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죽음

by 범고래


오늘 아침에 읽은 사건 기사다

20대 젊은 남자의 시신이 원룸텔 옥상에서 발견되었다. 그 남자가 살던 원룸을 살펴보던 담당 공무원은 적막할 것 같던 원룸 구석에서 조그만 말티푸 강아지 2마리가 멍멍거리며 반갑게 뛰쳐나왔다고 한다. 기다리던 주인이 왔다고 생각한 반가움이었을 거다. 아들과 소식이 끊긴 지 일 년 반이 지났다는 친모는 갑자기 삶을 저버린 아들을 원망하며 남겨진 강아지가 형편상 다른 곳에 입양되기를 희망했다고...

날마다 세상에는 슬프고 고통스러운 사건사고가 가득하다. 예민한 촉수로 민감하게 세상을 감지하며 사는 민달팽이 같은 사람인 나에게 세상은 당연히 너무 무섭고 불안하다.
쉽게 기분 나빠지는 법.
텔레비전을 뉴스채널에 맞춰놓고 조금만 지나면 슬슬 스트레스 호르몬이 피어오르며 가슴이 답답해지고 한숨이 나온다.
오래 켜두고 볼 수가 없다.
그런 나인데 덜컥하고 귀에 걸려버린 27살 청년의 죽음과 남겨진 강아지 두 마리의 이야기.

아아...
그냥 가슴을 관통하는 슬픔이 칼날처럼 나를 베어버린다.
왜 그럴까.
강아지를 좋아했던, 한때 그도 찬란한 꿈을 꾸었을 아름다운 청년의 고민과 번뇌가, 그 좁은 방의 공기와 그 위를 떠돌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 너무 생생하게 다가왔다.

알 것만 같은 그의 마음과 생각들.
언젠가 나에게도 그런 절망과 무기력의 이불이 덮여있었기에 그냥 그 방의 온기와 냄새가 생생하게 다가왔다고 할까.
고통은 각자의 몫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누군가의 몸 안에서 느껴지는 슬픔은 개인적인 것이겠지만 우리는 같은 인간이기에 인간의 안테나를 가진 이들 역시 같이 공명하며 진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27살.
살 수만 있다면 누군가는 억만금을 주고라도 사고 싶어 할 풋풋하고 아름다운 나이잖아.
꼭 그렇게 버렸어야만 했니
너를 잃고 슬퍼할 모든 이들을 위해서 그런 게 아니야
너의 삶이 너무 아깝고 안타까워서 그래
조금만 힘을 내 눈을 돌리고 생각을 바꾸면 전에 네가 미처 보지 못한 생기와 작은 희망의 싹이 너의 황폐할 것만 같은 삶에 자라고 있음을 알 수 있었을 텐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 너무 성급했어
너 때문에 내가 너무 슬퍼.
너의 선택이 나를 이렇게 슬프게 할 줄 너는 몰랐잖아.
그 봐.
넌 세상을 다 안다고 판단하고 그런 선택을 내렸겠지만 모르는 것 투성이잖아.
네 옆에 없어도, 혹은 살아 있는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할지라도 많은 사람이 너의 삶에 연결되어 있고 너의 고통을 같이 느낀다는 걸 잊지 말았어야지.

얼마 동안 슬플지 나도 잘 모르겠어
지금은 네가 죽은 건지 내가 죽은 건지 헷갈리거든.
내가 불쌍한지 네가 불쌍한지 모르겠다고.
강아지는 안락사 없는 보호소에 보내져 입양을 시킨다고 하니 걱정하지 마
아니 이런 말도 해주지 말걸. 실컷 걱정하라고.
그 예쁜 애들을 두고 어떻게 그랬어.
바보야.

가끔은 나도 이 부조리하고 좌절이 출렁거리는 세상이 버겁다. 사람도 무섭고 그 무서운 사람들이 만든 세상도 무섭다. 거기에 희생되는 약하고 힘없는 존재들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하고 무기력한 나의 존재도 손 안의 모래처럼 허무하다.
그렇지만 나를 저버리지 않는 힘만은 잃고 싶지 않다.
주어진 삶이 가득 찰 때까지 생기를 잃고 싶지 않다.

오늘은 조금 힘겨운 날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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