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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에 바람도 쐬어주고 햇별도 쪼여 주었으면

<유진과 유진>을 읽고

by 책 쓰는 여우

피해자의 잘못은 절대 아니다

"그러니까 그 애가 잘못한 게 아니지? 잘못은 그놈이 한 거지?"
작은 유진이는 간신히 짜내는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거야 당연한 거지. 야, 어떤 사람이 걸어가고 있는데 미친개가 달려들어 물었다고 해 봐. 그럼 그 개 물린 사람 잘못이냐? 미친개 잘못이지."
이젠 미친개한테 물려서 생긴 흉터마저 희미해졌는데도 그 말에 속이 후련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피해자 중에서 "그 사건을 겪지 않을 방법은 없었을까?" 생각하다가 그 생각의 회로가 "나 때문에 이 일이 생긴 거야. 내 잘못이야"라고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고 어디서 읽은 적 있다. '피프티 피플'에서도 엄마가 오래된 칼을 굳이 버리지 않고 뒀는데 나쁜 사람이 그 칼로 자기 딸을 찌르니 자기가 칼을 버리지 않은 잘못이라 생각했다. 절대 피해자 잘못이 아니다



오해
큰 유진이가 건우와 데이트하러 가는데 친구 한 명을 데려올 수 있었다. 그래서 소라를 불렀는데 소라가 평소보다 너무 단정하고 예쁘게 입어서 건우를 자기가 가로채려는 걸로 오해했다. 그런데 소라는 "야, 친구를 보면 그 애를 알 수 있다는 격언 때문에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아냐? 이 웃들 우리 보라한테 알랑방 커 뀌어 가지고 간신히 얻어 입었다. 뭐 묻혀 가면 내가 책임지기로 하고 빌려 입은 거야. 이 정도면 너
를 창피하게 만들지는 않겠지?'

소라의 말에 유진은 감동해서 눈물이 나올 뻔했다.

나도 친구의 행동을 오해한 적이 있었나, 별것도 아닌 걸 과대해석한 적이 있었다 돌아보게 된다.



가끔은 그냥 알아줬으면
할머니에게 부탁하면서도 내가 정말 그러길 바라는 것인지 잘 알 수 없었다. 나는 엄마가 내가 말해서가 아니라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그냥 알아주기를 바랐던 것 같다. 일부러 못 본 건 아니지만 떨어진 성적으로 엄마에게 실마리를 주고 싶었는 지도 모른다. 엄마가 그걸 계기로 내 마음에 들어와 주길 바랐던 건 아니었을까. 담배 피우는 나를 보아주고, 학원대신 춤 배우러 다닐 계획을 세우고 있는 날 보아주고, 그리고 잘려 나갔던 기억들을 퍼즐조각인 양 맞추기 보고 있는 나를 보아주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엄마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

이 작가분께서 진짜 솔직하게 쓰셨다.

특히 "엄마가 그걸 계기로 내 마음에 들어와 주길 바랐던 건 아니었을까"라는 부분이 은근히 공감됐다. 사실 어른들은 우리가 직접 말해야만 이해한다고 생각하는데, 가끔은 그냥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고 눈치채 줬으면 좋을 때도 있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이 제일 씁쓸했다. "하지만 엄마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

남들은 이해 못 할지도 모르지만 난 너무나 공감이 간 문장
점심때까지 춤을 추다 근처의 분식집에서 허기를 면한 뒤 학원이 끝나는 시간에 맞추기 위해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 우선 빨래방에 가서 운동복을 빨고, 오락실에 가서 펌프도 하고,
만화방에 가서 만화도 보고, 윈도쇼평을 하기도 한다. 그동안 늘 혼자였던 것처럼 놀 때도 나는 혼자다. 혼자서 스티커 사진을 찍은 적도 있었다. 내게는 거의가 처음이었으므로 모든 게 다 신기하고 재미있다. 그중에서도 공부가 아닌 일로도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신기하다

나는 중학생이 되어서야 학생들이 학교 끝나고 시내 가서 놀는 것이 일본애니나 미국드라마 속 일이 아니라 일상적인 일이란 걸 알게 되었다. 난 다들 학교 끝나면 학원 가는 줄 알았고 여기 작은 유진이가 생각했던 것처럼 틱톡을 하거나 아이돌 춤을 따라 하는 얘들이 이상한 얘들인 줄 알았다 (이상한 얘는 나였다) 내가 대부분 중학생의 생활을 알고 충격받게 된 이야기는 누군가에게 이해받은 적도 없는 이야기인데 갑자기 책에서 나 같은 얘가 주인공으로 나오니까 드디어 공감받은 기분이다.



