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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모 비아토르 Feb 20. 2022

10일차,서서히 회복되려는 조짐이 보이네


2022년 2월 3일 목요일


뭐든지 아플 때가 있으면 다시 회복될 때가 있나 보다. 며칠을 아주 무거운 쇠 덩어리 같은 몸을 느끼며 움직임이 미약했다. 스스로를 자책하거나 죄책감을 느낄 여유도 없었다. 아프니까 만사가 귀찮아서 나의 현 상황을 돌아볼 수 없었다. 그냥 그 순간을 살았다. 밤이건 낮이건 잠 오면 자고, 몸이 원하는 대로 계속 눕기를 반복했다. 해가 지고 밤이 오면 ‘매일 이런 날이 반복되는구나. 내일은 또 해가 뜨겠지.’ 스스로 되뇌었다. 생각은 이미 며칠 전부터 정지된 느낌이었다.    

     

오늘은 달랐다. 예민한 건지 내 몸 상태를 민감하게 알아차린다. 아침에 눈을 뜨면 머리와 몸의 무게 정도를 감지한다. 오늘은 어제보다 훨씬 몸이 가벼워졌다. 뭔가 어제보다 더 움직일 수 있는 에너지가 밤사이에 생성된 기분이었다.      


오늘은 두 아이가 개학하는 날이다. 격리 중이라 학교를 갈 수 없었다. 더군다나 최근에 코로나 확진 증가로 개학은 전면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되어 아이들은 화상으로 수업을 들었다. 며칠 동안 많은 시간 미디어 노출을 걱정했지만 아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집에서 할 일을 하고 알아서 온라인 학습을 시작한다. 마음속으로 ‘나보다 낫네.’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은 어느 정도의 긴장과 명랑함이 더불어져서 바로 규칙적인 일상생활모드에 진입하고 있었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나도 컨디션이 나아졌으면 조금이라도 움직여야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게 되었다.     

 

햇살이 좋다. 따뜻한 햇살이 한창인 오후 문을 활짝 열고 대청소를 시작했다. 움직이는 나를 보며 어제보다 진짜 몸이 좋아지긴 했나 보다. 하루 종일 껴안고 있던 핸드폰을 놓고 집안 청소, 세탁기 돌리기, 인형 손빨래 등을 한다. 그리고 며칠 동안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책도 읽는다. 뭔가를 해야지 라는 마음을 먹지 않아도 몸이 회복되니 알아서 몸이 움직여준다. 그래서 생각했다. 컨디션이 안 좋을 때 자신에게 너무 보채거나 해야 한다고 다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컨디션이 좋아지면 알아서 할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제 조금 살 것 같다. 격리도 격리지만 몸이 안 좋은 이중의 고통을 겪으니 무기력증이 심했었다. 지금도 여전히 격리 중이지만 몸이 회복되니 일상의 고정 루틴이 회복되고 있다.


아플 때 아이들과 떨어져서 아이들을 관찰할 기회가 많아졌다. 건강할 때는 너무 밀착해서 아이들을 관리하려는 내 모습을 미처 보지 못했다. 아프니까 저절로 나 혼자 누워서 아이들이 뭐하며 지내는지 자연스럽게 보게 되었다. 아이들은 엄마가 제공하는 최소한의 개입만으로도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고 있었다. 둘이서 때론 다투고 화해하기를 반복하지만 그것도 인간관계의 시작이니 매번 개입하지 않고 지켜보았다. 사실 개입할 힘이 없어서 포기했다. 중재도 힘이 있어야 한다. 나 하나 돌볼 힘이 없으면 자녀들 케어도 할 수 없음을 느낀다. 아이들은 엄마인 내가 아파도 하루를 잘 지내고 있어 감사했다. 어떤 사정이든 자녀들과 엄마가 거리두기를 해야 하는 필수 불가결한 상황이 필요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제 힘이 생기니 자녀들에게 잔소리를 하는 내 모습을 본다. 돌아서 후회한다. 매번 아플 수도 없고, 건강한 상태에서 자녀들에게 힘을 빼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각자의 삶을 응원하는 것이 서로의 관계 유지에 좋은 것임을 깨닫는다.


 어떤 상황 속에서든 배움은 존재한다. 격리와 아픈 상황 속에서 나와 자녀들 관계를 보게 되었다. 내가 아픈 상황일 때 아무것도 할 수도, 아무런 생각도 없는 무력한 상태임을 느꼈다. 자기에게 채찍질하지 않고 보듬어주고 케어해주는 보호자 역할을 누구보다 자기 자신이 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언제든 넘어질 수 있는 존재이다. 내가 다 알고, 완벽하게 다 잘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렇기에 때로는 어설프게 살아도 괜찮다. 실수하면 고치고, 생각이 틀렸다면 재수정하면 된다. 어제의 생각은 다른 생각으로 바뀌었고 몸의 상태도 바뀌었다. 그 순간의 감정과 몸은 영원하지 않다. 계속 변하고 있다. 그러니 너무 순간에 집착하거나 그 감정에 함몰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제 그렇게 힘들었던 감정은 새까맣게 잊고 새로운 감정이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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