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내가 느끼는 감정이 정확하게 어떤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감정을 이해한 것은 성인이 되고 나서도 20대 중후반이다. 감정의 개념과 표현방법을 배우고 나서 내 안의 감정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최초의 기억은 초등학교 때 아니 그 이전부터일 수 있다. 세상에 나 혼자인 것 같고 나 스스로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것처럼 느꼈다. 세상을 살 때 마치 살얼음판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수 있어 한걸음 한걸음을 조심스럽게 내딛는 기분으로 살았다. 어렸던 여자아이가 어떤 경험으로 인해 그러한 기분을 느꼈는지 정확히 콕 집어 말하기 힘들다. 다만 경제적으로 어려웠다. 부모님은 강원도 산골에서 농사를 짓다가 갑자기 부산으로 이사를 오셔서 안정된 직장을 구하지 못해 힘들어했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다. 시골에 살 때도 부모님은 우리를 놔두고 새벽부터 나가 해가 지기 전까지 밭일을 하고 오셨다. 부모님은 살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나는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무서워서 집 앞 골목길에서 동네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곤 했다. 어쩔 수 없이 혼자 집에 있어야 하면 온 집안에 불을 다 켜놓고 TV 볼륨을 크게 올렸다. 삼 남매에 중간이긴 했지만 우리는 서로 개별적이었고 형제간에 친밀한 연결선은 없었다. 오빠와는 어린 시절 만나면 티격태격 싸우는 게 일이었다.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이 불안이었다. 어딘가에 마음을 붙이지 못했고, 방황했다. 그 방황은 외적인 것이 아니라 마음의 방황이었다. 큰 언덕처럼 기댈 존재가 보이지 않았다. 부모님은 늘 경제적으로 힘들어했고, 그 심리적 고통이 나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부모님은 ‘내 비빌 언덕이 될 수 없겠구나.’를 언제부터인가 알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나 자신에 대한 화와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 동시에 들었다.
불안의 밑바닥에는 외로움이 자리 잡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나는 혼자이고 스스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신념이 생겼다. 그러면서 외로움의 친구처럼 불안이 따라다녔다. 이제는 그 어린 시절 힘없고 나약한 여자아이가 아님에도 새로운 변화 앞에 어린 시절 그 불안과 외로움을 소환해서 되새김질하는 느낌을 받는다.
시간이 흘렀고 전혀 다른 상황임에도 반복된다는 느낌이다. 다행히도 나의 모습을 통찰하고 인식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힘들어하는 나를 토닥여주고 위로해주면서 나아가고 있다.
“실수해도 괜찮다. 서툴러도 괜찮다. 몰라도 괜찮다. 너무 잘하려고 하지 않아도 괜찮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
문득 외롭고 불안하다. 그래도 괜찮다. 외롭고 불안한 나도 나니까. 나 자신과 타인에게 너무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려고 애쓰지 않아도 나니까. 언제부턴가 부족하고 서툰 나를 보듬어주고 인정하면서 같이 동행하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