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빛을 깜빡이며 비행기가 밤하늘을 가르고 지나간다. 누워서 창밖으로 바라보니 넓은 바다 위를 바쁘게 날아가는 반딧불이 같다.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세상이 잠들어 있을 이 시간에 어딜 가는 걸까. 이렇게 한밤중에 출발해서 긴 밤을 모르는 사람들과 기내에서 함께 잠을 자고 눈을 뜨면 낯선 이국땅에 도착해 있겠지.
어릴 때 어두운 마루에 누워 바라보던 비행기가 생각난다.
그때도 비행기는 깜빡이는 불을 코에 달고 날아갔었는데... 그때 본 비행기는 저 멀리 보이는 별만큼이나 추상적이고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세상 너머의 무엇이었던 것 같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며 그 둘레를 떠나본 적도 없는 어릴 적. 비행기의 불빛은 가슴 깊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슬픔을 가르고 지나갔다.
아무런 희망도 없는 초라한 형편 속에서도 꿈은 자식처럼 자라고 시간이 흐르면 떼를 쓰기 시작한다. 내 안에서 주먹으로 치고 쿵꽝거리며 밖으로 나오려는 꿈을 억누르는 건 자식의 목을 조르는 것만큼이나 힘들고 아픈 일이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는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영화에서나 보았을 법한 세상을 떠올리게 했고 성공을 상징했다. 그런 것들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는 어린 나이임에도 구정물 같은 현실에서 나를 끌어올려줄 동아줄을 간절히 원했던 것 같다.
전래동화 속 오누이는 호랑이를 피해 동아줄을 타고 올라가 해와 달이 되었다고 했는데 그것은 무엇이 되었다는 뜻일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성공을 했다는 건가 아니면 죽어서 해와 달이 되었다는 건가 의미가 애매하다.
어릴 적 결핍은 나이보다 사람을 빨리 성숙하게 해 어른스럽다는 말을 듣게 만든다. 결핍이 베어버린 어린 시절의 순수함과 아이를 위한 여백은 꽃눈과 같아 꽃눈이 떨어진 자리에서는 꽃이 피지 못하고 잎이 나온다.
꽃을 생략하고 나무가 되어버린 사람이 된다.
아름답고 행복했을 유년의 시절이 도려내어진 채 살아가는 사람은 무엇을 붙들고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다. 외롭고 힘들 때 꺼내보며 힘을 얻을 추억이 없어 아무리 넘겨도 텅 빈 기억의 책장만 맥없이 팔랑팔랑 넘어간다.
그리워할 기억들은 없어도 가슴속 깊이 꼬깃꼬깃 고통스럽던 시간들이 접혀있다. 바래고 해어졌어도 꺼내보면 복잡하고 힘든 감정들을 불러일으키고 도저히 씹어 삼킬 수 없는 질긴 기억들이다.
영화에서 처럼 대면하고 화해하고 용서하고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면 그 모든 것들이 눈처럼 녹아버릴까.
온 몸속 세포 하나하나에 타투처럼 새겨진 불치병이다. 어쩌면 아마도 나를 용서하지 못하는 것일지도.
나의 탄생과 존재를 용서하지 못할 때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용서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제는 더 이상 비행기가 추상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이국적인 나라들을 다녀봤고 그러느라 그 안에서 밤도 새워봤고 먼 우주만큼이나 불가능해 보였던 일들을 현실에서 경험해 보며 비행기는 이제 구체적이고 즐거운 것이 되었다.
할 수 없을 때는 동경이고 아픔이었던 것들이 할 수 있으니 설렘과 기대가 되었다.
어린 눈에 열망으로 고팠던 많은 꿈들을 이렇게 이룰 수 있어서 행복하고 감사하다.
그래서 난 과거 그 어느 순간도 그립지 않고 지금이 제일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