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욕망을 쫓는 물고기들:불교로 보는 문학의 풍경

제2부 한국문학 – 하늘과 먹이의 교차

by 한시을

6회: 식민의 하늘 – 《만세전》


여러분은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당한 적 있나요? 이름을 바꾸라는 강요, 모국어를 쓰지 말라는 압박, 내가 나임을 증명할 수 없는 상황 말입니다.


1920년대 조선. 하늘이 바뀌었습니다. 500년 이어온 봉건의 하늘이 무너지고, 일제의 하늘이 들어섰습니다. 새로운 하늘은 명확한 먹이를 던졌습니다. "황국신민이 되어라. 일본에 순응하면 살 수 있다."


염상섭의 《만세전》 주인공 이인화는 도쿄 유학생입니다. 일본 교육을 받고, 일본어를 쓰고, 일본 땅에서 삽니다. 하늘이 던진 먹이를 먹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아내의 위독 소식을 듣고 조선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그는 깨닫습니다. 자신이 진짜 쫓고 있던 먹이가 무엇인지.


식민의 하늘이 던진 두 가지 먹이


일제강점기라는 하늘은 봉건의 하늘과 달랐습니다. 신분제는 무너졌지만, 더 강력한 질서가 들어섰습니다. 민족 전체의 말살.


하늘은 두 가지 먹이를 던졌습니다.


첫째, "순응하라. 일본인이 되어라. 그러면 살 수 있다." 친일파들이 쫓은 먹이입니다. 신교육을 받고, 친일 관료가 되고, 일본 이름을 받아들이면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둘째, "저항하라. 독립을 위해 싸워라." 독립투사들이 쫓은 먹이입니다. 하지만 이 먹이를 쫓으면 투옥, 고문, 죽음이 기다렸습니다.


이인화 같은 식민지 지식인들은 어느 쪽 먹이도 온전히 먹을 수 없었습니다. 순응하자니 양심이 괴롭고, 저항하자니 현실이 두려웠습니다.


이인화가 진짜 쫓은 먹이


하늘 (시대정신, 질서) 일제 식민지배 - 조선인은 일본에 순응하거나 저항하거나


먹이 (욕망의 대상)

Primary: 법(法) - 민족의식과 독립에 대한 갈망

Secondary: 색성향미촉(色聲香味觸) - 아내로 구현된 조선의 모든 감각


기차 안 장면을 보세요. 이인화는 조선인 승객들을 관찰합니다.


"조선 사람인 듯싶으나 짐도 옷도 일본인과 다름이 없다. 그들은 일본말을 하며... 조선말을 쓰면 천대를 받는 듯이 부끄러워한다."


이인화 자신도 마찬가지입니다. 도쿄에서 일본어를 쓰고, 일본식 생활을 하고, 일본 교육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조선으로 돌아오면서 무언가가 부서집니다.


"나는 조선 사람이다. 하나 조선 사람으로서 조선을 위하여 무엇을 하였는가."


이것이 이인화의 Primary 먹이입니다. 법(法), 즉 민족의식과 독립에 대한 갈망. 도쿄에서는 억눌렀지만, 조선 땅을 밟는 순간 솟아오르는 욕망입니다.


그런데 아내는 어떤 의미일까요? 아내는 단순한 개인이 아닙니다. 아내는 조선의 색성향미촉 전부를 담은 존재입니다.


色(색) - 아내의 모습, 조선 여인의 얼굴

聲(성) - 아내의 다정한 목소리, 조선어

香(향) - 아내의 냄새, 조선 가정의 정취

味(미) - 아내가 차려준 정갈한 음식

觸(촉) - 아내의 따뜻한 손길, 포근한 접촉


아내의 죽음은 이 모든 것을 한 번에 잃는 것입니다. 이인화는 도쿄에서 일본식으로 살며 근대화(일본화)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조선의 색성향미촉은 서서히 멀어졌습니다. 아내의 모습을 보지 못했고, 아내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고, 아내의 음식을 먹지 못했고, 아내의 손길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조선에 돌아왔을 때, 아내는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더 이상 아내의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아내의 다정한 목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아내의 음식을 맛볼 수 없습니다. 아내의 따뜻한 손길을 느낄 수 없습니다. 색성향미촉 전부의 상실입니다.


