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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모 비아토르 Feb 16. 2022

5일차,이 시간이 당분간 지속될 거라는 “무기력”

2022년 1월 29일 토요일       


사람은 예기치 않은 상황에 닥치면 두렵고 불안하다. 불편한 상황도 점차 익숙해진다. 여기서 긍정적인 반응이 나올지 부정적인 반응이 나올지는 여러 상황 변수와 해석이 따른다.      


이틀 전부터의 감기 증상이 더욱 심해지고 컨디션의 난조를 보인다. 오늘 아침 역시 무거운 몸과 머리를 느끼며 여전히 내 몸에 달라붙어있는 감기 기운을 느낀다. 격리 상황에서 건강이라도 좋았다면 조금 더 좋은 방향으로 ‘지금의 상황을 이겨 나갈 텐데...’라는 아쉬움이 남았다. 지금 내 몸은 최악의 컨디션이다. 신경이 날카롭고 예민하다. 동일한 상황을 한쪽으로 치우친 부정적인 눈으로 보고 있다.  

    

컨디션과는 상관없이 아침에 해가 뜨면 해야 할 일을 한다. 열 체크, 환기, 아침밥 및 간식 챙기기, 청소 등이다. 큰아이는 나를 보고 “엄마는 오늘 몸이 안 좋네.”라고 말한다. 가뭄 때 논바닥이 갈라지듯 이상한 목소리가 나왔기 때문이다. 남편은 걱정이 되는지 외부에서 약 처방을 받아 전문의약품을 먹으라고 한다.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하니 결국 남편이 외래로 코로나 격리자 담당 간호사와 통화를 했다. 나는 전화상으로 진료를 받고 약을 처방받도록 해 주고, 손수 남편이 퇴근길에 현관문 앞에 약봉지를 놓고 간다. 역시 세심하고 배려심이 깊은 사람이다.      


나는 시련이나 고통이라고 느껴지면 내 문빗장을 더 꼼꼼 걸어놓고 다른 사람 도움 없이 혼자 해결하려는 어리석은 경향이 있다. 그런 자신을 알면서도 혼자 해결하려고 한다. 누군가 도와주려고 손을 내밀면 그게 왜 이리 귀찮고 불편한지 모르겠다. 이것 역시 내 안에서 해결하지 못한 과제이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한다.’라는 비합리적인 신념을 가지고 있다. 힘들고 지칠 때는 도움을 받을 줄도 알아야 한다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하지만 정작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안 받고 스스로 한다고 했으면 잘 살면 된다. 그것도 아니다. 육체적으로 아프니까 무기력 상태가 되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몸이 편한 것보다 일을 제대로 못하더라도 그냥 이렇게 혼자 있는 게 마음이 편하다. 무기력하다고 아예 안 하고 주저앉는 성격이 못 된다. 최소한의 할 일은 반드시 하고 쉰다. 초자아가 강해서인 건지 아니면 강박인 건지 잘 모르겠다. 사람들은 이런 나를 믿음이 가고 책임감이 강하다고 말한다. 속을 잘 몰라서 하는 말이다. 몸은 말을 듣지 않는데 할 일을 해야 할 때면 내적 갈등이 심하게 생긴다. 결국은 억지로 힘든 몸을 부여잡고 할 일부터 한다.  


다시 오후 햇살을 맞으며 눕는다. 잠은 오지 않는데 눕고 싶다. 30분 정도 누웠다가 다시 일어나 책을 읽는다. 책을 읽으며 생각한다.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두려움, 불안, 분노를 느낄 수 있다. 이는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과정에서 당연한 것이다. 반면에 희망과 호기심도 느낄 수 있다. 나는 코로나 격리 상황에서 두려움, 불안, 분노, 죄책감, 우울을 느꼈다.


 의지적으로 이 상황 속에 내가 모르는 어떤 의미가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뭔가를 찾고 있었다. 그 의미 찾기도 몸이 안 좋으니 스펀지에 물이 들어가 축 쳐지듯 방향을 잃고 있었다. 평소 움직이는 속도보다 더디고 생각의 속도도 느린 것은 잘못인가? 자문을 한다. 잘못되지 않았다. 그저 나만 느끼는 감정일 뿐이다. 누구나 몸이 아프면 마음에 영향을 받는다.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으니까.     

 

몸과 마음의 상태보다 그 상태를 내가 어떻게 바라보고 느끼는지가 중요하다. 아픈 나에게 비난과 채찍질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픈 나를 케어해주고 위로의 말을 스스로에게 해주는 연습이 필요하다. 오늘은 평소보다 시계가 느리게 간다. 내 일상도 느리다. 몸과 마음도 다 느리다. 마음먹은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오늘은 천천히 가기로 했다. 늦게 가도 괜찮아. 거북이처럼 늦게 가도 방향만 잃지 않고 가면 되니까. 토끼처럼 빠른 날도 있고 거북이처럼 느린 날도 필요하다.      


사람은 무기력해지는 순간이 올 수 있다. 자책하지 말자. 무기력이 무기력해지도록이라는 책에서는 무기력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해준다. 무기력은 무엇일까? 무기력은 전신적인 피로감과 집중력의 저하로 인해 간단한 작업을 하는 것에도 어려움을 겪는 부진한 상태를 의미한다. 무기력의 원인은 여러 요인이 있을 수 있다. 일반적인 무기력의 원인은 무엇일까? 첫째 체력이 떨어졌을 때이다. 둘째, 너무 지쳐서 에너지가 없어서 의지력이 낮을 때이다. 셋째, 인생의 자율성과 통제권이 없을 때이다. 넷째, 미래가 예견되지 않을 때이다.


 나의 경우는 체력이 떨어졌고 너무 지쳐서 에너지가 없는 상태 그리고 일상이 내 통제권에서 벗어난 격리 상황에서 오는 것이다. 다만 몸에서 오는 신호라고 생각해보자. “나 지금 쉬고 싶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오늘은 조금 천천히 살아볼래.” 그 소리에 귀 기울이자. 그 소리대로 느리고, 천천히, 그리고 쉬면서 하루를 살아보는 건 어떨까? 그러면 어느 순간 무기력했던 몸이 생기를 되찾을 시기가 올 수 있다.       


이미 해가 저물었다. 가족들은 주위에서 걱정을 한다. 어린아이들과 그 긴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느냐고? 주어진 삶의 몫은 각자가 책임지고 살아간다. 어린아이들조차 이 상황을 인지하고 자기들이 놀 거리를 찾고 만들어간다. 나 역시 기본적인 해야 할 일을 하고 주로 독서를 한다. 이 공간과 시간에서 할 수 있는 최적화된 취미는 독서와 글쓰기이다. 최근에 빌린 870페이지가 넘는 ‘의미의 지도’를 다 못 읽고 반납해야 할 거 같아 아쉬웠다. 격리 덕분에 매일 분량을 정해 읽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다 읽고 격리가 끝나면 정말 인생의 본질을 잃어버린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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