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반만 일할게요. 과업 말고 시간만.
회사의 규정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회사마다 다를 테지만 나의 경우는 부서장의 허락 하에 한 주에 15시간에서 35시간 사이로 근로시간을 줄여서 일하는 게 가능했다.
규정을 찾고 나서 며칠간은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며 고민했던 것 같다.
근로시간을 줄여 일하는 것은 일단 매력적인 선택이었다. 일하는 시간을 줄인다는데 매력적이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할 수만 있다면 일하는 시간을 줄이는 걸 마다할 사람이 있을까? (마다할 사람도 있겠지... 적어도 나는 아니었다.)
이 회사에서 일한 지는 약 8년째. 중간에 고비가 있기는 했지만 나름 무탈하게 이직이나 퇴사 고민 거의 없이 잘 다녔다. 하는 일도 만족스럽고 좋은 사람들과 일할 수 있는 환경도 마음에 든다. 일하는 데 고민이 들었던 적은 거의 없었다. 물론 내 기준으로 무리한 지시가 내려지거나, 충분히 동기를 부여받지 못하고 마지못해 일을 하거나, 혹은 내 역량에 부쳐서 힘들다고 생각이 들었던 적도 있었고 사람 때문에 고민이 깊어지는 적도 있기는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직장에서 내가 하는 업무와 나에게 지워지는 기대 등이 비교적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불만 없이 다닐 수 있었다. 게다가 나는 원래 일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고, 전공을 살려 일할 수 있다는 것에 ‘행운‘이라고까지 생각하면서 일해왔다.
이랬던 내 마음은 아이가 태어나면서 많이 바뀌게 되었다. 내가 아무리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내가 해야 할 이들의 우선순위에 변화가 일어났다. 당연히 아들과 가족이 제1순위. 일과 그 외의 것들은 무조건 그다음 순위가 되었다.
아들의 건강과 행복과 웃음은 내 삶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고, 더불어 가정의 중요성과 의미도 더욱 커졌는데 아쉬운 건 아들과 가정을 위해 투자할 내 시간이 많이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하루 8시간 주 40시간 일을 하는 게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졌는데 어느 순간부터 좀 힘들다는 걸 느끼고 일하는 시간을 줄이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규정까지 찾아봤는데 쉽게 선택하기는 어려웠다.
일하는 시간을 줄이는 만큼 내가 잃게 될 것들, 또는 얻지 못할 것들도 분명히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차차 이야기하겠다.)
내가 고민한 시간은 무려 10개월 가까이 되었다. 출산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후부터 고민을 시작해서 아들의 첫 돌이 지나고 나서야 회사에 단축 근무를 신청했기 때문이다. 그 10개월간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는지 모른다.
몇 시간으로 줄여서 일을 할지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과 계산이 있었지만 결국 근로 시간을 딱 절반으로 줄여서 일하는 것을 선택했다. 즉 주 20시간만 근무하겠다고 부서장(나의 경우는 과장)에게 사유와 함께 신청서를 냈다. 사유는 육아.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주 20시간 근무를 시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