작가 염상섭은 천재적입니다. 조선의 색성향미촉 소멸을 일일이 설명하는 대신, 아내라는 한 인물로 다섯 가지 감각의 상실을 한 방에 보여준 것입니다. 이인화가 쫓은 먹이는 두 가지입니다. 법(민족의식)과 색성향미촉(아내). 하지만 돌아왔을 때 색성향미촉은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법만 남고 감각은 사라진 괴로움입니다.


물고기 (인간)

이인화: 일본 교육받은 지식인이지만 민족의식을 버리지 못한 존재

식민지 조선인들: 하늘의 먹이(순응)를 먹으며 괴로워하는 물고기들


괴로움의 구조


이인화의 괴로움은 명확합니다.


민족의식(법)은 있지만, 조선의 감각(색성향미촉)은 죽어 있습니다. 독립을 원하지만, 독립시킬 조선의 구체적 실체가 사라졌습니다. 3.1 운동도 실패했습니다. 하늘은 너무 강력합니다.


이인화는 도쿄에서 관념으로만 조선을 사랑했습니다. 민족의식(법)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조선, 즉 색성향미촉으로 존재하는 조선은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경험했지만 일본화되면서 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귀국했을 때 아내는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색성향미촉이 죽은 것입니다.


기차에서 내려 조선 땅을 밟으면서 이인화는 봅니다. 황폐한 농촌, 굶주리는 백성들, 일본 헌병들. 조선어 대신 일본어를 쓰는 동포들. 하늘이 던진 먹이를 거부하는 물고기들은 이렇게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아내처럼. 색성향미촉처럼.


"나는 무엇을 하여야 할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것이 구부득고(求不得苦), 원하는 것(색성향미촉)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입니다. 동시에 원증회고(怨憎會苦), 미워하는 것(일제)을 매일 마주해야 하는 괴로움입니다. 그리고 애별리고(愛別離苦), 사랑하는 것(아내=색성향미촉)과 헤어지는 괴로움입니다.


작품은 결론을 내리지 않습니다. 이인화는 여전히 괴로워하며 펄떡입니다. 법(민족의식)은 있지만 색성향미촉(아내)은 죽어버린 채로.


불교적 통찰: 무상과 집착


《만세전》을 불교의 눈으로 보면 더욱 깊은 통찰이 보입니다.


무상(無常): 모든 것은 변한다

봉건의 하늘이 무너졌습니다. 500년 이어온 신분제가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하늘(일제)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변할 것입니다.

이인화의 아내도 죽어갑니다. 모든 것은 무상합니다.


집착: 괴로움을 키우는 것

이인화의 집착은 '민족'입니다. 이 집착이 괴로움을 증폭시킵니다.

만약 "나는 조선인이다"라는 생각을 버린다면? 괴로움은 사라질 것입니다.

하지만 그 집착을 버리면 자신도 사라집니다. 정체성의 소멸입니다.


역설입니다. 집착이 괴로움을 만들지만, 그 집착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듭니다. 민족의식이라는 집착이 없었다면, 독립운동도 없었을 것입니다.


색성향미촉법의 관점

이인화가 기차에서 본 것은 색(色), 황폐한 조선의 풍경입니다.

들은 것은 성(聲), 조선어를 부끄러워하는 동포들의 일본어입니다.

맡을 수 없는 것은 향(香), 사라진 조선의 정취입니다.

맛볼 수 없는 것은 미(味), 아내가 차려주던 음식입니다.

느낄 수 없는 것은 촉(觸), 아내의 따뜻한 손길입니다.

아내의 죽음은 색성향미촉 전부의 상실, 조선 감각 자체의 소멸입니다.

하지만 남아 있는 것은 법(法), 민족의식이라는 관념입니다.

법은 있지만 색성향미촉은 없는, 관념만 남고 감각은 죽은, 이것이 식민지 지식인의 비극입니다.


식민 하늘 아래 다른 물고기들


이인화만이 아니었습니다. 식민의 하늘 아래, 서로 다른 먹이를 쫓은 물고기들이 있었습니다.


