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면 순간이동장치라도 얼른 개발되었으면
코로나19 감염증이 한창 유행했던 2020년에서 2022년 사이.
우리 회사에서도 재택근무를 실시했다.
같은 층 다른 사무실에서 감염자가 나오고 감염된 사람들의 동선이 언론으로 상세하게 보도되던 때였다. 매일 하는 건 아니고 격일에 한 번, 또는 2,3일에 한 번 돌아가면서 재택근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재택근무라는 걸 난생처음 해보니
참 좋더라.
오전 9시에 노트북 앞으로 출근(?)했다는 보고를 하고 퇴근 시각인 6시까지 집에서 일을 해보니 새로운 경험이었다. 단점도 분명 있겠지만 나에게는 제일 큰 장점이 있었다.
다름 아닌, 출퇴근을 안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니 오해가 생길 것 같아서 정정해서 말하자면 출퇴근을 위한 이동이 없어서 만족스러웠다.
서울로 매일 출퇴근하는 경기도민이라 더 그랬을 것이다.
대학생이 된 이후로 거의 매일 나가게 된 서울. 20여 년을 오고 가니 사실 한 시간 정도의 이동은 별 거 아니게 되었다. 40여 년째 경기도민인 나는 학교를 가든, 회사를 가든, 놀러 가든 어쩌다 다 서울로 가게 되었다. 집에서 서울로 나가면 목적지가 어디든 신기할 만큼 대개 한 시간 남짓 걸린다. 그 소요시간에는 이제 익숙해졌다.
그래도 오전 7시 반부터 9시 사이, 저녁 6시부터 7시 사이의 러시아워 때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는 건 좀체 익숙해지지 않았다. 좁은 공간에 내 한 몸 비집어 넣고 앉을자리는 당연히 잘 안 나고 사람들과 부대끼며 버티며 가는 그 시간이 나는 그렇게 힘들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다 힘들겠지. 젊었을 때는 그 이동하는 시간을 아껴 써보려 책도 읽고 드라마도 보고 영어단어도 외어보고 뭐 그랬던 것 같은데, 지금은 하루하루가 피곤하니 음악만 들으면서 가는 편이다. 눈도 아프도 노안도 오고 그래서 뭘 읽는 것도 쉽지 않더라. 1시간이 넘는 그 시간이 많이 익숙해졌지만 점점 힘들게 느껴지기는 했다.
아주 집순이인 성향도 한 배경일 것이다. 집에서 나가기만 하면 모든 에너지가 바로 고갈되는 것 같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급속 방전되는 에너지에 허덕이다가, 귀가하면 바로 충전되는 몸뚱이를 갖고 있다. 매주 월요일 아침만 되면 출근하기 전부터 피곤해했는데 ’또 일해야 하다니‘가 아니라 ’또 출근시간을 버텨야 하다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면 출퇴근 시간에는 단순히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오고 가는 시간만 포함되는 건 아닌 것 같다. 일어나서 나갈 준비하는 과정과, 돌아와서 씻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기까지의 과정도 포함된다고 본다.
나 같은 경우, 9시까지 출근이라고 한다면 늦어도 7시에는 일어나서 30분 정도 씻고, 차려입고, 화장하고, 머리 말리는 정도의 과정이 필요했다. 여자치고는 준비에 걸리는 시간이 단출한 편이라고 생각하는데도 아무리 빠르게 해도 30분 이상은 필요했다. 7시 반에는 출발해야 사무실 내 책상까지 늦지 않고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9시에 딱 근무를 시작할 수 있기까지 2시간 정도의 출근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퇴근하고 나서야 씻고 옷을 갈아입기까지 최소 2,30분이 필요했다. 6시에 퇴근하면 7시 반은 넘어야 비로소 회사에서 완전히 퇴근한 기분이었다.
하루 8시간 근무를 위해 9시부터 6시까지 총 9시간을 회사에 머무는 것만 일하는 시간이 아니라, 기분상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 반까지 12시간이 넘는 시간이 회사에서 일을 하기 위해 쓰이는 것 같다.
재택근무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바로 출퇴근 시간이 없다는 점이었다. 9시부터 6시까지 제외하고 나면 나머지 시간이 온전히 내 것이었다. 6시부터 바로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다니! 내가 생각하는 재택근무의 최대 장점이었다.
사실, 일하는 건 좋아한다. 일하는 건 재밌다. 월급이 들어오는 순간도 즐기고 일하면서 느끼는 성취감도 소중히 여긴다.
그런데 재택근무를 경험하면서 출퇴근하는 과정은 없으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다.
재택근무는 코로나19 감염 유행이 가라앉으면서 곧 폐지되었고 정상 근무로 돌아갔다.
때때로 아니 자주, 재택근무 하던 때를 그리워하곤 한다.
다시 재택근무를 할 수 없으면 얼른 과학자들이 순간이동 장치라도 개발해 주었으면 좋겠다.
(뭘 잘 모르는 내가 보기에 그저 컴퓨터만 있으면 일을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미국의 거대 IT기업들도 이제는 재택근무를 줄여나가는 추세라고 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그게 비효율적이라는 판단과 결론을 얻은 것 같다. 사무실에 앉아서 동료들과 업무와 대면하면서 일하는 게 효율적이고 기업 성장에도 맞는 방향이라는 것일테다. 그게 곧 성장과 발전과 자산 증식 등등의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겠지.
이 점을 잘 알고 있음에도, 그리고 분명 나도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매우 성장지향적이고 자본 확장에 매우 적극적으로 동의하는 사람이었는데, 왜 이제는 이런 것들이 힘들고 내 몸을 갉아먹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서울이라는 상징적이고 중요한 대도시에서 일하는 것은 여러 의미를 가진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일하길 원할 것이고 기업들도 서울에 머물면서 얻을 기회와 이득을 놓치고 싶지 않겠지.
그렇지만 매일 출퇴근의 지옥버스 지옥철을 경험하다 보면 정말 이게 가장 바람직한 근로환경과 기회의 결과인지 의문이 든다. 서울에 몰려 있는 회사들이 국내 곳곳으로 분산되어 출퇴근의 인구도 분산될 수 있도록 해주면 좋겠다. 만에 하나 그렇게 될 거면 우리 회사도 기왕이면 우리 집 근처로 오면 더 바랄 바 없고.(...) 이렇게 서울 집값이 너무 높아서 내가 회사로 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니 회사가 우리 집 근처로 이사해서 직주근접을 실현해보고 싶다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이런 상상과 바람과 나름의 엉뚱한 사회분석(?)하면서
오늘도 출근 지하철에 올라탄다. 내일은 조금 더 낫겠지, 조금 더 좋은 미래가 있겠지, 읊조리면서.
주 20시간으로 근로시간을 줄이고 나서 당연히 출근하는 시간도 줄어들었다.
평일에 하루, 이틀의 휴무일이 있으니 아예 안 가는 날도 있어 출퇴근의 부담이 많이 사라지긴 했다.
단순히 20시간의 내 시간이 늘어난 것이 아니라, 20시간 + α 의 시간이 생겼다.
이런 시간의 확보는 육아와 가사의 부담이 있는 나에게 매우 귀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