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는 날, 나연의 마음속에는 늘 신서우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평범한 출퇴근 일상 속에서도 비가 오면 그의 기억이 불쑥 떠올랐다. 함께했던 시간들, 웃고 떠들던 순간들이 마치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느껴졌다.사무실에 도착한 나연은 커피를 내리고 창밖을 바라보며 달달한 믹스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믹스커피의 쓴맛은 신서우와의 이별 이후 처음으로 진하게 느껴진 것이었다. 나연은 그 쓴맛 속에서 잠시 기억에 잠겼다. 창밖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바쁘게 걸어갔고, 비 오는 날의 풍경은 변함이 없었지만, 그녀의 마음속은 고요한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다.“쓰레기... 나쁜 놈...”혼잣말처럼 내뱉은 그 말은 그녀의 여전한 그리움을 감추기엔 역부족이었다. 신서우가 떠난 뒤에도 그는 여전히 그녀의 마음 한켠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나연은 눈물을 참으며 문서 정리에 몰두했다.
하지만 친구 은호에게서 온 메시지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고 말았다. 은호가 보낸 메시지에는 신서우가 카페에서 커피를 사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 사진을 보는 순간, 나연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그의 모습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퇴근 시간이 다가오자, 나연은 옥상으로 올라가 바람을 맞았다. 비는 그쳤지만, 하늘은 여전히 어두웠다. 구름으로 가득 찬 하늘을 바라보며 나연은 과거의 연애 시절을 떠올렸다. 신서우. 그의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아팠다. 키가 크고 남색 머리칼에 깊은 남색 눈동자, 마치 시원한 바닷가를 떠오르게 하는 그의 모습은 그녀의 기억 속에 강렬히 남아 있었다.그들의 첫 만남은 대학 시절 팀 프로젝트에서 시작되었다. 무임승차하는 동료들 덕분에 나연과 신서우는 서로에게 의지하게 되었고, 그렇게 둘은 친구가 되었다. 졸업 후, 신서우가 먼저 고백했다. 고백을 받아들인 나연은 그와 함께 런던으로 유학을 떠났다. 런던에서의 두 해는 그들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불꽃놀이가 터지는 밤하늘 아래에서 신서우의 고백은 나연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의 관계는 변해갔다. 장거리 연애가 시작되며 두 사람은 점점 멀어졌다. 예전엔 일주일에 한 번 만나던 그가, 이제는 한 달에 한 번 볼까 말까였다. 나연은 그와의 사랑이 식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그런 와중에 신서우의 열애설이 터졌다. 그는 다른 여자와 공식적으로 연애를 시작했다는 기사로 나연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신서우... 쓰레기야...”나연은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 그녀에게, 신서우는 바쁜 프로젝트를 핑계로 피하려 했다. 하지만 나연은 참을 수 없었다. 약속 장소에서 만난 신서우에게 나연은 뺨을 내리쳤다.“왜 나를 버리고 다른 사람과...”울음을 삼키며 그녀가 말했을 때, 신서우는 미안하다는 말로 대답했다. 하지만 그 말은 그녀의 상처를 아물게 하지 못했다. 그날 나연은 그와의 5년 연애가 끝났음을 받아들였다.이별 후 나연의 삶은 공허함으로 가득했다.
신서우가 없는 시간은 그녀에게 큰 고통을 안겼고, 그를 잊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비가 오는 날이면 여전히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죽을 만큼 힘들었다”는 말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고통이었다.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거리에서 신서우를 마주쳤다. 그의 모습을 보자 나연의 마음은 복잡해졌다. 카페에 들어간 두 사람은 서로의 감정을 나누었지만, 나연은 그의 사과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녀는 그가 자신의 사랑을 배신했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너가 내 사랑을 버린 거야. 우리는 이미 끝난 거야.”마지막으로 그를 바라본 나연은 차갑게 말했다.집에 돌아온 나연은 하늘을 바라보며 입김을 불었다.아프고도 아름다웠던 그날들을 떠올리며 그녀는 문득 속삭였다.
“사랑했어... 신서우.”