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삶을 살고 싶니?

힘들어도 산을 오르는 이유는 뭘까?

by 호모 비아토르

걷는 걸 참 좋아한다.

특히 등산을 더욱 좋아한다.

이유는 무엇일까?

숨이 턱까지 차오르며 하체는 중력의 법칙에 의해 땅으로 스며들 것 같은 순간에 한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아, 내가 살아있구나. 숨 쉬고 있구나.’



딱딱하고 굳은 나의 양 어깨는 일상의 무게와 긴장의 결과였다. 그 사실은 알지 못하고 늘 긴장의 연속에서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그것이 진짜 나인 줄 착각하며 살았다. 숨 쉬고 있고 살아있어도 실제로 호흡하고 살아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할 때가 종종 있었다.

등산을 하면서 일상에서 딱딱하게 굳어있는 내가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힘이 들면 어쩔 수 없이 온몸에 힘을 빼고 오로지 내 발등만 쳐다보며 걷는다. 시선을 산 위를 보고 걷기에는 높은 산에 압도되어 포기하고 뒤돌아 하산할 것만 같다.



그냥 걷는다. 걷다 보면 그렇게 걷고 있는 자신이 보인다. 한발 한발 내딛을 때마다 얼마나 숨이 차오르는지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숨만 제대로 쉬고 싶을 뿐이다.

걷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잠시 멈춰 서서 쉰다. 너무 힘들면 흙바닥에 주저앉을 때도 있다. 숨이 제자리를 찾으면 다시 걷는다.

사람들은 말한다. 그렇게 힘들게 오르는 산이 뭐가 좋냐? 여기서 좋음은 아주 편안하고 행복한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산을 오르는 순간은 진짜 힘들다. 숨차고 걸을 때마다 쇳덩어리를 발목에 찬 느낌이다. 이렇게 내 몸이 무겁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을까?



산에 오르는 순간에 모든 감각이 살아있음을 느낀다. 숨소리, 땀구멍, 바람에 스치는 머릿결, 손바닥과 발바닥, 등에서 올라오는 열기...

아주 느리게 돌아가는 필름처럼 주변 자연풍경이 보인다. 일상에서는 너무 빠르게 2배속으로 돌아가는 주변풍경이 자연 속에서는 아주 느리고 세밀하게 보인다. 평소 보이지 않았던 것이 자연에서는 보인다.

일상에서는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치고 살고 있는 걸까?

비로소 자연 속에서 제일 자연스러운 자신이 된다는 것을 발견한다.


부자연스러움이 일상이 되고 사회적 갑옷을 겹겹이 입고 살아가는 나를 본다.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던 것을 산을 오르면 느낀다. 당연할 줄 알았던 평범한 일상이 나를 옥죄고 불편하게 한다는 걸 알게 된다. 어쩌면 자연은 고요함 속에서 침묵의 선물을 주고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고요함 속에서 내딛는 한 걸음마다 외부의 소리는 음소거하고 오로지 내면의 울림에 귀 기울이게 된다.

오늘도 영남알프스 중 하나인 운문산을 올랐다. 정말 힘들었다. 8시부터 시작된 등산은 오후 3시 40분이 넘어서야 주차장으로 내려올 수 있었다. 가족들과 함께하기에 각기 다른 속도로 맞추어 걷고, 중간에 쉬는 시간도 많다 보니 다른 등산객에 비해 느렸다. 매년 한 번씩 오르는 운문산은 이번이 세 번째이다. 운문산은 산이 무척 가파르고 돌이 많다. 올라갈 때는 거북이처럼 엉금엉금 기어오르고, 내려올 때는 돌들과 빙판길에 아이젠을 착용하고도 언제 미끄러질지 모를 위험에 아주 조심스럽게 한 발씩 내딛으며 걸었다.

하산 막바지 무렵에는 두 다리가 거의 통나무가 된 것처럼 감각이 무뎌지고 아팠다.



그럼에도 산은 나에게 오랜 시간 동안 나 자신을 돌봐주는 엄마 품 같은 존재임이 분명하다.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편안하고 오히려 몸과 정신을 이완시켜 준다.

때때로 사람과 환경은 조건적이지만 자연이 주는 무조건적인 수용은 절대적이다.

두 아들이 커서 더 이상 같이 등산을 하지 못할 때가 온다 해도 나는 오르고 또 오를 것이다. 그리고 산 정상에서 믹스커피 한잔을 마시며 자연이 주는 선물을 감상할 것이다.

운문산에서 바라본 영남알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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