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한국문학-하늘과 먹이의 교차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 경험해 보셨나요? 직장 A와 직장 B, 연인 X와 연인 Y... 하지만 선택하려고 보니 둘 다 뭔가 부족합니다. A를 선택하면 B의 장점이 그립고, B를 선택하면 A의 장점이 아쉽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둘 다 포기하고 싶어 집니다.
1950년대 한반도. 하늘이 또 바뀌었습니다. 일제의 하늘이 무너지고 해방이 왔지만, 기쁨은 잠깐이었습니다. 한반도는 두 개로 쪼개졌고, 두 개의 하늘이 들어섰습니다. 남한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북한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내세웠습니다.
최인훈의 《광장》 주인공 이명준은 선택해야 했습니다. 남한의 밀실인가, 북한의 광장인가. 하지만 그는 깨달았습니다. 둘 다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념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을.
해방 후 한반도의 하늘은 식민의 하늘과 달랐습니다. 이제 조선인을 억압하는 외부 세력은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더 복잡한 질서가 들어섰습니다. 민족은 하나인데 체제는 둘로 쪼개진 것입니다.
남한의 하늘은 이렇게 속삭였습니다.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하라. 개인의 자유와 자본주의 경제가 있다. 밀실에서 네 삶을 영위하라."
북한의 하늘은 다르게 말했습니다. "사회주의를 선택하라. 집단의 평등과 공산주의 이상이 있다. 광장에서 인민과 함께하라."
두 하늘은 서로를 부정했습니다. 남한에서 북한을 선택하면 빨갱이였고, 북한에서 남한을 선택하면 반동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명준 같은 지식인들은 어느 쪽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하늘 (시대정신, 질서) 분단체제 - 남한(자본주의+민주주의) vs 북한(사회주의+공산주의)
먹이 (욕망의 대상) 법(法) - 이념을 넘어선 진정한 인간적 소통
명준은 처음 남한에 있었습니다. 서울대 철학과 학생으로, 지식인이었습니다. 하지만 남한 사회에 환멸을 느꼈습니다. 그가 본 남한은 "밀실"이었습니다.
"밀실... 개인적인 것, 사적인 것만 있고, 공적인 것은 없다. 사람들은 제 한 몸 잘 되기만을 바란다."
명준에게 남한은 이념도 없고 공동체도 없는 공간이었습니다. 연인 윤애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녀는 아름다웠지만, 명준이 원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윤애는 자본주의 체제의 실체적 모습이었습니다. 개인적 행복, 사적 관계, 밀실 속의 안락함. 그녀와는 진정한 소통이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명준은 선택했습니다. 월북을. 북한에는 "광장"이 있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곳에서 진정한 소통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북한에서 명준은 당원이 되었고, 인민군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은혜를 만났습니다. 발레리나였던 은혜는 사회주의 이념에 복무하는 존재였습니다. 사회주의 체제의 실체적 모습이기도 했죠.
하지만 은혜는 윤애와 달랐습니다. 은혜는 이념을 깨고 명준과 진정한 인간적 소통에 성공한 유일한 존재였습니다. 둘은 전쟁 중 동굴에서 만났고, 깊은 관계를 나눴고, 은혜는 명준의 아이를 가졌습니다. 자식의 존재는 그들의 소통이 진정했다는 증거였습니다.
"사랑이 없는 사회는 만들지 않겠다"라고 말하는 은혜. 그녀는 이념보다 인간을 앞세운 사람이었습니다. 명준이 북한에서 발견한 것은 광장이 아니라 은혜였습니다. 이념적 광장이 아니라 인간적 소통이었습니다.
하지만 은혜는 죽었습니다. 유엔군의 폭격을 맞아, 명준의 딸을 품은 채로. 누가 쐈는지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남한군인지, 북한군인지, 유엔군인지. 분단 체제 자체가, 전쟁 그 자체가 유일한 소통을 살해한 것입니다.
물고기 (인간) 명준: 이념이 아니라 인간적 소통을 추구한 지식인. 윤애: 남한 자본주의 체제의 실체 (소통 불가). 은혜: 북한 사회주의 체제의 실체이지만 이념을 깨고 소통에 성공한 유일한 존재
명준의 괴로움은 명확합니다. 먹이인 법(法), 즉 진정한 인간적 소통을 원했지만, 분단 체제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남한의 밀실에서는 윤애와 소통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자본주의 체제가 만든 인간이었습니다. 개인의 안락만 추구하고, 공적 가치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념이 다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날 수 없었습니다.
북한의 광장도 진짜 소통의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획일화된 구호, 당의 명령, 집단주의. 개인의 목소리는 사라지고 오직 이념만 남았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명준은 은혜를 만났습니다. 이념을 깨고 인간으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사람.
은혜와의 관계는 이념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만남이었습니다. 동굴이라는 밀실에서,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두 사람은 체제를 넘어 소통했습니다. 그리고 그 소통의 결실로 자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폭격이 그 모든 것을 앗아갔습니다. 은혜뿐 아니라 딸까지. 현재의 소통과 미래의 가능성이 동시에 소멸한 것입니다.
이것이 구부득고(求不得苦),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입니다. 명준은 진정한 소통을 추구했지만, 분단 체제는 그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잠시 얻었던 소통(은혜)마저 전쟁이 빼앗아 갔습니다. 동시에 애별리고(愛別離苦), 사랑하는 것과 헤어지는 괴로움입니다.
