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감한 시간선택제 근무를 할 수 있던 배경, 또는 불이익에 대하여
주 40시간 근무를 반으로 잘라서 주 20시간 근무로 바꾸면 당연히 일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만큼 월급도 줄어든다. 회사의 규정상 월급은 일하는 시간에 비례하여 지급되게 되어 있었다. 내 월급이 100만 원이라고 한다면, 일하는 시간을 절반으로 줄였으니 한 달 월급이 50만 원이 되는 것이다.
괜찮을 리가. 일은 안 해도 돈은 많이 벌고 싶은 게 모든 사람의 솔직한 바람 아닐까.
일단 이런 은근하고 솔직한 욕망은 덮어두고, 회사와 근로 계약한 내용엣 근로 시간을 줄였으니 그만큼 월급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만큼의 월급 손실(?)은 감수하기로 한 것이다. 실제 통장에 찍혀 들어오는 내용을 보면 금액이 반으로 줄었으니 가슴이 아리기도 하지만 일하는 시간을 그만큼 반으로 줄였으니 당연하다 생각한다.
이건 맞벌이 부부라서 가능한 것이기도 하겠다. 다른 한 사람이 벌어오는 월급이 있으니 기댈 구석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물려받은 재산이 있는 사람들도 아니고, 주식이나 코인으로 부를 얻은 사람들도 아니고 월세를 받는 사람도 아니다. 평범하게 매달 열심히 일하고 남들만큼의 급여를 받아서 생활하는 직장인 부부다. 물가는 오르고 나갈 돈은 점점 많아지고 있으니 한 푼이라도 부지런히 모아야 한다. 둘이서 벌어서 그나마 조금이라도 저축도 하고 있었는데 더 벌지는 못할망정 한 사람의 급여가 반토막이 되는 게 가정 경제에 달갑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일단 남편의 급여가 있고, 내 월급도 아예 없는 게 아니라 반이라도 들어오니 적잖이 숨 쉴 구석은 남겨둔 셈이었다. 아예 못 살 정도는 아니었고 줄어든 만큼 절약하고 아끼며 지내면 되었다. 가끔 통장을 보면 가슴이 아리기는 해도........
처음에 일하는 시간을 반으로 줄이고, 그만큼 월급도 줄어 들어올 것이라고 남편과 상의가 필요했다. 물론 남편은 적극 내 편이 되어 주었다.
그래도 수입이 줄어들게 되니 앞으로 줄여야 할 소비 목록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누는 것을 잊지 않았다.
사실 내가 주 20시간으로 과감하게 근로시간을 줄일 수 있던 진짜 배경이 이게 아닐까 한다. 나는 회사에서 승진과는 거리가 먼, 관계가 없는 위치, 직급, 신분에 있다. 성과 평가를 받지도 않고 (공식적인 평가를 받지는 않지만 비공식적인 평가를 받고 있을 수는 있겠다.) 승진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내가 일하는 시간을 줄이다고 해도 얻는 불이익(?)은 월급이 줄어드는 것뿐이다.
물론 월급이 줄어드는 건 공식적인 규정상의 눈으로 보이는 불이익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겠다. 승진하지 않고 성과평가도 받지 않는다 하더라도, 비공식적으로는 나에 대한 평가가 이뤄지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동료들 사이에도 나에 대한 평가 또는 평판이 오고 갈 것이고, 위에서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일을 잘하는지, 어떤 문제가 있는지, 어떤 일을 믿고 맡길 수 있는지 등등에 대해서는 평가하고 있겠지.
이 회사에 뼈를 묻을지 어떨지는 모르겠으나 나라는 근로자에 대하여 부정적인 평가가 쌓이는 것은 피하고 싶다. 그것이 월급의 정도나 승진 등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 이에 대한 부담이 없으니 과감하게 근무시간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었다.
사실 회사 입장에서 보면, 일을 잘하는 직원이든 아니든 근무시간을 줄이겠다는 데 썩 반겨할 리가 없다. 직원의 입장에서 보면 내가 승진에서 뒤처지거나 성과급을 못 받거나, 동료들에게 미움을 받거나 기타 다른 불이익을 받을까 봐 염려되는 것도 있을 것이고. 실제로 나중에 다른 동료들에게 물어보니 원해도 시간선택제 근무를 하지 못하는 (위에서 허가하지 않거나 만류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고, 설령 사용할 수 있어도 나처럼 절반으로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경우보다는 주 30시간, 주 35시간 정도만 시간을 단축하여 사용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니까 나는 좀 특수한 경우였다.
그래서 시간을 줄이겠다고 말하기 어려운 점도 있었지만
여하튼 과감하게 결정했고 실행에 옮겼다.
평가나 급여에 대한 고민이 없던 것은 아니다. 이것 때문에 시간선택제라는 근로 유형을 결정하기까지 고민의 시간이 길었다.
많고 긴 고민 끝에 그래도 내가 근로시간을 줄이기로 한 것은 가정과 아들 때문이었다. 일을 덜 하면서 잃는 것도, 혹은 잃을 수 있는 것도 있었지만, 육아와 가사에 시간을 더 할애하면서 얻은 것은 생각보다도 더 크고 귀했다. 돈은 줄어들었지만, 아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늘어났고 일을 줄이는 대신 가정에 더 헌신하면서 얻는 무형의 이득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