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도 하고 집안일도 하고 애도 보고 자기계발도 하고 휴식 시간도 갖고..
'도무지 안 되겠다.'
이렇게 생각을 한 건 출산 후 회사에 복귀한 지 오래 지나지 않아서였다.
나는 출산 휴가(3개월)가 끝나자마자 회사에 복귀했다. 회사의 특성상 얼마든지 육아휴직을 바로 신청하여 사용할 수는 있었는데 그때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그냥 바로 복귀해 버렸다. 90여 일의 신생아 돌봄 이후 지쳤던 것인지, '일'이란 걸 하고 싶었던 것인지 이제 와서 생각해 보려니 잘 기억이 안 난다. 분명한 것은, 업무에 복귀하여 '엄마'가 아닌 '나'라는 정체성이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점이다.
'나'로서 살아있음을 느끼면서 일은 즐겁게 하였지만, 일하면서 한 구석으로는 불편함이 있었다. 집에 있을 아들이 보고 싶고 걱정되고, 육아에 대한 책임감과 부담감이 함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노산이 많아져서 35살을 훌쩍 넘긴 나이에 첫 아이를 보는 게 대수롭지 않게 된 것 같은데 여하튼 나도 그 통계에 들어가는 사람이다. 마흔이 가까운 나이에 첫 출산을 하고 보니 얼마나 아이가 예쁘고 소중하고 보고만 있어도 귀엽고 반짝이고...... 세상 모든 좋은 말을 다 붙여도 부족한 그런 존재로 보였다. 그런 아이를 두고 나와서 일을 하자니 일을 즐겁게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이 생각이 나고, 아이 생각이 나다가도 일에 빠져들고 그러는 날들이 일어졌다.
그제야 비로소 온전히 깨달았단 것 같다. 그러니까 내가 일도 하고 육아도 해야 하는 워킹맘이 되었다는 사실을.
워킹맘은 그저 9시부터 6시까지 일을 하고, 퇴근해서는 육아와 집안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일어나서 출근하기까지 애를 돌보고, 일을 하면서 자식과 집안일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에서 간간히 튀어나오고, 퇴근 시간을 놓치지 않으려 몰두하면서 시계도 쳐다보고, 퇴근해서 애를 돌보면서는 다음 날에 할 일을 걱정하는 사람이었다. 하루 종일 머릿속에 해야 할 일들이 가득 차서 나 스스로를 위한 아주 작은 것도 미뤄버려야 하는 사람이었다.
몇 년 동안 일을 해왔으니 일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려움이 없었는데, 처음 해보는 육아와 집안일을 병행하면서 일을 하면서도 삐그덕거리는 것들도 생겨났다. 이를테면, 아이 건강에 따라 잦은 연가를 사용하면서 괜히 회사에 미안하거나 동료에게 미안함이 생겼다든지, 일정 조율이 이전보다 좀 더 까다로워졌다든지, 저녁 회식은 어려워졌다든지...... 이런 것들 말이다. 그리고 그 외에 눈으로 보이지 않게 소소하게 신경 쓰이는 것들까지.
덧붙여서 육아와 회사업무가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로 등극하고 나자 매일 해야 하는 집안일에 자연스레 소홀해지게 되었다. 이건 나에게는 또 다른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집안일을 잘하는 편도, 꼼꼼히 하는 편도 아니지만 점차 어질러지고 더러워지는 집안 꼴을 보는 것이 힘들었다. 아무리 흐린 눈을 해도 나도 알고 너도 아는 (남편만 모르는) 집안 꼴은 결국 피곤한 와중에도 청소 정리를 하게 만들었다.
얼마간 모든 워킹맘들이 그러하듯이 일과 육아, 집안일과 그 외의 일들을 나란히 병행하면서 지내다 보니 어느 순간 지쳤다는 걸 알았다. 그래도 버텼는데, 갑자기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고 있는 일 모두를 다 꽉 채워서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럼 무엇을 좀 손에서 놓는 게 제일 나을까?
내 결론은 일하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었다.
매일 9시부터 6시까지 정해진 8시간(중간에 점심시간을 제외한)을 꽉 채워 일하는 것을 좀 놔버리면, 다른 것에 좀 더 공을 들일 수 있을 것이었다.
그래서 회사의 근로규정을 열심히 찾아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