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 배 1
- S선생님 영정 앞에서
박 노 빈
좀 어리다고 내 주머니는 꼭꼭 닫고
그대가 선뜻 수표를 내주며 사주는 밥을 참 자주도 먹었고
그날도 당연한 듯이 편안히 운전하는 그대의 널찍한 차를 타고 바닷가에 가서 우리 여럿이 내 시집을 교재로 나를 강사로 만들어 진지하게 들어주고 옛 노랠 부르며 새운 밤
그날 기타를 배워와 앰프를 챙겨와 프로처럼 연주해 주어 우리 함께 밤새워 부르던 옛 노래들
삼십 년을 훌쩍 넘기며 아가씨들이 모두 결혼하고 어떤 이는 할머니가 되는 동안 함께 나누던 우리들의 인생
함께 읽고 함께 얘기 나누던 그 여러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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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 배 2
- S선생님 영정 앞에서
박 노 빈
풀잎 배 만드는 법을 알려주어 함께 투명한 물에 띄운 이 배들은
이렇게 햇빛 싱그러운 시냇물을 지금도 서로 얘기하며 물 따라
출렁이며 도른도른 떠내려 가고 있는데 어째 그대만이 없소
그대도 우리들과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 하필
내 구두를 감추었구료
그대 마지막 떠나보내는 이 자리
잊지 말아 달라고 밤마다 달맞이꽃 보며 그댈 불러 달라고?
그날도 함께 몇 시간이고 바라보던 저 붉은 노을의 장관, 논두렁에 앉아 취한 눈으로 바라보는 그런 시간이 가장 좋다고 늘 말하던,
'어린왕자' 그대가 없으니 어쩌란 말이오
행복한 집에 초대하더니
팀원들을 원앙 한 쌍으로 맺어주는 비상한 재주가 두어 번
그러다 재혼의 결혼식을 올리고
민속촌 구경시켜 드릴 때 만났잖소
연로하신 큰 자형님과 누님을 자식처럼 몇 년이나 모시고 살면서 극진히 봉양하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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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 배 3
- S선생님 영정 앞에서
박 노 빈
어느 한밤중에는 자식을 먼저 보내는 서러운 인생사를 불러오던 노래방
그 긴 세월이 이 도시 곳곳에 스며 있건만
그 큰 슬픔을 딛고 서서
얻은 기타 솜씨라서 이제 눈물 위에서 춤을 추는 인생 승리라 여겼건만
함께 이룬 승진 연수의 기쁨을 공유하고 한방에 기거할 때
그대 상처가 얼마나 크나큰 악몽으로 다가오는지 나는 밤마다 목도해야만 했기 때문이었소
해마다 서울에 입원 했고
치료를 마치면 대수롭지 않게 다시 건강해지기에 그냥
이번에도 가볍게만 생각했는데
그게 암 치료 과정이었다니
이제 마지막 입원만 남았다 해서 우리는
내 퇴임 축하를 위해 그대 누구보다 건강하게 하룻밤을 잘 지냈으므로
당연한 완치를 기대하고 축포를 만지작거렸건만
그리 환히 웃던 그대의 미소 나지막이 속삭이며 친절하게 다가오던 부드러운 목소리 테니스로 다져진 몸과 썬글라스에 스포티하면서도 품격이 넘치던
신사 패션이 영정 속에 들어 얼어붙어 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