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자 핀 길고양이

길고양이와의 운명적 동거

by 범고래



아주 영특한 녀석이다.
자존심 강하고 당당하며 자신의 뜻을 절대 굽히지 않는다. 사람이라면 정말 재수 없다고 할 텐데 사람이 아니니 참고 시중을 들 수밖에 없다.
발레리나처럼 우아하고 포식자처럼 눈매가 매섭다.

순돌이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났다
붐비는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옆구리가 깊게 찢어진 채 사람들에게 몸을 부비며 친한 척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작은 새끼고양이는
무슨 영문으로 어미를 잃고 심하게 다친 채
낯선 사람들에게 관심을 구걸하고 있었던 걸까.

숨길 수 없는 길고양이 특유의 자유분방한 얼룩무늬를 두르고 마침 버스를 타려고 기다리던 딸에게도 애교를 부리며 다가와 몸을 부볐다고 한다.
딸은 겁 없이 사람을 믿고 따르는 다친 고양이가 걱정이 되어 근처 동물병원으로 무작정 데려갔다고 한다.

찢어진 상처를 봉합하고 약을 지어 먹이고 하느라 큰돈이 들었고 당연히 돈과 친하지 않은 가난한 학생 딸은 주변 지인들에게 급히 돈을 걷어 병원비를 내고 집으로 싸안고 왔단다.

우선 건강을 회복할 때까지만 돌봐주고 천천히 알아봐 입양을 시키려 생각을 했다나.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족보 없는 길고양이를 입양하겠다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고
사랑스러운 새끼고양이는 인간보다는 동물에 대해 강한 인류애를 가지고 있던 딸의 마음을 담뿍 홀려서
결코 헤어질 수 없게 족쇄를 채워 버렸다.

이렇게 아무 상의도 없이 자기 멋대로 고양이를 집에 들인 딸로 인해 집에는 크고 작은 문제들이 발생했다.



일단은 10년 가까이 이미 온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던 터줏대감 강아지가 용납을 하지 못하여
눈에 띄기만 하면 맹렬한 기세로 쫓아가 여우사냥 놀이를 시작했다.
평소에도 성격이 썩 너그럽지 못해서 산책만 나가도 갑자기 깡패로 변하던 강아지였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소심한 딸은 밤잠을 못 이루고 궁리를 한 끝에 팔을 걷어 부치고 합사 계획을 세웠다.
칸막이로 분리를 하고 멀리서 서로를 조금씩만 느끼도록 하기를 한 달.
조금 가까이 그러나 싸우지 않게 돌보기를 두 달.
조금씩 조금씩 친근감을 쌓게 하고 간식을 나누며 좋은 추억도 만들어 주고 하며 노력과 정성을 들였다.


그렇게 으르렁대며 죄수처럼 창살 사이로 친목을 다지기를 얼마였을까.
다섯 달이 넘어가면서 둘은 결국 칸막이 없이 한 공간에서도 그럭저럭 서로를 묵인하게 되었다.
날마다 사냥놀이를 즐기던 강아지는 계속된 혼꾸녕과 훈계에 점점 기가 죽어갔다.(불쌍한 우리 달콩이 ㅠㅜ)

순전히 일방적인 차별과 편애로 이루어진 동거가 편하진 않았겠지만 달콩이는 이제는 눈을 흘기면서도 할 수없이 그 상황을 받아들였고 난 그 과정을 지켜보며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불가능할 거라고 믿을 만큼 너무나 어려운 상황들을 지켜봐 왔기 때문이다.
평소엔 그 어떤 지구력도 인내심도 보여주지 않던( 최소한 엄마인 나에게는) 딸이 이루어 낸 성과는 정말 놀라웠다.(다른 일도 그렇게 좀 하면 좋을 텐데...)

그 후 몇 년의 세월이 지나고
지금 현재.
이 둘은 이제 서로 엉덩이를 맞대고 낮잠을 자거나 집에 홀로 남겨져 있을 때면 서로를 의지하며 분리불안을 이겨내곤 한다.

뚱뚱한 얼룩 길고양이와 그 절반 크기 하얀 강아지의 운명적인 동거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이 되었던 것이다.

지나가다 의도적인 발 펀치를 얻어맞아도 먹던 밥을 빼앗겨도 이제는 어쩌지 못하고 그저 억울한 눈빛으로 올려다보며
' 순돌이 좀 혼내주세요' 한다.
달콩이는 과거 여우사냥을 잊었나 보다.
이제는 투지를 잃고 그저 무력하게 서열 정리를 제대로 해 달라고, 자기에게 힘을 실어 달라고 애절하게 호소할 뿐이다.

'저 놈의 새끼, 노인 공경할 줄을 몰라.'
나는 늙고 힘없는 강아지를 위로하며 갈수록 덩치가 커지는 대책 없는 고양이를 한 번 흘겨봐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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