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보는 우리 사회: 당신이 생각하는 괴물은 무엇입니까
이 소설의 주인공인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과학 분야에 관심이 있으며 대학의 교수들에게 실력을 인정받게 된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창조주가 되어 생명을 불어넣어 인간을 만들고자 한다. 오랜 기간에 걸쳐 인간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그 결과는 흉측한 외모에 키가 큰, 인간과는 다른 모습을 가진 생명체를 만들어내고 만다. 그러면서 자신이 만든 결과물을 부정하며 괴물로부터 도망친다. 그렇게 혼자 남게 된 괴물은 인간이라는 존재를 발견하고 자신도 그 속에 함께 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인간과 다른 외모로 인해 사람들은 그를 싫어하고 두려워한다. 그렇게 상처를 받고 외로움을 느끼며 창조주인 프랑켄슈타인을 찾아가 그의 주변 사람들을 죽이며 창조주로서 책임을 다하지 않은 프랑켄슈타인에게 복수하고자 한다. 창조주를 죽이지 않고 그의 주변인들에게 복수하며 창조주로부터 달아난다. 그렇게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극심한 고통 속에서 자신의 주변 사람들을 죽인 괴물을 없애기 위해 괴물의 뒤를 쫓게 된다. 그러다가 괴물을 찾지 못한 채 자신마저도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렇게 괴물은 창조주의 마지막을 보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 또한 고통과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고 말한다. 자신을 이렇게 만들어 비참한 삶을 부여한 창조주에게 복수를 했으니 자신은 스스로 숲 속에 들어가 자신의 흔적을 모두 지워버릴 것이라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괴물을 떠올리면 끔찍하고 큰 형체를 가진 모습을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나오는 진짜 괴물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과 모습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는 창조주와 주변 사람들이 괴물일까? 그 차별로 인해 변해버린 한 생명체가 괴물일까? 하는 의문과 함께 책을 읽게 됐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괴물을 만든 사람인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나는 괴물의 시각에서 이 소설을 읽었다. 괴물이라 불리는 이 생명체는 타인과 다른 외모로 인해 차별과 혐오의 시선을 견뎌야 했으며 과학의 발전으로 생겨난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차별과 과학의 발전에 관한 문제로 이 책을 바라보고자 한다.
이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생명은 없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괴물은 생명으로서 존중받지 못하는 존재로 태어나 삶을 살아간다. 단순히 끔찍한 외모 때문에 생명을 가지고 태어났음에도 이름조차 가지지 못해 그저 ‘괴물’로만 불린다. 이 괴물이 처음부터 인간들을 싫어한 것은 아니다. 그를 변하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인간이었다. 처음에는 인간을 좋아하고 존경했다. 하지만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그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자신을 증오하는 인간에 대한 복수심이 생기며 본인 또한 자신의 존재를 괴물이라 여기게 된다. 사람들의 편견과 창조주의 회피가 이 생명체를 괴물로 몰아간 것이다. 단순히 흉측한 외모를 지녔다고 해서 인간은 그를 ‘괴물’이라 부른다. 한 생명을 괴물로 부르고 그를 진정한 괴물로 만든 것은 어쩌면 인간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흉측한 외모라는 선입견이 한 생명체를 괴물이라 지칭하게 된 것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도 그랬던 적이 있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외국인, 장애인 등 나와 다르다고 해서 선입견, 고정관념을 가지고 타인을 바라본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외모, 의견 등 그저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고 비난하는 우리 사회의 부정적인 모습과 닮아있다. 그렇기에 우리의 인식에 변화가 필요하다. 다른 사람과 나의 다름을 인정할 때, 타인에 대한 진정한 존중으로 이어질 수 있다.
