 권력에 맞서는 법(法)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춘향의 이야기가 500년이 지난 지금도 감동을 주는 이유는 뭘까요?


하늘은 바뀌었습니다. 신분제는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부당한 권력 앞에 놓입니다. 직장 상사, 갑질 고객, 불합리한 시스템... 형태는 다르지만 본질은 같습니다.


여전히 누군가는 순응하고, 누군가는 저항합니다. 여전히 괴로워하며 펄떡입니다. 욕망의 구조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색성향미촉법, 여섯 가지 욕망은 여전히 우리를 괴롭힙니다.


그래서 문학은 영원합니다. 인간은 끝없이 펄떡이는 물고기니까요.


[다음 회 예고] 제2부 6회: "식민의 하늘 – 《만세전》" - 조선의 하늘이 무너지고 일제의 하늘이 들어섰습니다. 지배와 복종이라는 먹이를 던지는 하늘 아래, 염상섭의 이인화는 어떤 먹이를 쫓았을까요? 그리고 이광수의 이형식은 왜 다른 선택을 했을까요? 식민지 지식인들의 복잡한 욕망을 해부합니다.

keyword
수, 금 연재
이전 05화욕망을 쫓는 물고기들: 불교로 보는 문학의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