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
며칠 동안의 무리한 일감이 준 것은 약간의 피로감 이상의 통제되지 않은 통증이었다. 이 정도 했을 때 이만큼 무리가 갈 것 같고 어느 정도 힘들겠지 하는 추측은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분명 내 것이지만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내 것이라고 분명히 주장할 수 있는 몸과 마음이지만 내 생각과 의지에 상관없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처럼 된 지가 한참이다.
어쩌면 나는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기에 필요한 최소한의 건강과 에너지를 충분히 갖고 태어나지 못한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
무얼 하든 정신력과 의지에 훨씬 못 미치는 건강 상태가 항상 문제를 일으키고 부실한 배터리를 장착하고 태어난 나 자신을 원망하게 된다.
건강은 유전이라는데 생각해 보니 부모님은 양쪽 모두 이런저런 질병에 시달리다 결국 암으로 돌아가셨다. 이런 내 태생과 생활습관 식습관 등이 모두 합해져 지금의 휘청거리는 마리오네트 같은 내 모습이 된 거겠지.
너무 아파서 잠 못 드는 이 밤.
밤은 새벽으로 이어지고 초침 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하고 곤한 새벽에 나는 무력하게 누워 죽음을 기다리듯 아침을 기다리고 있다.
책을 읽을 수도 음악을 들을 수도 없는, 모든 것을 갉아먹으며 야금야금 내 머릿속으로 기어드는 통증만이 진실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는 이토록이나 다르게 흐르는 시간의 속성을 설명하는 게 아닐까.
물리적인 시간의 길이에 대한 이론이지만 상대적으로 느껴지는 시간의 감정적이고 감각적인 길이 또한 설명된다고 생각한다.
매일 지나온 밤과 새벽의 시간들은 잠깐의 멈춤이었고 쉼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의 시간들은 너무나 길고 더디게 흐르는 통에 그만 녹초가 되어버린다.
밤을 밝히는 촛불만 같다.
또랑또랑한 정신에 열에 들뜬 붉은 눈, 통증에 몸을 뒤척이며 긴 밤을 태우는.
고통은 세상 모든 것을 무력하게 만들어 버린다.
평소에 좋아하던 모든 것들이 고통 앞에선 무릎을 꿇고 패배를 한다.
맛있는 음식도, 좋아하던 취미도, 돈도 아무런 힘이 없다.
고통은 끊임없이 온 에너지를 빨아들이며 거기에만 집중하게 하고 결코 한눈파는 걸 용납하지 않는 블랙홀이다. 고통과 싸우는 사람은 목숨을 걸고 제로섬 게임을 해야 한다.
건강을 잃었을 때 그리고 만일 더 이상 예전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을 때 우리는 무엇을 바라고 무엇에 기대어 살 수 있을까. 죽음을 앞두고 미래도 없이 살아가야 하는 상황은 예측이 안된다. 그 속에 들어가야만 알 수 있는 극단적인 상황이다. 그런 속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낄지 어떻게 받아들일지 아무도 미리 알 수 없다.
밤은 점점 자라나고 있다.
통증이 고통으로 고통이 죽음으로 진화하는 길고 긴 밤에 생각의 숲이 무성해진다.
사람은 왜 죽음을 두려워할까.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으로의 전환 때문일까 죽는 순간의 고통이 두려운 걸까 아니면 살아있는 동안 믿어 온 사후세계의 심판 때문인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 두려운 건가
결국 모르는 미지의 세계와 눈앞 현실의 균형추가 기울어질 때 우리의 생각도 기울어질 것이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고 좋고 나쁜 모든 것들이 뒤섞여 세상 속으로 쏟아져 들어온 그날 이후 우리에게는 죽음만큼이나 삶도 미지수가 되었다.
영원 같은 힘든 밤이 지나가고 있다. 이 밤은 고통도 죽음도 각자의 몫이라는 외로운 답을 주고 비로소 물러나고 있다.
이미 알고는 있지만 새삼 깨닫게 되면 마음이 허허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