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반이다.
진한 어둠을 헤치고 양 날개에 깜빡이는 불을 단 비행기 한 대가 하늘을 가로지른다.
마음을 짓누르는 혼란스러운 악몽에서 막 깨어난 내게 그 모습이 어쩐지 안도감을 준다.
3일 연속이다.
내용은 다르지만 궁지에 몰려서 쩔쩔 매는, 한계상황에 던져져 허우적거리는 나. 뒤엉킨 꿈들.
명치끝엔 꿈의 메아리가 경계를 넘어와 잔상처럼 남아있다. 여전히 무섭고 얼얼한 괴로움이 심장을 두근거리게 한다.
침이 마르고 숨이 가쁜 나는 꿈과 의식의 경계선에서 차갑고 어두운 겨울 새벽을 나그네처럼 걸어간다.
짙은 어둠 속을 헤매는 나그네는 휘몰아치는 바람을 맞고 한없이 걸어가지만 정작 갈 곳도 쉴 곳도 없다. 아무런 목적도 의미도 없이 텅 빈 눈으로 끝없이 어딘가로 가야만 하는 그림자 사람.
몽환적이지만 나의 삶을 많이 닮았다.
가끔은 삶이 밤과 낮으로 이루어진 이중의 구조인 것만 같다.
진짜 현실은 밤에 잠이 들면 시작되는 꿈의 세계이고 낮은 밤의 현실을 반영하는 꿈이 아닐까. 낮과 밤은 서로가 진정한 삶의 실체라고 주장하며 끝없이 뱅글뱅글 돌아간다. 그리고 내 의식이 가 있는 한 그곳은 언제나 나에게 실존적인 장소가 된다.
몇 살이었을까. 아홉 살 열 살쯤.
밤마다 눈을 감으면 하얀 소복을 입고 머리에 쪽을 진 젊은 여자가 푸르스름한 얼굴로 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눈에 살기 어린 귀기가 너무 무서워 잠을 안 자려고 애를 쓰다가 잠이 들면 여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내 옆에 앉아 집어삼킬 듯 노려보았다.
그 느낌이 너무 생생해 등골에서 송골송골 땀이 났고 나는 부들부들 떨면서 흠뻑 젖은 채 꿈에서 깨어났다. 똑같은 꿈속 똑같은 여자.
도시에 살다 가기 싫은 시골집으로 억지로 이사를 가고 난 후 난 꽤 오랫동안 열병에 시달렸다. 어리지만 감정도 의견도 무시당하는 삶이 감당하기 힘들었는지 곧잘 아팠고 한때 엄마는 내가 죽으리라 생각하고 밖에 내놓으려 했다고 말했다.
글쎄... 죽을 때가 되면 밖에 내놓는 건지. 어쨌거나 난 밖으로 내쳐지지 않을 만큼 회복되어 지금까지 살고 있다.
이렇게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꿈속 여자의 얼굴이 생각날 듯하다. 무슨 이유로 그렇게 생생히 내 꿈속에 나타났을까. 아프고 허약할 때면 악몽을 꾸고 가위에 눌리고 했던 것 같기도 하다.
같은 꿈을 반복적으로 꾸는 일은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지금도 가끔 벌어지곤 하는 일이다. 누군가에게 우연히 그런 얘기를 하면 신기하게 생각하기도 해서 흔히들 그러지는 않는구나 하고 짐작한다.
사실 불면증이 있는 나에게 잠이 힘들고 부담스러운 만큼 꿈이 그리 친절할까 하고 생각되기는 한다. 특히 등만 닿으면 금세 잠이 드는 그런 사람이 곁에 있으면 밤은 더욱 어려운 문제가 되기도 한다. 자려고 누워 이불을 덮을 때면 이미 악몽은 이불속을 차지하고 웅크려 있다.
어릴 때는 유난히 악몽을 많이 꾸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악몽들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내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여갔고 나는 밤의 독성이 무척 두려웠다.
꿈은 살면서 쌓인 기억들을 뇌가 정리하고 저장하는 과정에서 쓸모없는 기억이 해체되는 과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꿈은 종종 산타 할아버지처럼 누군가에게 행운과 선물을 주기도 하던데 내게 그런 일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랬더라면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듯 밤의 행운을 기다렸을까.
그래도 지난번에는 좋은 꿈을 꾸기도 했다. 바쁘실 텐데 연달아 나를 만나러 꿈속으로 방문해 주신 대기업 회장님들께 감사드린다. 딱히 좋은 일은 없었지만 깨고 난 후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언제 내가 그런 분들을 대면하겠는가.
예로부터 사람들은 꿈을 신비롭게 생각하고 꿈의 예지력을 믿고 해몽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꿈속에선 당연하고 정상적이었던 일들이 깨고 나서 생각하면 어찌나 황당한지.
악몽 주간이다.
내리 연속 악몽을 꾸는 날에는 낮이 유난히 밝고 아름답다. 생살이 드러난 듯 예민해지고 더욱 외로워진다. 무서운 꿈을 털어놓고 싶은 누군가가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