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왔는데, 아직 겨울?
산책을 한다. 동네산도 오른다.
아직 바람은 매섭고 싸늘하기만 한데, 어느새 매화꽃이 만개하고 산수화가 봉오리자세로 꽃 피울 차비를 한다.
봄이 왔다.
설레어할 마음은 아직 엄동설한인 듯 춥고 거센 겨울바람을 맞은 것처럼 움츠리고 긴장되어 있다.
그녀가 체감하는 계절은 아직 겨울이다.
봄소식에 신나야 할 시간에 잔뜩 낀 먹구름이 그녀의 머리 위에만 머무는 것처럼 기운 빠지고 우울한 하루다.
그녀에게도 봄은 올까?
언젠가 오겠지.
긴 겨울을 보내야 할 수도 있고
짧은 봄을 보낼 수도 있을 거야.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이전에 젊은 혈기로 화내고 짜증을 냈다.
지금은 속상하고 화나고 짜증은 나는데 겉으로 표현하는 것은 조금 더 신중하다.
세상은 그녀 마음 같지 않고 뜻대로 되지 않으며 지금 이 상황이 영원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잠잠히 버티고 참고 기다려본다.
추락하는 새는 날개가 없다는데...
요즘 그녀 앞에 놓인 상황이 딱 그렇다.
어제 추락해서 이쯤이면 더 이상 안 내려가겠지 했는데 오늘 또 더 아래로 떨어진다.
도대체 언제 어디까지 날개 없이 아래로 떨어지기만 할 것인가? 떨어지는데 바닥은 있는 걸까?
한숨 끝에 마음속에 저절로 기도가 나온다.
"지금 주어진 상황은 경험과 지식으로 알 수 없지만,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믿으니 주님의 선한 뜻대로 인도하소서.
비록 눈앞에 상황이 불합리하고 억울하게 느껴지더라도 주님 뜻에 따르겠습니다."
그녀만 힘든 건 아니니, 그것만으로도 같이 힘을 내면 좋겠는데...
세상사람들도 각자 힘든 일 하나 아니 그 이상을 등에 짊어지고 하루 또 하루를 버티고 있을 텐데...
자꾸 힘이 빠진다.
또다시 자동반응처럼 마치 세상에서 혼자 피해자가 된 것처럼 초라하게 느껴진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부둥켜안아본다.
괜찮아.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다 지나갈 거야.
너무 감정구덩이에 빠져 허우적대지는 마.
지금으로도 충분해.
그냥 주어진 일을 해. 오늘을 살아.
세상에 너만 힘든 건 아니야.
그녀도, 그도, 그들도 다 힘든 하루를 살아가.
힘을 빼고 관망하듯 지금 상황을 바라보면 좋겠어.
도저히 안 되면 그냥 울어. 울고 다시 일어나.
훗날 이 상황에 숨겨진 깊은 의미를 발견할 수도 있어.
그러니 지금 눈을 뜨고 주어진 사람과 상황을 탐색하고 새로운 걸 발견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길 바라.
프로그램을 진행할 자료를 찾는 중에 문득 동영상이 눈에 들어온다.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눈앞에 애순이가 그녀에게 해주는 위로의 말처럼 전달된다.
"인생이 봄, 여름, 가을, 겨울로 가는 줄 알았더니 아니야.
그냥 때때로 겨울이고 때때로 봄이었던 거 같아.
수만 날이 봄이었더라.
반짝반짝한 순간들이 너무 많았어. 너무."
— '폭싹 속았수다' 오애순 대사
지금 겨울처럼 느끼는 이 계절이 뒤돌아보면 봄일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생긴다.
순차적으로 오는 계절이 아니라, 그날그날이 뒤섞인 계절이라는 걸 40대 후반이 되니 깊이 공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