생명은 자신의 선택이 아닌 타인의 선택에 의해 탄생된다. 그러니 그 생명을 책임질 의무가 생긴 것이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는 생명을 책임지지 못하는 사례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학대, 방임, 유기 등 존중받지 못한 생명에 대한 문제가 화두 되었다. 생명 경시와 관련된 사건들이 많아지면서 우리 사회의 생명 윤리가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괴물이라는 존재를 통해 현재 사회의 모습을 잘 드러낸 것 같다. 겉모습만으로 한 사람에 대한 가치를 판단하고 자신이 판단하고자 하는 방식으로 상대방을 바라본다. 그러다 보니 자신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외국인, 사회적 약자, 성별 등으로 타인을 판단하고 차별하게 된다. 그렇게 자신의 권리를 존중받지 못하고 차별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과 다를 것이 없다. 어쩌면 괴물은 그저 겉모습만으로 차별받는 사각지대에 놓인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괴물의 존재는 차별받으며 고립된 누군가의 모습을 보여주는 지표다. 비난과 증오의 감정을 가진 우리가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최근 사용하는 신조어에서도 타인을 혐오하는 말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장애인, 성별, 인종에 따라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를 혐오하는 표현들이 우리 사회에 만연하다. 혐오 표현의 피해가 증가하면서 젠더, 세대 간의 갈등으로 확대되고 있는 요즘이다. 타인을 바라보는 고정관념, 혐오의 시선이 그만될 수 있어야 한다. 서로에 대한 공감, 인정, 배려로 전환되어야 할 때이다. 각자의 다양성을 존중할 수 있는 우리 사회가 되어야 한다.
또한 이 소설의 작가 메리 셸리는 과학의 딜레마로 인해 과학발전과 생명존중 사이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이 소설을 통해 전달하고자 한 것 같다.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펼쳐질 비극을 경고하고 있다. 인간을 위해 과학의 발전은 계속되어야 하는 것인지 의문을 남긴다. 괴물이라고 불리는 생명체가 단순히 소설에 나오는 등장인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과학의 발전으로 생명 복제 기술과 인공지능이 발달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책임감 없는 과학의 발전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지, 그 책임의 무게가 어떠한지 이야기한다.
최근, 유전자 재조합 기술로 우수한 유전자만을 조합해서 인간을 탄생시키고자 하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나는 이 기사를 보면서 <프랑켄슈타인>이 바로 생각났다. 마치 프랑켄슈타인이 생명체를 만드는 모습을 현실화한 것 같았다. 인간의 영역에서 벗어난 인간 창조라는 문제를 인간이 개입한다는 것이 과연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렇게 탄생한 생명체를 ‘인간’ 그 자체로 인정할 수 있나? 그리고 ‘우수한 유전자’라는 것이 ‘진리’인가? 우수하지 못한, 평범한 유전자는 버림받는 것이 마땅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버려도 괜찮은 생명은 없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며 그렇기에 존중받아야 한다. 인간의 무자비한 욕심으로 만들어낸 생명, 그리고 만들어지는 데 사용되는 ‘우수한 유전자’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게 한다.
비극적 결말로 끝나는 책의 결말이 어쩌면 현재 우리 사회를 예견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사회에 대한 경고라고도 볼 수 있다. 이는 많은 SF 영화에서도 다루는 주제이며 현재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인 주제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모두가 생각해 봐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것,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야 할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은 존재다. 그렇기에 인간이 만든 과학 기술 또한 완벽할 수 없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많은 분야에 이용되고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냈지만 어두운 면도 존재한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생명존중과 관련된 윤리적인 문제들이 생겨날 것이다. 점차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 과정 속에서 과학 기술에 대한 우려와 고민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우리의 책임과 결정이 더 강조될 것이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가? 자연의 순리를 따를 것인가, 인간을 위한 발전에 힘을 보탤 것인가.
내가 괴물이었던 건지, 괴물을 만들었던 것은 아닐지 많은 고민을 하게 하는 책이었다. 나의 책임을 회피하고 방치하는 것은 누군가를 해할 수 있는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가만히 있으면 반이라도 간다’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나의 책임을 다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 그것은 한 생명을, 한 인권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자연의 순리를 따르며 나에게 주어진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내가 되고 싶다. 또한 차별로 이어지는 우리의 인식에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 이러한 차별이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이며 누구의 잘못이 큰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타인에 대한 혐오를 멈춰야 한다. 그러면서 서로를 혐오하고 차별하는 시선에 대한 정확한 교육과 처벌이 이루어져야 한다. 서로 배려하며 각자 다른 나이, 외모, 성별 등을 가진 우리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사회가 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