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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금문 Sep 05. 2024

(속) 나는 사실 재택근무가 좋았어

만일 아이를 키우는 지금도 재택근무를 하고 있었더라면

앞의 글에서 말했듯이 나는 코로나19 유행 기간에 재택근무를 했다. 격일 또는 2,3일에 하루씩 돌아가면서 하는 재택근무였다.

조금 더 기억을 더듬어 보면 2020년 봄 무렵부터 간헐적인 재택근무를 시작했고, 내가 그 해 가을에 임신을 하게 되면서 유일한 임신부였던 나만 전일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다. (필요한 경우에만 출근해서 일하게 되었다.) 당시 코로나19에 대해 사회저 경각심 내지 공포가 극에 달한 상태였고, 노약자나 유아 그리고 임신부 같이 질병에 더 취약한 사람들을 배려해 주는 환경이 조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다시 강조해도 부족할 정도로 나는 재택근무가 좋았다. 일에 대한 집중도 향상, 쓸데없는 인간관계에 대한 감정 소비 배제, 출퇴근 시간 절약 등이 장점이 너무도 분명했다. 임신 후 출산까지 약 8개월간 전일 재택근무를 했다. 출산 휴가를 쓰고 복귀한 2021년 10월 무렵에는 더 이상 재택근무가 시행되고 있지 않았다.


어린아이를 키우면서 종종 생각하곤 한다.

지금도 재택근무를 하고 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저 가정이고 멋대로 상상해 볼 뿐이지만 내 생각은 이렇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재택근무를 한다는 가정으로 생각해 보자.


1. 어린이집 등원 전담

가능할 것 같다. 내가 출근을 위해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 없어지니까 아침에 아이 등원을 위해 준비 시간을 쓸 수 있다. 9시 전에 어린이집에 보내놓고 서둘러 돌아오면 9시 정각에는 컴퓨터를 켜고 접속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갑자기 아이가 어린이집을 안 가겠다고 떼쓰거나 알 수 없는 다양한 이유로 등원까지의 시간이 오래 걸리게 될 수도 있겠지만, 이런 경우가 많지 않다면 아이를 등원시키는 걸 내가 잘 맡아서 할 수 있을 것이다.



2. 점심시간을 활용한 가사

회사 다닐 때도 점심시간을 활용해서 병원 진료를 받거나 은행을 가거나 한다. (그 시간을 쪼개서 운동을 하는 멋진 동료들도 있지만 나는 정도의 열정과 성실성은 없음...) 재택근무를 한다면 그것 말고도 간단히 집 정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다 못해 아이가 난장판으로 만들어 둔 거실과 방을 정리하는 거라도 할 수 있을 거다. 손이 빠르다면 내가 먹을 점심 준비를 하면서 저녁에 먹을 반찬을 만들 수도 있을 거고. 아니면 쓰레기라도 버리고 올 수 있겠지.

집안일을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얼마나 자투리 시간이 유용하고 소중한지. 그리고 짧은 시간이라도 주어진다면 얼마나 많은 일을 해치울 수 있는지.

맛있는 점심을 먹고 동료들과 기분 좋은 시간을 갖는 대신 다른 방향에서 점심시간을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3. 갑작스러운 아이 상황에 대한 빠른 대처

갑자기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오거나, 아이가 열이 나기 시작하거나 이런 일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출근을 하건, 재택근무를 하건 일하는 건 마찬가지고 어차피 애를 위해 시간을 내려면 외출을 신청하거나 남아 있는 연가를 써야 하거나 하는 것도 동일하지만 그래도 조금 더 아이를 위해 신속하게 달려갈 수 있다.

...

회사마다 다를 것이라 예단은 못하겠다. 연차나 외출 사용이 조금 더 자유롭고 어렵지 않은 분위기의 회사라며 가능하겠다. 그래도 위에 아쉽고 어려운 소리를 하게 되는 것이라도 내 새끼를 위해 달려가야 한다면, 조금이라도 더 아이와 가까운 곳에서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



4. 퇴근 후 아이의 하원까지 시간 단축

등원 후 출근도 빨리 할 수 있겠지만 퇴근 후 아이의 하원까지 걸리는 시간도 줄어들 것이다.

나의 경우 지금은 출근을 하고 있고, 집과 회사의 거리는 지하철로 1시간 10분 정도 걸린다. 회사에서 어린이집까지는 이동 시간이 1시간 30분 정도로 늘어난다. 그러니까 내가 6시에 퇴근을 한다면 7시 반은 되어야 아이를 하원시킬 수 있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친정 부모님이 아이의 하원을 맡아주시고 있기 때문에 오후 4시가 되면 아이는 하원을 하고 있지만, 만일 내가 부모님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저녁 늦게서야 아이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재택근무 중이라면?

칼퇴를 할 수 있단 전제 하에 상상해 보면 6시에 퇴근을 하고 컴퓨터를 끄고 바로 달려 나가서(?) 15분 거리에 있는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데려올 수 있다. 무려 1시간 가까이 시간이 절약된다. 저녁에 아이와 보낼 시간을 더 확보할 수 있다. 이건 무엇보다도 아이를 위해 좋은 장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그저 내 상상일 뿐이다.

재택근무는 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나는 대신 일하는 시간을 줄여 (그에 따라 월급도 줄여서) 아이를 위해 많은 시간을 사용할 수 있게 노력하고 있다.



만일 지금도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고 가정하여 써둔 것은 사실 회사보다는 아이에게 맞춰서 상상한 것이다.

회사가 워라밸을 잘 챙겨주고 직원들을 신뢰해 주며, 직원은 근무 시간에 딴짓하지 않고 일만 한다는

아주 이상적인 상황을 전제하여 쓴 판타지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고작 한 명뿐인데도, 시간이 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끊이질 않는다.

시간을 더 내서 아이를 돌보고 싶다.

출퇴근 시간을 없애주는 재택근무가 없다면, 내 월급을 쪼개서라도 근무 시간을 줄여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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