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장마가 가장 아름다운 10월을 반 이상 쓸어버리고 잠시 숨을 고르는 오늘.
거리는 화창한 햇살에 눈이 부시고 어딘지 모를 차분함이 도사리고 있다. 훌쩍 물러난 하늘이 세상을 한층 넓게 만들고 그 아래 부드러운 공기가 내 뺨을 살금살금 스치고 있다.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가을은 자신의 얼굴을 확실히 보이며 해사하게 미소 짓고 나는 '그래, 바로 이거지'하며 깊은 숨을 들이마신다.
계절의 향과 빛의 변화를 느끼고 그 문을 넘어 들어가는 절차는 상당히 예민한 감각을 필요로 한다. 온몸의 세포를 활짝 열고 땅의 기운을 감지하며 하늘을 살피는 인디언만큼의 세심한 배려와 관심이 있어야 한다.
복잡한 도시 속 골치 아픈 세상을 살다 보면 땅과 숲과 하늘을 느끼고 살펴볼 여유가 없다. 잊고 살다 보면 없어도 될 것 같지만 사람을 짓누르는 콘크리트의 무게 아래 병이 난 어느 날 우리는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자연 속으로 파고들며 자연의 기운으로 치유를 받고자 하게 된다.
예민함을 타고난 사람은 유난히 도시의 소음과 복닥거림이 힘들고 쉽게 병이 나는 것 같다. 집약적인 도시의 편리성을 포기하지 못하고 이런저런 이유로(직장, 교육, 부동산 가치 등) 자연을 떠나서 살아야 하는 인간은 태어난 고향을 부정하고 순리를 거스르며 사는 것이다. 정말 부유한 사람만, 돈 같은 거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사람만 자기가 살고 싶은 곳에서 산다. 필요한 모든 것을 다 갖춘 곳을 찾아 조용히 평화롭게 자신에 맞는 집을 찾아서 건강하게 살아간다.
벌집 같은 아파트를 포기하지 못하는 많은 이유를 달고 나와 잘 맞지 않는 이웃을 참고 살던 어느 날 만일 나에게 남은 삶이 얼마 되지 않는다면 어디서 살고 싶을까 하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랬더니 답이 너무나 명확했고 나는 즉시 실행에 옮겼다. 큰돈이 드는 결정이라 평소의 나라면 투자가치를 따지고 계산기를 두드리며 실속 없는 선택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나는 너무 안전하고 넓은 길로만 선택하며 살아왔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나간 길로 이정표를 따라 발자국을 따라. 그것이 나를 안전하게 지켜주었는가 자유롭게 해 주었는가 생각해 보면 잘 모르겠다. 사실 무섭고 두려워서 하지 못한 많은 선택들이 있었고 그런 것들은 남은 삶을 딸린 가족들을 생각하며 스스로를 억압해 왔던 선택들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할 만큼 했고 더 늦기 전에 나를 위한 시간들도 갖고 싶었다. 한번 내린 결정은 결과에 상관없이 후회하지 않고 잘 받아들이는 나의 습성으로 나는 흡족하게 잘 살고 있다.
처음 살아보는 집의 형태라 좌충우돌 당황스러운 일들도 많았지만 이제는 적응을 해서 그런지 어떤 상황에도 과잉반응은 잘 안 한다.
개미도 거미도 개구리도 심지어 뱀도(?)... 산을 곁에 두고 있으니 온갖 새와 다람쥐가 부산스럽게 숲을 오르내리고 밤에는 고라니의 음정이 맞지 않는 괴상한 노랫소리도 듣는다.
마당을 두드리는 세찬 비가 내릴 때 훅하고 올라오는 땅 내음과 아침 안갯속의 뾰족 지붕들과 나무들이 뭐 이런 세상이 다 있지? 하는 비현실적인 느낌을 불러일으켜 마음이 떨리고 아름다움이 차오른다.
분명 불편함이 있지만 나를 위한 치유와 쉼으로 다가온 자연 속 집이다. 고요하고 적막한 속에 자연이 내는 소리로 시끄럽고 이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점점 그 자연 속 일원이 되어 사이좋게 살아가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