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무슨 생각하니?
8.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요?
“넌 대체 뭐가 잘못된 거야?”
답을 찾고 싶다면 질문을 바꿔야 한다.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요?”
흔히 ‘트라우마’하면 아주 충격적인 사건이나 상처를 겪은 사람들이 가진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좀처럼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단어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늘 이 책을 통해 트라우마에 대한 생각이 전환되는 계기를 마련한다. 이 책에 전반적인 내용을 여기서 다 언급할 수 없다. 인상 깊게 읽었던 부분과 그에 따른 나의 생각을 정리해본다.
‘트라우마’는 같은 상황을 겪고도 다 각기 다른 반응이다. 누군가는 트라우마이고 다른 누군가는 인생에서 있었던 과거의 조금 아픈 일이다. 이렇게 본다면 인간은 누구나 살면서 그러한 경험은 몇 번 해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평범하고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모두 상처 하나쯤은 간직하고 사는 존재라고 할까? 트라우마를 생애 어느 시점에서 겪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어느 심리학 이론과 비슷하게 어리면 어릴수록 경험했던 고통과 상처는 인생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크다. 트라우마는 시공간을 초월한다. 과거 겪었던 트라우마에서의 상황 즉 오감으로 느꼈던 것을 현재도 경험하게 되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조절장치로 해리 혹은 각성상태가 나타난다. 외관상 보면 이상한 행동으로 보일 수 있다.
“살면서 많은 사람과 건강한 관계를 누리기 위한 핵심은 생애 첫해에 소수의 몇 명과 안전하고 안정적인 돌봄 관계를 갖는 것입니다. 그러면 충분한 반복을 통해 토대, 즉 관계의 기반 구조를 다질 수 있고, 이 토대를 바탕으로 건강한 관계의 연결을 계속 키워갈 수 있죠.”
브루스 D. 페리, 오프라 윈프리,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요, 정지인, 부·키, p225
트라우마가 있었다 해도 어린 시절 안정되고 안전한 공간에서 자랐다면 치료효과는 크다. 평소 관심을 갖고 있던 단어인 ‘친밀함’과 맥을 같이 한다. 이 책에서는 ‘연결성’이라고 표현한다. 인생에서 아무리 고통스럽고 힘든 상황이라도 생애 초기 ‘이곳은 안전해. 다른 사람들은 나를 해치지 않아.’라는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은 그 어려움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러나 어린 시절 방임, 학대, 폭력에 노출되어 ‘나는 혼자야. 누군가 나를 해칠지도 몰라.’라는 세계관이 있으면 트라우마는 더 큰 곤경에 빠트릴 수 있다. 고통스러웠던 어린 시절 그 자체가 트라우마가 되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소리와 냄새와 이미지들이 우리가 이전에 만들었던 기억들과 연결됩니다. 이 기억이란 특정 사건에 대한 전체적인 회상일 수도 있고, 어떤 느낌이나 기시감, 하나의 인상 같은 기억의 조각일 수도 있어요.
브루스 D. 페리, 오프라 윈프리,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요, 정지인, 부·키, p56
우리는 평소 눈에 보이는 행동으로 그 사람을 판단한다. 지금 눈에 보이는 것은 결과이다. 이 행동을 하기까지 수차례의 과정, 감정, 생각을 알 수 없다. 더 나아가 이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무의식적인 세계 즉 시공간을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간 어린 시절의 사건 혹은 과거 트라우마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눈에 보이는 행동 즉 한 점을 보고 모든 것을 판단하고 평가한다. 어쩌면 인간이 가진 오류이다.
어떤 사람이 그 행동을 하는 것은 이유가 있고 의미가 있다. 내가 가진 경험과 지식으로 섣불리 재단하기 전에 먼저 상대에게 물어야 한다. 그렇다고 다짜고짜 질문해선 안 된다. 제대로 된 대답이 나올 수 있도록 잘 질문해야 한다. 어떻게 질문해야 할까?
잘못된 질문은 잘못된 대답을 낳을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오늘 책에서 말하듯 어떤 문제 상황에서 “넌 대체 뭐가 잘못된 거야?”라는 질책 섞인 질문이 아닌 중립적이고 애정 어린 관심으로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요?”라는 태도로 시작되어야 한다. 당장 질문에 답을 하지 않을 수 있다. 상대는 준비가 안 되었을 수도 있고 현재도 과거의 트라우마 때문에 혼란에 빠져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질문은 ‘나는 당신의 삶에 관심이 있고 당신을 도와주고 싶다.’는 도움의 손길이 될 수 있다.
트라우마는 아프고 고통스럽다. 때론 현재의 일상을 붕괴시킨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트라우마를 열어서 직면하고 전문가와 함께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면 트라우마는 우리 삶을 더 의미 있고 가치 있게 해주는 도구가 될 수 있다.
"현재 순간에 온전히 함께해 주지 못하는 것은 건강한 발달에 해로운 영향을 입힙니다.