한국전쟁 포로가 된 명준은 선택의 기로에 섰습니다. 남한으로 갈 것인가, 북한으로 갈 것인가. 하지만 그는 제3의 선택을 했습니다. 중립국행. 이념을 벗어나면 소통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을까요?
하지만 중립국으로 가는 배 위에서도 명준은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갈매기 두 마리가 계속 그를 따라왔습니다. 은혜와 그의 딸. 소통했던 기억, 잃어버린 가능성. 그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밀실도 싫고, 광장도 싫다."
명준은 바다에 몸을 던졌습니다. 유일하게 진정한 소통이 가능했던 사람(은혜)이 없는 세계에서는 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광장》을 불교의 눈으로 보면 더욱 깊은 통찰이 보입니다.
무상(無常): 모든 것은 변한다 일제의 하늘이 무너지고 분단의 하늘이 들어섰습니다. 남한의 밀실도, 북한의 광장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은혜도 죽었습니다. 소통의 가능성도 사라졌습니다. 모든 것은 무상합니다.
집착: 괴로움을 키우는 것 명준의 집착은 "진정한 소통"입니다. 이 집착이 괴로움을 증폭시킵니다. 만약 명준이 "소통 없이도 살 수 있다"라고 받아들였다면? 괴로움은 줄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집착을 버리면 인간으로서의 존재 자체가 사라집니다.
역설입니다. 불교는 집착을 버리라 하지만, 인간적 소통에 대한 집착 없이는 인간으로 살 수 없습니다. 그 집착이 명준을 인간답게 만들었고, 동시에 그를 파멸시켰습니다.
색성향미촉법의 관점 명준이 남한에서 본 것은 색(色), 화려하지만 공허한 자본주의 풍경입니다. 북한에서 들은 것은 성(聲), 웅장하지만 획일적인 집단 구호입니다. 윤애와 은혜는 촉(觸)이 아닙니다. 각 체제의 실체적 모습입니다. 명준이 진정으로 원한 것은 법(法), 하지만 이념의 법이 아니라 인간 교감으로서의 법이었습니다. 이념은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소통의 장애물이었습니다. 은혜와의 관계만이 이념을 깨고 진정한 법(인간적 소통)에 도달했습니다.
명준만이 아니었습니다. 분단의 하늘 아래, 서로 다른 선택을 한 물고기들이 있었습니다.
오발탄(이범선) - 미(생존)형: 위계 낮은 물고기의 비극 "자, 이제 우리도 다 같이 미쳐보자구." 송철호는 계리사 사무실 서기입니다. 양심과 성실을 좌우명으로 삼고, 남한 체제가 주는 먹이를 성실히 따랐습니다. 하지만 같은 하늘 아래서도 물고기들 사이에는 위계가 있었습니다. 북한에서 지주였던 그의 가족은 월남 후 해방촌 판잣집으로 추락했습니다. 허기를 참아가며 성실하게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위계 높은 물고기들은 많은 먹이를 차지했지만, 위계 낮은 송철호는 조금만 받아 근근이 생존했습니다. 동생은 윤락녀가 되고, 어머니는 실성하고, 아내는 난산으로 죽습니다. 동생은 권총 강도로 체포됩니다. 결국 철호는 방향 감각을 잃고 "오발탄"처럼 어디로 갈지 모르는 채 의식을 잃습니다. 하늘의 먹이를 성실히 따랐지만, 조금밖에 받지 못한 힘없는 물고기의 비극입니다.
분단의 하늘 아래 공통점이 보입니까? 두 작품 모두 분단 체제가 인간을 파괴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광장의 명준은 이념을 넘어선 인간적 소통(법)을 추구했지만 전쟁이 그것을 파괴했습니다. 오발탄의 철호는 체제에 순응하며 성실히 살았지만, 물고기들 사이의 위계 때문에 조금밖에 먹지 못하고 결국 무너졌습니다. 이념을 거부하면 죽고, 이념에 순응해도 위계 낮은 물고기는 살 수 없는, 이것이 분단 시대 문학의 비극입니다.
《광장》은 분단의 하늘 아래서 이념이 아니라 진정한 인간적 소통(법)을 추구했지만, 남한의 밀실도 북한의 광장도 소통을 허락하지 않았고, 유일하게 이념을 깨고 소통에 성공한 은혜마저 전쟁(폭격)으로 잃어버린 지식인이, 소통 없는 세계에서는 살 수 없다는 절망 속에서 바다에 몸을 던진 이야기입니다.
명준의 이야기가 70년이 지난 지금도 울림을 주는 이유는 뭘까요?
하늘은 여전히 분단입니다. 남과 북의 체제는 바뀌었지만 여전히 쪼개져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이념의 장벽 앞에 놓입니다. 진보인가 보수인가, 페미니즘인가 안티페미인가. 형태는 다르지만 본질은 같습니다. 이념이 인간을 가로막습니다.
여전히 누군가는 이념을 넘어선 소통을 추구하고, 여전히 그 소통은 쉽지 않습니다. 여전히 이념의 벽 앞에서 괴로워하며 펄떡입니다. 욕망의 구조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다음 회 예고] 제2부 8회: "전환부 1 - 하늘은 어떻게 변해왔는가?" - 봉건에서 식민으로, 식민에서 분단으로 이어지는 하늘의 해체와 재구성. 지금까지 살펴본 세 개의 하늘이 어떻게 연결되고 변화했는지, 그리고 물고기들의 욕망은 어떻게 대응해 왔는지 정리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