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전하지 못해 떠나버린 그녀
내 병실은 병원 7층, 창가에서 두 번째. 하루 대부분을 침대 위에서 보내는 나에게 유일한 바깥세상은 창문 너머 풍경뿐이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심장이 약했고, 고등학교 2학년 겨울, 결국 ‘이식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선고를 받았다. 하지만 이식 순번은 끝내 내게까지 오지 않았다.
심장이란 건, 이렇게까지 사람을 조용히 파괴하는 장기였다. 계단 한 칸만 올라가도 숨이 차고, 웃다가도 가슴을 움켜쥐게 되는 날이 많아졌다. 어느 날은 갑작스러운 부정맥으로 의식을 잃었다. 그때 의사가 말했다.
“이제… 몇 달이 고비입니다.”
그를 처음 본 건 병원 옥상이었다. 나는 가슴을 부여잡은 채 의자에 앉아 있었고, 그는 물리 치료사에게 간단한 운동 처방을 받던 중이었다.
내 숨소리를 들었는지, 옆에 조용히 앉더니 물을 내밀었다.
“괜찮아요?”
그 단순한 질문이, 그렇게 따뜻하게 들릴 줄 몰랐다.
그 후로 그는 가끔 병실에 놀러 왔다. 내게는 ‘ 민성오빠'였고, 그에게 나는 ‘작고 투명한 사람’이었다. 처음으로 누군가가 내 아픔을 짐작하려 하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대해줬다.
“이식받지 않으면… 나 그냥 꺼질지도 몰라.”
처음으로 솔직해졌을 때, 민성오빠는 내 손을 잡고 말했다.
“내가 네 심장 대신 뛰어줄 수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어.”
나는 그 말에 울고 말았다. 그렇게 진심으로, 그렇게 순수하게 말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내 상태는 더 나빠졌다.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는 날이 많았고, 침대에 누워 있을 때조차 숨이 가빴다.
병실엔 항상 삑삑 대는 기계음이 가득했고, 엄마는 밤새 내 손을 붙잡고 기도했다.
" 으윽..."
"아악"
발작빈도도 늘어났고 이 악물고 통증을 참아내는 게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3월 말, 나는 다시 한번 의식을 잃었다.
심장이 순간적으로 멎었던 거였다. 의사들이 우왕좌왕하는 가운데, 간신히 깨어났을 때 나는 오빠의 얼굴을 봤다. 울고 있는 그의 얼굴.
그날 밤, 나는 결심했다.
“벚꽃이 필 때까지만… 살아 있을게.”
벚꽃이 피기 시작한 4월 초, 오빠는 날 휠체어에 태워 공원으로 데려갔다.
그날도 내 심장은 약했고, 숨이 짧았다. 옷깃을 여며주며 민성이 말했다.
“여기까지 오는 길, 힘들었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살짝 만졌다. 손끝이 시렸다.
“민성 오빠.. 나, 오늘이 마지막일 것 같아.”
“아니야. 벚꽃 다 필 때까지 살아있겠다고 했잖아. 아직 만개 안 했어.”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그럼 조금만 더… 버텨볼까?”
바로 그때, 내 가슴이 세게 쿵, 하고 내려앉았다. 숨이 멎는 듯한 통증. 시야가 흐려졌다.
“으으. 윽... ㅇ.. 오빠.. 살..ㄹ.. 려줘"
그는 당황해하며 내 이름을 불렀지만, 나는 이제 대답할 힘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본 것은, 하늘에서 흩날리는 연분홍 꽃잎이었다. 마치 내 심장 박동 하나하나가 꽃잎처럼 흩어지는 것 같았다.
그 속에서 나는 미소 지었다.
“고마워… 살아서 널 만나서…”
그렇게 세은이 죽은 지 1년 후,
민성은 같은 벤치에 앉아 있었다. 손에는 한 권의 책.
표지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 《봄이 오면, 너에게》
— 윤세은
그녀의 마지막 병상 일기를 엮은 책이었다.
책장을 조심스레 넘기며 말했다.
“올해 벚꽃은 만개했어. 드디어… 약속 지켰지?”
하늘에서 꽃잎 하나가 내려와 그의 어깨에 안겼다.
마치, 그녀의 심장박동이 다시 한번 그를 안아주는 것처럼.
민성은 책을 품에 안고 또다시 눈물을 흘린다.
" 보고 싶다 세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