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아프면 엄마는 자기 몸을 챙길 수 없다. 오로지 아이들 케어만 집중할 수밖에 없다. 선택의 여지는 없다. 아이들이 회복되어 잘 먹고 잘 자면 그때 내 몸 상태를 본다. 그때는 이미 늦었다. 긴장이 풀린 건지 아니면 정신력으로 버틴 건지 몸에서 이미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요 며칠 아이들의 열감기로 밤잠을 설치고 코로나로 신경을 너무 쓴 탓인지 몸살감기 기운이 몰려온다. 쓰러져서 내 몸을 챙길 수가 없다. 매일 아이들 밥과 간식을 챙겨 먹이고 하루에 꼭 해야 하는 집안 일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참 열심히 하루하루 주어진 일을 해 나간다. 한 번씩 미련한 곰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 아무도 탓할 수 없다. 그냥 내가 선택한 하루이다. 막말로 쉬고 싶으면 아무것도 안하고 쉬어도 된다. 단지 내 자신이 그런 나를 용납하지 못할 뿐이다.
2022년 1월 28일 금요일
격리 4일째에 접어든다. 잠을 자도 머리와 몸이 무겁다. 그럼에도 외부상황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가고 격리상황이 안정이 되어간다. 말 그대로 격리의 일상이 불편함에서 익숙함으로 변해가고 있다. 아이들은 처음에 힘들다고 투덜거리기도 했다. 아침에 일어나 각자 방에서 만화를 책을 보고, 때가 되면 밥과 간식을 먹는다. 오전과 오후에 나누어 1시간 노트북으로 영화를 본다. 그리고 남는 시간은 장난감과 블록, 그림그리기를 하며 논다. 그렇게 또 하루가 저물어간다.
말하지 않았는데도 어떻게 알았는지 전화가 오는 사람들이 있고, 몰랐는데 안부전화로 나의 상황을 아는 사람도 있다. 그때 썰을 풀 듯 이번 주에 있었던 상황을 늘어놓는다. 그것도 잠시 각각의 방에 있던 녀석들은 엄마를 시도 때도 없이 불러댄다. 오늘 아침은 자꾸 불러 대서 예민했던 나는 그만 좀 부르라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나도 참..조금만 부드럽게 얘기할 걸...’ 지나고 나서 후회를 한다. 늘 이런 모습이다.
낮잠을 잘까도 생각했다가 다 읽지 못한 책이 보여 다시 책을 본다. 한권의 책을 읽고 나서 ‘쉴까?’ 생각하다가 다시 다른 책을 손에 든다. 마음속으로 ‘너는 도대체 언제 쉴 거니?’라고 물어온다. ‘지금 이게 쉬는 건데... 나보고 누우라고? 그건 밤에 잠을 자면 되지.’
아직은 살만한가보다. 낮에 눕지 않는 걸 보면 말이다. 나는 정말 아프면 해가 중천에 뜬 낮에도 벌러덩 누워 낮잠을 청한다. 그런데 오늘은 내 몸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읽고 싶은 책도 눈에 들어오고, 쓰고 싶은 글감이 생각나서 노트북에 손을 얹어 놓고 있다.
누구나 자기만의 휴식 방법이 있다. 내 건강상태에 따라 휴식의 방법이 다르다. 내 몸 상태가 최악일 때 무조건 눕는다. 내 곁에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몸과 머리는 무겁지만 움직일만하면 일단 눕지 않는다. 앉는다. 앉아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는다. 그것은 독서와 글쓰기이다.
내가 아플 때 누가 나를 케어해주나? 나의 건강상태를 바로 눈치 채고 챙겨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지만 지금은 나와 두 자녀들뿐이다. 남편이 곁에 있었으면 나를 조금 더 챙겼을 것이다. 지금은 내가 내 몸을 챙겨야 한다. 몸에서 신호를 보내주면 때로는 낮잠으로, 또 독서와 글쓰기로 나를 케어 해준다.
오늘 하루도 저물어간다. 두 아들은 각자의 방에서 이면지에다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보내고 나는 식탁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격리기간 동안 내가 쉴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이 확보된 느낌이다. 미리 빌려놓은 책을 줄줄이 비엔나처럼 하나씩 읽어나갈 것이다. 그리고 지금 겪고 있는 상황을 글에 담아보려 한다. 매일 내가 보고 느끼는 일상이 그냥 스쳐 지나가지 않고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 길을 찾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