부모는 아이를 보호하고 이해해 주어야 하는 존재인데, 여기서는 정반대다. 작은 유진이가 어떤 이유로 춤을 추고 담배를 피웠는지 먼저 물어보지도 않고, "이럴 줄 알았다는 얼굴"로 혼낸다. 난 이 책이 성폭력에 대한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러나 읽다 보니 그저 평범하게 상처받은 아이들의 치유 이야기로밖에 안 보인다.

그리고 이 문장도 기억에 남는다.

춤을 추고 싶다.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는 이 분노를 춤으로 날려 보내고 싶다

작은 유진의 춤에 대한 열정을 보여준다. 왜 어른들은 작은 유진의 열정은 못 보는 걸까. 나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지만 그게 내 생각의 표현 방법까지는 아니다. (대신 글쓰기다.) 취미가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까지 간다는 것은 그만큼 춤은 작은 유진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증거다.

하지만 부모는 그런 열정은 보지 않고, 몰래 춤 연습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혼을 낸다. 그림이든 노래 듣기든 게임이든 누구나 힘든 감정을 풀어낼 수단이 있어야 하는데 유진이는 그런 수단을 빼앗겼다. 그리고 몰래 했다는 사실만 문제 삼았다.



그런 얘

"우리 엄마가... 그런 경험이 있는 아이는.. 문제가 있대."

건우의 말이 망치가 되어 내 머리를 때렸다.

"문제? 무슨 문제? 건우야, 그건 내 잘못이 아니야. 내가 원해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고. 그건 너희 엄마가 누구보다도 잘 아실 거야."

"다 아셔도 내가 그런 앨 사귀는 건 싫으신가 봐. 아무튼 미안해."

전화가 끊기고, '뚜뚜' 하는 소리가 건우의 말과 합성되어 내 머릿속을 울렸다. 그런 애 그런 애 그런 애 그런 애.

건우 엄마가 청소년 정신건강에 대해 연설까지 하는 사람이라면, 유진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가장 잘 알아야 하지 않나? 유진이는 피해자인데, 건우 엄마는 마치 유진이에게 문제가 있는 것처럼 말한다. 이런 생각 때문에, 피해자들이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해 털어놓지 못하게 되고 더 숨게 되는 거다.



치유 이야기

아빠가, 네가 그때 일을 알았다는 걸 알고 널. 때린 것 많이 후회하고 계셔. 나랑 네 아빠는, 네가 성공하면, 나중에 그때 일을 기억하더라도, 덜 상처가 될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 어. 그래서, 네가 나쁜 길로 빠지는 게, 더 견딜 수 없었던 거 야.

결말은 예상대로 대부분 청소년 소설처럼 엄마가 사과하고 실은 유진을 사랑해서 그런 거지만 잘못했다고 하며 끝난다. 내가 중학생이어서 그런지 항상 엄마 쪽 입장보다 주인공 쪽 입장을 더 보게 된다. 이해는 되지만, 주인공이 겪은 고통을 생각하면 이제 와서 사과하면 끝인가 라는 느낌이 든다.

그래도 "상처에 바람도 쐬어주고 햇별도 쪼여 주었으면 외할머니가 말한 나무의 움이치럼 단단하게 아물었을 텐데."라고 엄마가 말하는 걸 보니 진심이 느껴지긴 한다.


다르게 생각해 보면 청소년 소설에서 결국 부모가 사과하는 방향으로 끝나는 게 많은 이유는, 현실에서는 부모가 그렇게 쉽게 사과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실제로는 "그래도 널 위해 한 거야"라는 말로 끝나거나, 아예 대화조차 안 되는 경우도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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