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뱃속에서 나와 탯줄을 자르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미지의 세상 속에서 배움을 시작한다. 아기들은 세상을 탐색한다. 기어 다니며 이것저것 만지고 입속에 넣어보기도 한다. 어떤 물건인지 모르고 갖고 놀다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하나씩 알아가게 되고 자신과 세상에 대한 개념을 적립한다. 나이가 어릴수록 어른들의 보호 아래에서 배운다. 어른이 되면 스스로 더 배움의 자리를 찾아갈 수 있다. 누군가는 취업을 하고 이제 배움은 끝났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에게 배움은 평생 성장해 나가는 과정이다. 왕멍이 쓴 「나는 학생이다」이라는 책을 통해서 배움은 죽을 때까지 추구해야 하는 것이며 우리가 배움을 선택하는 한 성장은 끝이 없음을 알려준다.
배움은 모든 것을 포괄한다. 생활은 습관이고, 학습은 생활이다.
왕멍, 『나는 학생이다』, 들녘, 2004년
나에게 배움은 어떤 것일까? 배움은 어떤 분야에 제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직장생활의 필요에 의해서든, 개인적인 관심이든 그 동기가 다를지라도 모두가 배움의 여정이다. “이 나이에 배워서 어디에 써먹으려고?”라고 질문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디에 써먹기 위해서 배우기도 하지만 배움 그 자체가 삶을 확장하고 성장하는 과정이 된다. 목적 자체만을 보고 배움을 영위해 간다면 배움이 한쪽으로 치우칠 수 있다. 어렸을 때 우리는 지식을 부모와 선생님에 의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다. 그 배움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어른들이 하는 말은 모두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청소년기를 거치고 어른이 되어가며 그들의 생각과 다른 내 생각을 발견했다. 그렇다 해도 사회생활에 필요한 것들인 공부, 자격증, 취업 준비 등을 먹고살기 위해 해야 했다. 내가 좋고 싫음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남들도 다 하고 내 옆에 있는 누군가도 하니까 뒤처지지 않기 위해 덩달아 열심히 달렸다. 대학을 졸업하고 여러 직장을 이직하고 현재의 직장까지 도달했다. 결혼을 하고 두 자녀를 낳고 결혼 12년 차에 접어들었다. 지금의 모습은 결과이자 인생 전체에서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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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수록 과거 경험했던 것들과 지식이 고착되어 편견과 고집으로 배움의 기회를 잃어버린다. 안타까운 사실이다. 나만 보더라도 과거의 축적된 경험으로 현재의 상황을 판단하고 결정한다. 그것이 옳고 그름을 떠나 익숙한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상황 속에서도 자동 반응을 한다. 마치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 다인 것처럼 생각하고 말할 때도 있다. 이것이 나 자신을 바라보는 어리석음이다. 그래서 내 삶에 환기가 필요하다. 닫쳐진 마음의 창을 활짝 열고 새로운 공기가 들어오도록 문을 열어야 한다.
마음의 창을 활짝 연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인생은 생각지도 못한 무수히 많은 새로운 자극들이 있고 미지의 뭔가를 배우려는 기회가 찾아온다. 익숙함에 숨는 것이 아니라 미지의 세계에 한발 내디뎌 새로운 자신을 발견해 나가는 것이다. ‘이쯤이면 됐어.’라는 생각이 자칫 자신을 고인 물에 가두고 더 이상 흐르지 않는 정체된 삶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배움은 성과와 성취로만 결부되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는 배움도 좋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 삶을 충만하게 하는 삶의 여정이 배움이다. 자연, 책, 직장생활, 가족관계, 다양한 만남, 스치는 수많은 사람들, 여행, 외국어 등 우리가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가능하다. 배움을 제한한다면 우리는 제한된 삶 속에서 살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모든 상황에서 배울 수 있다는 전제하에 삶을 바라보는 눈이 필요하다.
배움은 어른이 되어가는 시간이다. 하나만 알고 끝나면 그 이상의 것을 알지 못한다. 아이가 태어나 어른이 되기까지 무수히 많은 넘어짐과 상처와 실패를 겪는다. 그럼에도 계속 시도하고 도전해 나가는 것은 어른이 되어가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 시간이 무서워 회피하거나 멈춘다면 정상적인 발달단계의 성장과정을 거칠 수 없다. 때론 심리적으로 병리적인 문제가 발생하여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성인이 되어서도 어른답지 못한 어른을 만날 때가 있다. 그는 몸은 어른이지만 마음속에서는 건강하지 못한 내면 아이가 있어 늘 인간관계 속에서 갈등과 어려움을 겪는다. 말로는 다 큰 성인이라고 하지만 진짜 어른인지는 스스로 자문해봐야 한다. 진정한 어른이 되지 못했을 때 자신과 타인을 힘들게 하고 삶이 꼬인다고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끊임없이 배워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어쩌면 누에가 고치에서 탈피하여 나비가 되어가는 과정일 수도 있다.
