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막 속 영화배우들이 떠난 자리

by 범고래




잠이 오지 않는 밤이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빛은 청회색에 진한 분홍이 섞이고 하얀 구름이 드리워져 화려한 느낌이 든다. 별도 없는 어두운 밤하늘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이런 하늘빛이면 내일 어떤 날씨가 되는 걸까... 궁금하다.

어둡고 몽환적인 하늘 저 멀리로 아스라이 공기를 가르고 달리는 고속도로 자동차들의 소음이 길게... 이어진다.
밤에는 모든 것들이 조용히 숨죽이고 땅으로 내려앉는다.

조용한 음악을 찾아 가만히 틀어놓고 눈을 감는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으레 하는 일.
오늘 밤은 50년대 60년대에 유행했던 감미로운 재즈음악이다.

옛 노래들... 은 왜 그럴까.
슬프고 비극적인 시절을 살아내기가 힘들어서였을까. 팝송도 샹송도 대중가요도 모두 결을 따라 섞여있는 애절함이 있다.
듣고 있으면 처음엔 감미롭고 아름답다가 점점 허무해지고 결국은 슬퍼진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보다 더 많은 스펙트럼을 가진 감정들이 물속의 해초처럼 너울거리다가 물기를 머금고 슬픔 비슷한 것들이 솟아 대롱거린다.
마음속 깊이 진한 슬픔이 피처럼 베어 나지만 역설적으로 지독하게 아름다운 감정이다.
가만히 듣고 있으면 그냥 죽고만 싶어지는 쓸쓸하고 메마른 어떤 것들의 덧없음이 느껴진다.

어릴 때 일이 생각난다.

영화를 흔히 볼 수 없던 시절 우리는 주말이 되기를 기다렸다. 텔레비전에서는 주말마다 주말의 명화니 토요명화, 명화극장 같은 영화 프로를 상영했고 우리는 그때마다 빼놓지 않고 영화를 보곤 했다.
그 시절 보고 자랐던 영화는 나에게 꿈을 꾸게 했고 눈을 빛나게 했으며 지금의 나를 이루는 뼈대가 되었다.

일요일 밤 명화극장이 끝나고 나면 비가 오는 까맣고 텅 빈 화면만 남았다. 꿈같은 시간이 끝나버리고 곧 이어질 월요일의 불편한 현실이 자각이 되는, 그리고 그 위로 깔리던 복잡한 감정이 생각난다.
그 마음에 피어나던 아리고 아린 감정의 줄기를 따라가 보면 거기엔 허무하고 덧없는 우울이 있었다. 주말의 마지막 끝자락을 물들이던 우울은 왜 그리도 깊었던지... 어디서 온 건지...

그때 그 영화 속 내가 사랑했던 배우들은 이제는 죽고 없다. 꿈을 주고 사랑을 주며 곁에 머물던 그들의 죽음은 이상하게도 가까운 지인의 죽음처럼 슬프고 충격적이었다.
내 마음속에 떠 있던 별들이 하나 둘 꺼지며 꿈도 꺼지는 그런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그들은 나의 어린 시절을 함께 했고 내 안에 항상 존재했던 지인들이었다.

언제나 항상 그 자리에 있어줄 거라고 믿어왔던 사람들의 떠남은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 않고 항상 새롭게 아프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사람들이 사라지면 거기에 걸쳐있던 나의 청춘도 따라 사라지고 시들어감을 느낀다.
많은 의문과 회의를 품고 사는 삶이지만 모든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그렇듯 애틋하고 허무하다.
그리고 우리는 영화든 음악이든 모든 예술 속 삶의 구석구석에 버무려진 비극에 공명하며 애도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 깊어간다.
괜히 퍼렇게 멍든 마음이 돌아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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