소속감을 키우는 것이 중요한 부분이다. ‘나는 중요한 사람이야. 나는 이 집안의 일원이야.’ 주의를 기울여 주어야 합니다. ‘내가 널 보고 있어. 내가 듣고 있어. 내가 바로 여기 너와 함께 있어.’"
브루스 D. 페리, 오프라 윈프리,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요, 정지인, 부·키,p227
이 책을 통해 트라우마 이전에 인생 전반의 삶을 생각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 안정되고 안전한 가정 안에서 사는 것이 자기 조절 능력의 기초가 된다. 여기서 안정되고 안전한 가정을 오해하면 안 된다. 넉넉한 의식주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주양육자가 아기에게 필요한 것을 그 순간에 자각하며 온전히 제공하고 정서적 필요를 채우는 것이다. 그러려면 아이 이전에 부모가 스스로 안정되고 안전한 심리적 안전지대가 있는지 점검해보아야 한다. 이 점검은 각자의 인생 전반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내가 받지 못한 것은 남에게 줄 수 없다. 내가 어떤 사랑을 받았느냐에 따라 그 사랑을 그대로 준다. 따라서 왜곡되고 병리적 사랑을 받았다면 부모가 되어서도 그것이 최선이라 믿고 그대로 대물림할 것이다. 여기서 너무 자책하거나 회의적일 필요는 없다. 저자는 뇌의 가소성을 언급한다. 뇌는 언제든지 변화한다는 것이다. 어떤 변화의 분기점을 마련해서 반복하고 습관을 만든다. 비포장도로에서 포장도로의 길을 만드는 것이다. 과거의 고통과 왜곡된 인지 사고도 건강한 방향을 찾아 치료와 도움을 받으면 언제든지 우리는 건강하고 행복한 삶으로 바뀔 수 있는 희망이 있다.
치유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치료의 순간들을 매일 하루 수십 차례씩 거치면서 트라우마 경험을 복기하고 다시 처리하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브루스 D. 페리, 오프라 윈프리,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요, 정지인, 부·키, p278
과거의 아픔은 지워지지 않는다. 지우개로 지우듯이 깨끗이 지울수록 더 선명해질 수 있다. 오히려 과거의 아픔을 직면하고 들여다봐라. 그리고 인정하자. ‘내가 그때 많이 아팠구나. 고통스러웠구나. 지금의 나는 이전의 내가 아니야.’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과거 때문에 현재를 과거의 악순환으로 살 순 없다.
“누구에게나 안정을 가장 크게 뒤흔드는 일은 자신의 핵심 믿음이 도전받는 것입니다. 심리학자 버지니아 사키르의 말처럼, 불확실함이 주는 괴로움보다는 괴로울 거라는 확실함이 마음을 더 편하게 해 주죠.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우리는 익숙한 것들에 끌립니다.”
브루스 D. 페리, 오프라 윈프리,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요, 정지인, 부·키, p249
그러나 저자의 말처럼 사람들은 과거의 고통이 현재도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음을 인지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사람, 환경이 바뀌었을 뿐 자신이 가진 왜곡된 세계관으로 동일한 패턴을 무한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이 책을 통해 고통의 지혜를 본다. 고통을 방치한 채 고통 속에 허우적거리면 인생의 고통으로 정의된다. 고통을 통해 삶을 되돌아보고 지나온 세월의 점들을 연결해서 나 자신과 직면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다면 고통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다. 고통이 던져주는 의미와 이유를 찾게 되면 그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이 책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연결성’이라고 말하고 싶다. 다른 말로 ‘친밀한 관계’이다. 인생의 어떠한 고통과 트라우마를 만나더라도 우리에게 ‘친밀한 관계’가 있다면 그 고통과 트라우마를 이겨낼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혹시 과거 그러한 친밀한 관계가 없었다면 지금 현재부터 시작하면 된다.
이 책에서 오프라 윈프리는 말한다. ‘단절은 병이다.’ 고립과 단절은 정신적 혹은 육체적 병을 만든다. 가족에서 연결성을 찾을 수 없다면 친구, 이웃, 신앙공동체, 치료공동체, 마을공동체를 통해서 ‘나는 혼자가 아니고, 내가 힘들 때 언제든지 손을 내밀 수 있다.’라는 뿌리를 마련해야 한다.
이전에 오프라 윈프리가 쓴 에세이를 읽은 적이 있었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10대 시절 성폭행을 당하고 마약에 빠졌던 내용이 기억이 난다. 오프라 윈프리는 자신의 고통과 아픔을 꽁꽁 숨기지 않고 세상 밖으로 노출시켰다. 그리고 자기와 같이 고통과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을 돕기 위해 끊임없이 방법을 찾고 길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헨리 나우웬의 책 제목처럼 ‘상처 입은 치유자’가 오프라 윈프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누구나 상처받을 수 있다. 그 상처를 나만 가진 아픔으로 꽁꽁 싸매고 숨지 말고 그 상처와 직면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으면 좋겠다. 더 나아가 나와 같이 상처를 가진 사람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일으켜 세워주고, 안아줄 수 있는 또 다른 상처 입은 치유자들이 이 세상에 많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