무정 (이광수) - 법(근대화)+촉(관계)형 "조선을 개화시켜야 한다." 이형식이 쫓은 먹이는 법(近代化, 新敎育)이었습니다. "신교육을 통해 조선을 문명국으로 만들자." 하지만 그 신교육은 일제가 제공한 것이었습니다. 동시에 이형식은 영채와 선형 사이에서 고민합니다. 기생 출신 영채에 대한 동정과 사랑, 신여성 선형과의 근대적 관계. 촉(관계에 대한 욕망)이 법(근대화)과 얽힙니다. 이광수 자신이 나중에 창씨개명하고 친일로 전향한 것을 보면, 이 물고기는 결국 하늘의 먹이를 선택했습니다. 법(근대화)을 쫓다가 일제에 순응한 것입니다.


상록수 (심훈) - 법(계몽)+법(교육)형 "농촌을 계몽하자." 박동혁과 채영신이 쫓은 먹이는 일차 법(農村啓蒙運動, 일제에 대한 저항)이었습니다. 독립운동처럼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조선 민중을 깨우치는 것도 저항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저항의 방법이 이차 법(敎育)입니다. 교육은 의(意)를 통해 작동합니다. 아이들의 의식에 민족정신을 심는 것, 이것이 이차 법입니다. 채영신은 농촌 학교를 세우고 아이들을 가르치다 병들어 죽습니다. "흙에 묻힌 나는 상록수가 되리라." 법을 위해 법을 실천하다 스러진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의 희생도 일제 하늘은 막지 못했습니다. 상록수는 자랐지만, 하늘은 여전히 어두웠습니다.


식민의 하늘 아래 공통점이 보입니까? 모든 작품의 Primary 욕망이 여전히 '법(法)'입니다. 하지만 봉건시대와 다릅니다. 봉건시대의 법은 신분제에 맞서는 정의였습니다. 식민시대의 법은 민족의식과 독립, 또는 근대화와 계몽입니다. 하늘이 바뀌니 법의 내용도 바뀐 것입니다. 그리고 Secondary는 다양합니다. 만세전은 법과 함께 색성향미촉(아내) 전부를 잃었고, 무정은 법(근대화)과 촉(관계)이 얽혔으며, 상록수는 법(계몽)을 위해 법(교육)을 실천했습니다. 관념(법)과 구체적 감각(색성향미촉) 또는 관계(촉), 또는 이중 법 구조, 이것이 식민지 시대 문학의 특징입니다.


만세전이 말하는 것


《만세전》은 식민의 하늘 아래서 민족의식(법)을 관념적으로 쫓지만, 조선의 구체적 감각(색성향미촉)은 이미 죽어버린 지식인의 이야기입니다. 아내의 죽음은 조선 감각 전체의 소멸이고, 법만 남고 색성향미촉은 사라진 괴로움 속에서 펄떡이는 물고기의 기록입니다.


지금 우리는


이인화의 이야기가 100년이 지난 지금도 울림을 주는 이유는 뭘까요?


하늘은 바뀌었습니다. 일제는 물러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정체성의 갈등 앞에 놓입니다. 글로벌 기업에서 일하며 한국어를 잊어가는 사람, 외국 문화에 동화되면서 한국의 색성향미촉을 잃어가는 이민자, 이념은 있지만 그 이념의 구체적 실체는 소멸하는 현실.


여전히 누군가는 법(이념)을 쫓고, 여전히 그 법의 실체(색성향미촉)는 사라져 갑니다. 여전히 관념과 현실 사이에서 괴로워하며 펄떡입니다. 욕망의 구조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문학은 영원합니다. 인간은 끝없이 펄떡이는 물고기니까요.


[다음 회 예고] 제2부 7회: "분단의 하늘 – 《광장》" - 일제의 하늘이 무너지고 분단의 하늘이 들어섰습니다. 남과 북, 두 개의 하늘이 서로 다른 먹이를 던지는 상황에서 최인훈의 이명준은 어느 쪽도 선택하지 못합니다. "밀실도 싫고 광장도 싫다"는 그의 절규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keyword
수, 금 연재
이전 06화욕망을 쫓는 물고기들: 불교로 보는 문학의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