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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모 비아토르 Feb 12. 2022

격리1일차,무너진 일상 “혼란”

2022년 1월 25일 화요일


일상은 소리 소문 없이 무너질 수 있다. 무심히 감기인 줄 알았던 그 녀석의 정체가 코로나로 밝혀진 직후의 상황을 의미한다. 감기로 생각하면 마음 편히 보냈던 일상이 코로나가 되는 순간 평온한 일상에 허리케인 같은 태풍이 불어 닥쳤다. 미리 대비하고 준비할 것도 없이 우리는 바로 자가 격리 대상자로 현관문 밖 출입이 금지되었다. 물론 확진자인 큰 아이는 안방 문 밖을 나오지 못하고 오로지 안방과 안방에 딸린 화장실만 사용할 수 있었다. 미리 알았다고 해도 대비할 건 없었을 것이다.      


때로는 어차피 불어 닥치는 혼란은 그냥 맞아야 할 때도 있다. 뭔가로 자기를 방어하거나 숨기보다 그냥 말이다. 혼란을 있는 그대로 맞을 때 처음이라 아파서 힘들 수 있다. 그래도 괜찮다. 마음속으로 외친다. ‘그래도 죽지 않는다. 나는 지금 이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으니 올 테면 와 봐라. 이 정도는 감당할 자신이 있다.’  

   

그렇게 다짐을 해도 후유증은 있을 수 있다. 그것도 오로지 내 몫이다. 그 후유증에서 도망가려고 하지 말자. 나의 아픔과 고통을 쓰레기통에 던지듯 함부로 구겨서 버리지 말자. 진짜 구겨서 버리고 싶더라도 다시 펼쳐서 들여다보고 어루만져주자. 아픔과 고통을 낫게 하는 연고 약이라도 있다면  발라주고 싶다. 나에게 아픔과 고통을 낫게 하는 연고 약은 무엇일까? 내 귀에 들리는 잔잔한 찬양 멜로디, 글쓰기, 엄마가 담아주신 무김치 한입 물고 따뜻한 쌀밥을 먹는 것, 따뜻한 믹스커피 한 모금 마시며 멍 때리기 등이 있다.      


아침에 평소와 동일하게 아이들이 일어났고 밥을 챙겨 먹였다. 그리고 각자 자기 할 일을 하고 있었다.

10시 즈음됐을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온다. 아무 생각 없이 받는다. 보건소였다. 큰아이가 코로나 확진자라고 한다. 알고 있냐고 묻는다. 모른다고 했다. 간략하게 큰아이가 갔었던 동선을 확인한다. 지난주 월요일부터 스케줄을 물었고 사람이 많이 모인 곳에 간 곳을 집중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묻는다. 그때부터 내 멘털은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한다.  

   

마치 죄를 짓고 취조실에서 심문을 받는 것처럼 같은 질문에 여러 번 대답했다. 점점 죄책감과 짜증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동일한 상황인데도 보건소에서 학교, 도서관, 학원, 수차례 추적조사 관련 건으로 전화가 왔다. 추적조사가 통합되어 있지 않아 태권도 학원, 학교 방과 후 수업, 학교보건실 등등 제각각 관련해서 다른 담당자가 전화를 해왔다.    

  

점차 정신이 피폐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살아온 일상을 돌아보고 ‘내가 왜 거기 갔을까? 안 갈걸..’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 것 같아 미안했다. 나 때문에 이 추운 데서 코로나 검사를 받느라 기다리고, 사람이 많아 다음날 갔다는 얘기를 들으면 마음이 많이 불편했다. 해가 지고 저녁이 되자 불안과 두려움, 죄책감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밤새도록 첫째 아이가 열에 시달려서 수건을 적혀 목, 얼굴을 닦아낸다. 9시에 먹인 해열제가 도통 효과가 없어 다른 계통의 해열제를 11시에 한 번 더 먹인다. 새벽 4시에 일어나 확인하니 38도가 넘어섰다. 자고 있는 아이를 깨워 해열제를 먹인다. 긴긴밤을 마음을 졸이며 보냈다.   

   

사람은 한순간이다. 한순간에 밀물처럼 밀려드는 감정의 파도를 막아서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저 있는 그대로 그 파도를 맞아야 한다. 아프다고 저만치 도망가면 감정이 조용히 썰물로 빠져나갈 거라고 생각하는가? 오산이다. 해결되지 않는 감정은 늘 내 안에 있다.    

  

피폐해진 정신 속에 깃들여있는 불안, 두려움, 죄책감과 마주한다. 그 감정은 어디서부터 오게 되었을까? 어떤 생각으로부터 기인한 것일까?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었다는 것, 공무원의 깊은 한숨소리, 나로 인해 불특정 다수가 코로나에 전염되지 않을까라는 섣부른 추측 등이 이러한 감정을 불러오고 있었다. 여기에서는 사실과 거짓이 섞여있다. 피해를 주었고 공무원의 한숨소리는 사실이다. 그러나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전염성은 확인되지 않는 나의 생각이다.      


어떤 감정이 일어날 때 그것이 사실에서 오는 것인지 비합리적인 생각에서 오는 것인지 구분이 필요하다. 비합리적인 생각에서 오는 것이라면 생각을 멈추고 생각을 전환하는 인지훈련이 필요하다. 그다음은 내게 남겨진 감정을 직시해야 한다. 없애려 하거나 축소시키지 말고 내 안에서 일어나는 두려움, 불안, 죄책감과 속삭이며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들어주고 보듬어주며 ‘너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하면 좋겠니?’라고 물어봐주며 여유를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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