배움은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성찰의 시간이다. 새로운 배움을 통해 어제의 나를 돌아보고 현재의 나에게 변화와 도전이라는 과제를 제시한다. 배운다고 다 변화되거나 성장하지 않는다. 새로운 배움 앞에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내가 배운 것을 습득하고 받아들여서 내 것으로 할 것이지 아니면 기존의 삶대로 살 것인지를 말이다. 또한 배운 것을 습득하고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여전히 과거의 익숙한 패턴대로 돌아가고자 하는 몸에 베인 습성이 있어 계속해서 배운 것을 삶에 적용하도록 연습하고 훈련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그 배움이 나의 몸속에 점차 스며들게 된다.
배움에 있어서 회피나 미루기는 강력한 장애물이다. 뭔가를 배우려고 할 때 이러한 심리적 장애물을 만난다면 과거에 익숙하면서도 불편했던 패턴을 점검하고 변화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표면적으로 보면 뭔가를 배우는 게 “뭐가 그리 어려워?”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세상일이란 겉으로만 보고 판단할 일이 아니다. 하나의 결정과 행위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많은 생각과 경험들이 한 개인을 지배하고 있다. 그 두꺼운 갑옷을 벗고 새로운 것에 뛰어드는 것은 용기와 용감함이 필요하다.
배움은 모험이고 여행이다. 새로운 미지의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두렵고 불안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맛보기 전에는 그 맛을 알 수 없다. 그 맛을 알려면 한발 내디뎌야 한다. 쓴맛인지 단맛인지 알기 위해서 일단 새로운 음식을 혀끝에 느끼게 해야 하듯 배움도 시도해봐야 배움의 맛을 알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설레는 배움이 나에게 재미없고 지루한 과정일 수 있다. 그러니 망설이지 말고 기회를 만들어 배움의 장에 나를 내던져 보자.
배움은 호기심이다. 계속적으로 배워나가기 위해 우리 안에 끊임없이 호기심과 질문이 필요하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주위를 관찰하고 살피며 궁금증으로 다가선다면 배움은 또 다른 배움을 낳고 점차 배움이 확장될 것이다. 어린아이들을 보면 금방 이해될 것이다. 어느 날 첫째 아이가 땅바닥에 기어 다니는 개미를 보며 “엄마, 개미들이 줄을 지어 다녀. 여왕개미는 어디 있지?, 저 바위는 하마처럼 생겼어. 저 바위는 언제부터 여기 있었지?” 질문이 많다. 매일 보는 땅바닥의 개미에게도, 산 둘레 길에서 매일 보는 바위에서도 관심이 없던 내가 아이들의 눈을 통해 한 번 더 눈길을 돌리게 된다. 처음부터 당연하지 않았던 것들을 당연하게 생각했던 어른의 눈에서 모든 것을 새롭게 보는 아이들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연습을 하게 된다.
input(입력)만 하고 output(출력)을 하지 않는 배움은 고인물이다. 내가 배운 것을 내 안에 꽁꽁 안고 살기보다 주위와 이웃에게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을 배움을 통한 선한 영향력이라고 본다. 배움은 나로 시작해서 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물줄기가 시냇물에서 강, 바다로 점차 커지고 확대되어야 한다. 내가 배운 것이 무엇인지 파악해서 어떻게 나눌 수 있을지에 고민하고 살펴야 한다.
매일 하루가 배움의 장이다. 사람들은 저 산 넘어 파랑새가 있다고 믿으며 행복을 멀리서 찾으려고 한다. 배움도 뭔가 새롭고 특별한 것을 찾는다. 그러나 늘 배움이 특별하거나 새롭지 않다. 내 발 앞에 일상의 하루에서 배움은 시작된다. 어떻게 시작될까? 그것은 늘 당연하게 느껴지는 상황과 사람, 사물에 대해 새롭게 볼 수 있는 눈이다. 오늘 눈 뜬 이 하루가 정말 당연하게 주어진 하루일까? 매일 두 자녀들과 아침에 등교 전쟁을 치르는 풍경은? 매일 저녁 가족들과 마주 보고 앉아 먹는 저녁식사는? 매일 반복된다고 느끼고 일상을 그냥 아무 의미 없이 스치듯 지나치는 습관은? 스스로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게 된다.
오늘 주어진 하루에 당연한 것은 없다. 그저 나 스스로 당연하게 느낄 뿐이다. 당연한 것이 없다는 전제하에 하루를 보면 어떻게 될까? 어제와 다른 오늘을 살고 있고 이 순간은 다시 오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오늘은 의미 있고 소중하게 보낼 수 있는 보물 상자이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오늘은 일상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라는 설렘과 기대로 하루를 시작해보자. 내가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배움이라는 선물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